‘마이 뉴욕 다이어리’... 문학의 숲을 걷는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문학의 숲을 걷는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1.12.10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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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청춘은 아름답다

삼십여 년 넘게 ‘붓 한 자루로 먹고 살아왔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누구나 소설 한 편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전업 작가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등단해도 안정적인 직업으로 작가가 되는 길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 같다. 1995년 뉴욕도 예외는 아닌 듯.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작가 지망생의 좌충우돌 갈팡질팡 청춘 보고서다. 등단한 작가이지만 그것뿐이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청운의 꿈을 품고 뉴욕에 왔으나 정작 작가가 아닌 작가를 세일즈 하는 작가 에이전시 일을 할 줄이야. 작가의 꿈은 물 건너간 것처럼 조바심 나지만, 잠시 멈춰서 바라보면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아름답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스틸 컷. 영화사 진진 제공
'마이 뉴욕 다이어리' 스틸 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원제 My Salinger Year>는 마치 겨울 시즌을 겨냥한 영화처럼 요즘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인 영화다. 배경은 1995년 뉴욕의 가을이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1990년대 대한민국 12월의 감성이 스며있다.

등단을 열망하는 문학 지망생들의 일상은 동서고금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작가 지망생은 글을 쓰고 응모하고 등단을 기다리며 글쓰기 외의 밥벌이를 한다. 어디 문학뿐이겠는가. 영화계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9월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서 <수프와 이데올로기>로 대상을 받은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명색이 감독이지만 감독으로 먹고살지 못했다. 영화는 밥벌이가 안 되었다. 자괴감이 들었다”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지금은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있지만 봉준호 감독도 신인 시절이 있었고, 박찬욱 감독도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전엔 영화잡지에 잡문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유독 예술가에게는 혹독한 시절이 있는 것 같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주인공 조안나(마가렛 퀄리)는 그 출발점에 서 있는 작가 지망생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스틸 컷. 영화사 진진 제공
'마이 뉴욕 다이어리' 스틸 컷. 영화사 진진 제공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조안나 래코프가 뉴욕의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 ‘해럴드 오버’에서 1년여간 일했던 경험을 엮은 도서 [마이 샐린저 이어(My Salinger Year)]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필리프 팔라도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던 필리프 팔라도 감독은 한 서점에서 [마이 샐린저 이어]를 발견했고 영화화했다.

“책 속의 인물이 겪어나가는 불확실한 시기를 보며 공감이 되었어요.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잖아요. 뭐든지 할 수 있으면서도, 모든 게 아득해 보이는 때죠”라며 이야기 속 ‘조안나’ 캐릭터에 깊은 공감을 전했다. 작가의 꿈을 뒤로하고 누군가의 조수가 된 ‘조안나’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는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 연애, 우정, 꿈 등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이 모든 것이 불안정하지만 지나고 나니 그때 그 시절이 가장 빛나는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스틸 컷. 영화사 진진 제공.
'마이 뉴욕 다이어리' 스틸 컷. 영화사 진진 제공

주인공 ‘조안나’역을 맡은 마가렛 퀄리는 독보적인 비주얼과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최근 할리우드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 중 한 명. 90년대 할리우드 스타 앤디 맥도웰의 딸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한 마가렛 퀄리는 광기 어린 히피족 ‘푸시캣’ 연기로 배우로서 이름을 각인시켰다.

회사 CEO 마가렛 역은 시고니 위버가 맡았다. 1987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록버스터 <에이리언>의 ‘리플리’ 역으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시고니 위버는 2009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에서 그레이스 박사 역을 맡아 단단한 연기를 선보였다. 아카데미 3회 노미네이트, 골든 글로브 2회 수상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지난 2020년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조안나’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지 않았지만, 샐린저에게 보낸 독자의 편지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를 이해해 간다. 그 과정이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싶어진다. 10대 그때의 친구들이 지금 내 옆에 없지만...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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