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사무칠 때
외로움이 사무칠 때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1.12.24 09: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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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다 크리스마스까지 분위기가 들썩들썩하다. 
물론, 코로나19에다 오미크론까지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해는 가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작은 송년회가 열리고 있다. 

외로움은 이럴 때 다가온다. 
남들은 다들 송년회로 바쁜데, 나만 별일 없이 집에만 있는 느낌?
누가 불러주지 않나 노심초사하며 눈 빠지게 기다리는?
겉으로 보기에 나는 이미 소외돼 외로움에 허덕이는 사람이 돼 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된다. 
최근에 한 나의 과감한 행동으로 
이제 난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을 즐길 줄 알게 됐다. 
 
얼마 전 방송 참여자 중 한 명이 스마트폰에 대해서 얘기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스마트폰이 얼마나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일정 시간 꺼놓고 지내보고, 그 경험을 방송에서 얘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아이디어를 듣고 나도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흔히들 혼자만의 시간,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그 고독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고독을 위해 물리적인 만남은 자제한다고 해도 
SNS나 카톡, 문자 등등이 수시로 울리는 이놈의 스마트폰 때문에 
완벽히 세상과 단절되지 못한다. 진정한 의미의 고독은 물 건너갈 수밖에…
 
내 스마트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 문자의 도착 알림 소리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진동이든, 소리든 울릴 때마다 무시하기는 쉽지 않아 확인을 해보면, 
대부분이 시급을 요하는 중요한 것도 아니다. 
때문에 뭔가가 왔다고 울릴 때마다 아예 무시하고 싶지만, 
사람의 심리상 확인을 안 하기도 참 쉽지 않다. 
그래서 확인을 하면 또 별 쓸데없는 문자요, 나는 또 실망한다. 
이것이 계속 반복, 반복… 괜히 자존심까지 상한다. 
 
이번 기회에 과감히 알림을 꺼버렸다. 
아예 연락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니 전화벨만은 남겨두고…

조용하다. 
스마트폰의 알림만을 껐을 뿐인데 세상이 평화롭다. 
이제 카톡이나 문자는 오는 즉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확인하고 싶을 때 확인하면 된다.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내가 원할 때 보면 된다. 
단절됐다는 외로움이나 시급한 걸 즉각 받지 못한다는 불안감도 없다. 

나폴레옹이 정복 시절에 그랬다.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장에서도 전령이 보낸 편지를 즉시 보지 않고, 
2주 동안 묵혀두면서 여유를 가졌다.

그러면 편지에 적혀 있던 상황은 
2주의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저절로 해결된다고 했다. 
만약, 급한 소식이 있어도 자신이 먼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이며, 
정말 자기가 꼭 해결해야 할 일은 편지를 즉시 확인하지 않아도 
어떤 방법으로든 늦지 않게 자기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리 급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알림은 단체 문자고, 친구들이 안부를 묻는 정도니 
당장 답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없다. 
정 급하고,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면 전화를 하지 않겠는가?

알림을 꺼버린 뒤 약간의 고독? 
완전히 단절되진 않았지만, 왠지 스마트폰으로부터 주도권을 잡은 느낌이다. 
스마트폰에 대한 자존심이 뭐라고 자존심도 세운 것 같다.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서 스마트폰이 있는 한 
진정한 고독의 시간을 가지기 어렵다. 
산속에 살지 않는 한 현실상 장시간 그렇게 단절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고독에서 아예 멀어지기보다는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리하여 들썩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난 외로운 것이 아니라 고독해졌다. 

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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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자 2022-01-01 15:34:57
오래 전 한석규씨의 CF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맨트가 생각나네요. 낮에 머리가 아파 잠깐 쉬려면 어떻게(?)알고 마침 그 때 그렇게 전화가 오더라구요. 몇 개월 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도... 언젠가부터 그럴 때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했더니 고민 해결~ 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