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드라이브 마이 카'...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1.12.23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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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부터 영원까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나 소설과 영화의 결은 사뭇 다르다. 결정적으로 소설 속 노란색 '마이 카'는 영화에서 빨간색 차로 바뀐다. 노란색과 빨간색의 색상 차이만큼이나 소설과 영화는 구성과 바라보는 시선에 차이가 있다. 고만고만한 동네 어귀의 골목 풍경도 사계절에 따라 다른 느낌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 주는 것처럼, 영화는 소설과 또 다른 매력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달리는 좁은 차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미우라 토코(미사키). '드라이브 마이카' 스틸 컷. 트리플픽쳐스, 영화사조아 제공.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미우라 토코(미사키). '드라이브 마이카' 스틸 컷. 트리플픽쳐스, 영화사조아 제공.

[한국뉴스투데이] 무미건조한 일상의 이동 수단에 불과할 수 있는 드라이브를 모티브로 한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소설을 읽으며 하루키의 문학적 재능에 감탄했고 영화로 만들고 싶어서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히로시마 해변을 유유히 달리는 빨간 자동차의 아름다운 뒤태라든지, 홋카이도 외딴 시골 눈 덮인 깊은 산속을 용케도 달려온 자동차의 야무진 모습을 어떻게 소설로 보여 줄 수 있을까.

소설이 글을 도구로 보이지 않는 내면을 묘사하는 정적인 작업이라면 영화는 카메라로 눈에 보이는 움직임을 담는 동적인 작업이다. 감독은 정적인 소설과 동적인 영화의 장르적 거리감을 좁히기 위하여 소설과 영화 사이에 연극이라는 간이역 같은 징검다리를 놓았다.

징검다리는 잘 박힌 못처럼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명석한 연출이다. 영화는 소설의 군더더기를 걸러내고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중심축으로 재구성됐다. 달리는 차 안에서 주인공 ‘가후쿠(니지시마 히데토시)’는 바냐의 대사를 또박또박 소리 내어 연습한다. 자신의 속마음을 대사에 담아내는 것처럼 주인공의 명징한 목소리의 울림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미우라 토코(미사키).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컷. 트리플픽쳐스, 영화사조아 제공.​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미우라 토코(미사키).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컷. 트리플픽쳐스, 영화사조아 제공.​

쇼펜하우어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던 젊은 날은 이미 사라졌다. 참담한 자신의 모습에 자학하는 바냐의 절망은 ‘가후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냐 삼촌의 어깨를 다독이는 조카 소냐는 “바냐 삼촌, 우리는 살아갈 거예요. 길고 긴 낮과 밤들을 살아갈 거예요. 늙어서도 안식을 잊은 채 일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때가 닥치면 불평 없이 죽어 갈 거예요. 그리고 우리 무덤 위에서 이렇게 말하겠지요. 우리는 고통을 겪었고 눈물을 흘렸고  괴로워했노라. 그리고 우리는 쉴 거예요"라고 위로한다.

소냐 역에 한국 배우 박유림이 수어 연기로 출연했다. 손도 표정이 있구나 싶을 만큼 아름다운 수어 연기를 보여 줬다. 연극 속 바냐와 소냐의 대사는 ‘가후쿠’와 ‘미사키(미우라 토코 )’의 돌 같은 마음을 서서히 움직인다. 꽁꽁 동여매어 감춰 두었던 아물지 않을 상처를 서로에게 내보이는 두 사람.  훅!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미우라 토코(미사키).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컷. 트리플픽쳐스, 영화사조아 제공.​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미우라 토코(미사키).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 컷. 트리플픽쳐스, 영화사조아 제공.​

영화를 본 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었다. 빌헬름 뮐러 (Wilhelm Müller)의 시에 곡을 붙인 가사를 눈으로 읽어가며 들었다. 혹독한 가난과 질병으로 죽은 슈베르트와 실연의 아픔으로 방랑의 길을 떠나는 겨울 나그네, 그리고 바냐 삼촌과 가후쿠의 모습이 겹쳐졌다. 죽음은 소멸이고 영원한 단절, 더는 함께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없는 눈물이다. 고요한 침묵 속에 울려 퍼지는 평화로운 크리스마스 캐롤 같은 환한 눈물 같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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