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 약자 향한 폭력...법이 허락했다
【연말기획】 약자 향한 폭력...법이 허락했다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1.12.25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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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국뉴스투데이가 짚어본 10大 키워드...⑥ 【약자 폭력】

- 이석준·김병찬 등 교제살인...경찰의 소극적인 가해자 제재가 발단
- 아동학대 강화방안·아동학대 살해죄 신설에도 아동학대살해 계속돼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바이러스가 올해까지 이어진 가운데 2021년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백신, 위드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까지 여전한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코로나를 뒤덮은 각종 이슈가 발생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됐고 2030세대의 표심을 두고 정치권의 촉각은 곤두섰다. LH사태로 시작된 부동산 시장의 불안감과 영끌‧빚투 논란을 빚은 비트코인은 우리 경제를 흔들었다. 갈수록 강력해지는 디지털 범죄에 대한 우려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미비하는 지적도 여전하다. 반면 올림픽 영웅들과 bts가 이른 문화적 쾌거는 잠시나마 코로나를 잊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에 한국뉴스투데이는 ‘2021년 10大 키워드’를 선정해 저물어가는 2021년을 정리해봤다. <편집자주>

[한국뉴스투데이] 스토킹처벌법 및 아동학대 살해죄 신설 등 관련법은 일진보했지만, 이석준 사건 등 스토킹·교제살인 사건부터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살인사건까지 약자를 향한 폭력은 여전하다. 

지난 17일 오전 이석준이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7일 오전 이석준이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됐다. (사진/뉴시스)

가해자 제재 없는 피해자 지원은 무용지물

데이트폭력은 연인이었거나 연인 상태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말한다. 다만 연인 관계로 발전한 적이 없는 일방적인 스토킹 범죄까지도 데이트폭력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잦고, 잔혹한 살인 사건을 데이트폭력이라고 부르는 경우 오히려 사안의 심각성이 드러나지 못하는 점 등을 이유로 최근에는 데이트폭력 대신 ‘교제살인’이나 ‘교제폭력’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추세다.

올해는 그야말로 교제살인이 끊이지 않은 한 해였다. 지난 5일 이석준(25)은 피해 여성을 대구로 끌고 내려가 자택에 감금하고 성폭행했다. 휴대폰이 부서졌던 피해자는 지인에게 메신저를 보내 아버지의 연락처와 함께 납치·감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에 피해자의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하자 이석준은 경찰 측에 동의하에 성관계를 가졌으며 감금이 아니라 동거 중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두 사람의 진술이 엇갈리고 이석준이 디지털 포렌식을 위한 휴대폰 제출에 순순히 임했다는 등의 이유로 신병을 확보하지 않은 채로 귀가시켰다.

이석준은 3일 뒤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가 피해자의 주소가 바뀌어 만나지 못하자 흥신소에 50만원을 주고 주소 파악을 의뢰했다. 이튿날 흥신소로부터 주소지를 전달받은 이석준은 흉기를 준비한 뒤 피해자의 집 주변에 머물며 공동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다음날인 10일 이석준은 피해자의 집 초인종을 눌러 문이 열리자 피해자의 어머니(49)와 남동생(13)을 흉기로 찔렀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고, 남동생도 심한 중상을 입었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아버지는 당시 자택에 없었다.

이석준 사건에서 가해자에 대한 경찰의 소극적인 조치가 교제살인의 발판이 됐다는 지적이 거세다. 피해자는 범행 3일 전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다. 경찰이 납치·감금·성폭행 사실을 신고받았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탓에 피해자 지원은 무용지물이 됐다.

김병찬 사건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는 김병찬과 결별한 뒤 지속적으로 폭언이 담긴 연락을 받아 지난 6월부터 5번에 걸쳐 경찰에 신고했다. 이에 피해자는 지난 7일부터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았고, 김병찬은 100m 이내 접근금지와 정보통신 이용 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받았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살해됐다. 범행 당일인 지난 19일 중구의 자택에서 김병찬을 마주친 피해자는 스마트워치를 통해 경찰에 2번 긴급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경찰은 피해자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요청으로부터 12분이 지난 후였고 피해자는 흉기에 심하게 다친 상태로 발견돼 끝내 숨졌다.

폭력에 시달리다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스마트워치까지 지급받았지만 끝내 살해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태현(지난 3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피해자가 연락을 거부하자 긴 스토킹 끝에 집으로 찾아가 피해자와 피해자의 어머니, 여동생까지 세 모녀 살해) ▲백광석과 김시남(지난 7월 옛 동거인이었던 여성의 아들을 살해)의 피해자들도 모두 신변보호 조치와 함께 스마트워치를 받은 상태였다.

정인이 이후의 1년은

약자를 겨눈 폭력에 있어 아동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13일 양부모의 학대로 입양 271일 만에 정인이가 사망했다. 이후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피해 아동의 이름을 딴 ‘정인이법’ 즉 아동학대범죄처벌 특례법의 개정안이 지난 3월 시행됐다.

그럼에도 아동학대 사건은 계속 발생했다. 지난 6월 양 씨는 생후 20개월 된 딸을 이불로 덮어 폭행하고 사망한 아동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화장실에 숨겼다. 사망 이틀 전에는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도 받았다. 

이외에도 지난 7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며 생후 33개월 입양아동을 폭행한 뒤 방치해 사망한 사건, 생후 70일 된 아동을 홀로 두고 집을 비우는 등 상습적으로 방치해 사망하게 한 사건, 8살 딸에 대소변을 먹게 하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하다가 지난 3월 샤워를 시키곤 물기를 닦아주지 않은 채로 화장실에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20대 부부 등 학대 후 사망하는 아이들의 비극은 이어졌다.

연이은 아동학대 사건에 이를 처벌하는 법안은 뒤늦게 강화됐다. 아동학대범죄처벌 특례법의 개정안에서는 처음으로 아동학대 살해죄가 생겼다. 기존 법안은 아동을 학대 끝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을 아동학대 치사죄로 규정하고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데 그쳤다. 이에 학대 가해자가 아동을 고의적으로 살해했어도 치사죄가 적용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형량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개정안에서는 살해죄 신설과 더불어 형량이 대폭 강화됐다. 살해의 고의성이 입증되는 경우 아동학대 살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피해아동에게 변호사가 없는 경우 국선변호사 선정을 의무화하는 조항 등 피해아동의 법률적 권익을 위한 조항들도 추가됐다. 

지난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정인이 양모의 항소심 3차 공판을 앞두고 시민들이 사형 구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정인이 양모의 항소심 3차 공판을 앞두고 시민들이 사형 구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계속되는 약자폭력 어떻게 막을까

그럼에도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에 조금씩 처벌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지난 6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4년에서 7년 사이의 형을 선고했던 아동학대치사에 최대 8년까지, 죄질이 나쁠 경우 최대 15년까지 가중처벌 할 수 있도록 상한선을 높였다. 양형위의 양형 기준은 재판부에 권고되는 것으로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준수율은 90% 이상으로 실효성이 크다.

처벌 기준만 있고 양형 기준은 없었던 아동학대살해죄에도 기준이 신설됐다. 아동학대살해죄에 해당하면 최소 17년에서 최대 22년 사이에서 형을 정하되 죄질이 나쁠 때는 징역 20년 이상이나 무기징역 이상도 선고할 수 있게 했다. 감경처벌 하더라도 최소 12년 징역을 선고하도록 해 형량은 전반적으로 상향조정됐다.

정인이 사건으로 아동학대 문제 중에서도 특히 입양아동에 대한 학대가 재조명되면서, 입양특례법 개정안도 여럿 발의됐다. 올해 제출된 입양특례법 개정안은 18개에 이른다. 개정안의 대부분에는 민간 입양기관 대신 국가가 입양 절차 전반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포함됐다.

교제살인 문제와 관련해서도 관련법 신설 등 제도적 개선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가령 지난 10월부터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다. 스토킹 행위의 신고를 받으면 경찰은 제지, 처벌 경고, 피해자와의 분리 등 조치해야 하고, 스토킹이 반복적으로 행해질 우려가 있으면 100m 내 접근 금지 등 긴급응급조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만 스토킹처벌법의 시행 이후에도 스토킹 관련 강력 범죄가 잇따르자 피해자 보호를 위한 추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스토킹 범죄 신고는 하루 105건으로 4배 정도 폭증했고 신변보호 요청 건수도 작년에는 1만4700건이었지만 올해는 벌써 2만1700건 정도로 전년 대비 최소 55% 증가했다.

이에 서울경찰청은 스토킹범죄 대응개선 TF를 꾸려 스토킹 관련 조기경보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대안을 마련에 나섰다. 조기경보시스템이란 사건 초기부터 현장관리자가 위험 정도를 주의·위기·심각 3단계로 등급을 정해 대응하는 내용이다. 각 단계는 가해자의 범죄 전력 등을 고려해 정해진다.

이외에도 서울청 상황실에서 민감사건전담반을 편성해 스토킹이나 성폭력,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등 신변보호 대상 사건의 신고이력을 접수 때부터 관리해 활용하는 방안, 스마트워치로 신고가 접수되면 스마트워치의 위치 뿐만 아니라 신고자의 주소지나 직장에도 동시 출동하는 방안 등이 나왔다.

위기·심각 단계에 해당하는 가해자가 동의할 경우 전문상담심리사와 상담치료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가해자 행동 교정 프로그램, 스마트워치 외에도 현관 CCTV, 스마트 도어락 등 치안용품이 담긴 안심홈세트를 지급하는 안도 결정된 바 있다. 교제살인과 같은 강력범죄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굳게 마련된 만큼, 범죄 억제를 위한 사회제도적 투자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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