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문다.
송년회로 바쁘게 보내다 보니 12월도 마지막이다.
뭔가 한 것도 없는 데 시간만 가 버렸다.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사이 문득 인생의 허무함이, 무상함이 느껴진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오늘도 어제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뻔하고 뻔한 삶,
삶의 무가치함이 느껴질 때 난 이 말을 떠올린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시인 폴 발레리가 「해변의 묘지」란 시에서 한 말이지만,
사실… 그 시를 보고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에서
강하게 다가왔다.
<바람이 분다>는 제국주의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론, 제국주의를 비판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 이유는…
주인공의 순수한 꿈이 제국주의로 인해 너덜너덜해졌기 때문.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주인공, 지로의 순수한 꿈은
전쟁과 제국주의라는 현실과 타협하면서 드디어 실현된다.
하지만,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이 폭탄을 실어 나르는 끔찍한 도구가 되고,
사랑하는 부인마저 결핵으로 죽었을 때
지로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끝은 너덜너덜했다.
한 대도 안 돌아온다,
가기만 할 뿐 돌아오지 않는다,
비행기는 아름답지만 저주받은 꿈이다.
하늘은 전부를 삼킨다.
-<바람이 분다> 중에서-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가미카제가 된 상황에서 지로는 자조적인 말을 내뱉는다.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꿈은 부정당하고,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
지로는 뺨을 스치는 한 점의 바람을 느낀다.
그리곤 미소를 짓는다.
바람이 부니 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발견한다.
자신의 꿈이 끔찍한 저주가 되었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삶은 때때로 찾아오는 죽을 만큼 힘든 모든 상황을 넘어선다.
어느 날 느끼는 한 점의 바람은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이유가 된다.
이보다 명확히 살아야 할 이유를 댈 수 있을까?
천형을 받은 시지프스가
떨어질 걸 알면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돌을 올리는 이유도 같다.
그는 아마 돌을 올리면서 순간 불어오는 바람의 시원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기분 좋게 부는 바람은 힘들게 반복되는 행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천일지도…
때문에 시지프스는 중단하지 않고 오늘도 힘들게 돌을 올리고 있다.
누군가 왜 사냐고 묻는다면?
누군가 삶의 의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너무나 단순해서 이해하지 못할 수 없고, 곱씹을 필요도 없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