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나는 우산이 정말 좋아!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나는 우산이 정말 좋아!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1.12.30 2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품은 스스로 말한다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사울 레이터(1923~2013). “사진은 미완성 세계의 파편이자 기념품”일 뿐이라고 말한 사울이지만, 그의 사진은 미완성 세계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천상의 소리처럼 영혼을 울린다.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일상의 사소한 부분들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하여 보여주는 경이로움! 유대계 이민자였던 사울은 부친이 유명한 탈무드 학자였다. 부친의 뜻에 따라 사울도 유대교 신학 공부를 했으나 결국,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빛 대신 사진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예술가가 됐다. 어쩌면 그것이 신의 뜻이었을까.

사울 레이터의 사진 Red Umbrella, c.1958. 피크릭, GLINT제공.
사울 레이터의 사진 Red Umbrella, c.1958. 피크릭, GLINT 제공.

내 사진은 왼쪽 귀를 간지럽히는 게 목적이에요. 아주 살살

영화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In No Great Hurry. 원제 : Saul Leiter : 13 Lessons in Life with Saul Leiter>(2013)는 사울이 세상을 떠나기 2~3년 전에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화가가 되고 싶어서 신학교가 있던 클리블랜드를 떠나 뉴욕으로 간 사울은 먹고살기 위하여 생업으로 20년간 패션 잡지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렸고, 사는 동네 로어 이스트 거리와 그곳 사람들을 사진에 담았다. 22세부터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쭉~.

지금은 ‘컬러 사진의 선구자’로 평가받지만, 사울이 활동하던 1950년대는 칼러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는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 흑백 사진이 대세를 이루던 시대였다. 사울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많은 사진가가 컬러 사진을 얕보거나 얄팍한 것으로 여길 때에도 사울은 컬러 사진을 좋아했기에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작업을 계속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35밀리 코닥 필름을 사용하여 변질한 색감을 표현하거나, 한 번의 노출로 여러 겹의 이미지를 생성하도록 유리를 통해 피사체가 반사된 모습을 촬영하는 등 예술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독특한 시선을 통하여 뉴욕의 일상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 됐다. 추상적이면서 지극히 계산된 구성 작품으로.

사울 레이터의 사진 Cap, c.1960. 피크닉, GLINT 제공.
사울 레이터의 사진 Cap, c.1960. 피크닉, GLINT 제공.

작품은 스스로 말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추상 표현주의 화가 바넷 뉴먼(1905~1970)는 ‘작품은 스스로 말한다. 나는 그냥 내버려 둘 뿐이다’는 말로 작품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을 극히 지향했다. 맞는 말이다. 사울의 사진이 바로 그렇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는 이에게 영혼의 말을 건다. 특히 우산을 좋아했던 사울은 많은 우산 사진을 남겼다. 폭설의 눈길에 저 멀리 아주 살짝 보이는 빨간 우산을 비롯하여 노란 우산, 초록 우산, 검정 우산 등등. 각양각색의 다양한 모습의 우산 사진이 참 많다. 별로 소중한 물건 같지 않은 우산도 이처럼 황홀한 연출을 보여주며 아름다움을 선물하다니. 왼쪽 귀가 아주 살살 간지럽다.

영화를 연출한 토머스 리치 감독은 우연히 사울 레터의 「Early Color」 사진집을 보고 작품에 매료되어 카메라를 둘러메고 무작정 영국에서 뉴욕으로 달려갔다. 근사한 작품을 만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에 비하면 내가 한 일은 별거 아니라면 영화 촬영을 못마땅히 여겼던 사울을 어떻게 설득했을까? 영화는 2013년 미국에서 개봉됐다.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시애틀 타임즈에 ‘올해 최고의 영화 10편’에 이름을 올렸다.

토마스 리치 감독 & 사울 레이터.  피크닉/GLINT 제공
토마스 리치 감독 & 사울 레이터. 피크닉, GLINT 제공

영화를 통하여 생전에 사울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인생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영화의 제목처럼, 사울은 차를 마시며 친구와 담소하듯이, 혹은 함께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듯이 본인의 생각을 툭툭 던졌다.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이 나한테는 유명인 사진보다 훨씬 흥미롭다”며, 젖은 창문에 맺힌 빗방울이 얼마나 오묘하고 아름다운지 들려준다. 사진의 좋은 점은 ‘보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라며, 세상의 모든 것은 사진으로 찍을 만하다고. 미리 계획하고 사진을 찍은 적은 없다는 그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드러나 있는 것들도 있고 숨겨진 것들도 있는데, 우리는 눈앞에 드러나 있는 게 현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숨겨진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생의 지혜를 들려줬다.

미술 비평가 막스 코즐로프의 말처럼, 사울은 사진가라는 말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진가라고 부르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울은 미완성 세상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무한한 갈망을 가진 구도자처럼 보인다. ‘간구하다’, ‘소망하다’의 히브리어 ‘사울’의 뜻처럼. 사울은 신을 떠났지만, 늘 신을 간구했고 인생의 중심에 신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며 살아 오지 않았다”는 사울의 말이 의미 있게 담겼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