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린다는 것⓵
달린다는 것⓵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2.01.07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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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줌마도 애를 낳는데,
아랫집 할머니도 하는데….”

마녀 체력이 된 이영미 북에디터가 처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남들도 하는 데 나라고 못 할까? 하는 마음을 가진단다. 

그렇게 그녀는 달리기 시작했고, 수영하고, 사이클을 탔다. 
책이 출판될 때까지 마라톤은 10회, 트라이에슬론도 여러 차례 참가했다. 
지금은 더 많이 달리고, 탔겠지?
그녀는 소위 말하는 저질 체력에서 책 제목처럼 마녀 체력을 가지게 됐다. 

나의 달리기 경력은 이제 2년. 
이영미 씨처럼 체력을 키우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덤으로 체력이 좋아진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녀가 할 수 있다는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달린다. 
하지만, 난 달리면서 고독과 싸우지 않는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제보다 나은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다만,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 달린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고, 어쩔 수 없이 드는 미래의 불안함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는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야!
비로소 불안함은 조금씩 멀어진다. 그 자리에 자신감이 자리 잡는다. 
나에겐 달리기가 그렇다. 

예전에 봤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왜 주인공이 끊임없이 달렸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로부터 놀림을 당했을 때도, 눈물이 차오르는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검프는 이겨내기 위해 달렸다. 
검프가 그랬다. 

계속 달리다 보면 세상의 힘든 일이나 나를 어렵게 하던 일들은 모두 작아진다. 
지금 바로, 직면한 달리기의 힘겨움이 있기에 
다른 그 어떤 것은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을 틈이 없다. 
다 달리고 나서는 흐르는 땀과 함께 성취감, 자신감이 생겨나기에
나를 힘들게 했던 생각이나 일들은 또 달아나버린다. 

달리는 것은 그렇다. 
나에겐 불안감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복장이나 기구를 갖춰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운동화 하나만 신고 집만 나서면 된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다리만 움직이면 된다. 

새해가 시작됐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면 달리기를 권하고 싶다. 

끝으로, 달리기를 통해 성찰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프랑스의 철학자, 기욤 르블랑 『달리기-형이하학적 성찰』을 인용한다. 

“주자는 계속해서 달릴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마지막에 그는 자신이 달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샤워를 하면서 그가 가벼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성취된 일의 가벼움이다. 
그러나 이 끝은 미리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달리기의 아름다움이다. 
어떤 지식도 미리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도 그 끝에 이를 때까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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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자 2022-01-13 17:26:06
내일부터 아무 생각없이 걷기라도 실천해 보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