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린다는 것⓶
달린다는 것⓶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2.01.14 09: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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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리기 속도는 그리 빠른 편이 아니다. 
시속 8킬로 정도 되니 남들이 보기엔 좀 빠르게 걷는 정도?

처음 달렸을 때도 그랬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속도는 거기서 거기다. 
한때는 조금 더 빨리 달려보려고 욕심을 내기도 했었는데.
이내 그만둘 수밖에 없는 사건(?)을 경험했다.
 
그 날도 난 평소대로 내 페이스대로 달리고 있었다. 
옆 사람과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숨이 차지 않게 천천히
가능하면 주위의 풍경도 감상하고, 상쾌한 바람도 느끼면서.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한 사람이 ‘쌩’하고 지나갔다. 마치 보란 듯이, 뽐내면서.
‘야, 야…. 관둬라, 관둬! 어디 가서 달린다고 하지 마!, 
달리려면 적어도 나처럼 달려야 달린다고 할 수 있지.’ 

저 사람은 얼마나 오래 달렸을까?
얼마나 연습을 했기에 저렇게 순식간에 나를 앞질러 갈 수 있을까?
부럽다.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뒤처지는 나를 보며 은근 자존심도 상했다.
 
‘그래 나도 저 정도는 뛸 수 있지 않을까?’

속도를 좀 올렸다. 
이 정도면 별 무리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동안 연습한 보람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지점을 지나니 갑자기 더 뛸 수가 없었다. 
내 페이스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뛰다 보니 과호흡이 온 것이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숨을 쉴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했다. 
멈추고 나서도 한참 동안 허리를 숙여 기침하고, 구역질하고 나서야 좀 진정이 됐다.
큰일 날 뻔했다. 

부러우면 진다고 하는데 내가 딱 그 꼴이 아니던가?
남들이 가는 속도를 부러워하고, 그 속도로 무리하게 가다 보니.
결국엔 목표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도중에 그만두고 말았다.
이후 괜히 오기가 나서 숨을 가다듬고 다시 뛰어보려고 했지만, 덜컥 겁부터 났다.
다시 과호흡이 올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겨 버렸다. 그날은 더 이상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남들이 가는 속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달리기를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100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에서.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쉬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한단다.
쉬는 동안 남들이 뛰어가더라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남들의 속도가 아니라, 내 속도에 맞게 좀 더 속도를 내다가, 또 더 늦추다가.
그렇게 완주하고 난 뒤 그는 말한다. ‘나는 결코 걷지 않았다.’

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남들 페이스를 따라가는 건 중요하지 않다. 
계속해서 내 페이스를 올리려고 애를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내게 맞게 완급을 조절하며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천천히, 컨디션이 좋을 때는 조금 더 속도를 내고.
뛰다가 걷거나 멈추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스스로를 조절하는 것!!
그렇게 장거리를 뛸 수 있게 된다. 

달리기는 속도만 줄이면 누구나 무난히 완주할 수 있다. 
남들이 보는 시선,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조금 내려놓고,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면.
쉽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난 오늘, 달리기에서 남을 따라가는 속도가 아니라 
나를 내려놓는 방법을 배웠다.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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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자 2022-01-24 14:06:45
글을 읽으면서 인생도 달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완급 조절도 필요하고 다른 사람을 보면서 거기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나 자신만의 페이스로 나아간다는 외로운 싸움(?)같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달리기 2022-01-19 15:34:14
생각보다 시간을 내서 밖에서 움직인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이것도 작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하여간 올 해에는 무언가 움직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