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학교 가는 길'…김정인 감독을 만나다
【인터뷰】 영화 '학교 가는 길'…김정인 감독을 만나다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1.19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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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학교 설립까지의 장애인 부모들의 투쟁 이야기, 영화 '학교 가는 길'
주택 정책 실패 등 반대 측 주민들 입장 단편적으로 다루지 않으려 노력
장애인 문제 갈 길 멀지만 투쟁하는 만큼 바뀐다...낙관이 운동 원동력 돼
'학교 가는 길' 김정인 감독.
▲1월 중순, 한국예술종합학교 부근에서 김정인 감독을 만났다. 2007년 ‘카바넷을 찾아서’로 데뷔한 뒤 5개 작품을 촬영한 김정인 감독은 우연한 계기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싸우는 학부모들을 만나 ‘학교 가는 길’을 제작했다.

[한국뉴스투데이] 자식을 먼저 보내는 슬픔보다 더한 슬픔은 없다지만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부모들이 있다. 장애인 자녀가 부모 없이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해보는 부모들의 이야기다. 장애인에게는 취직도 자립도 어려운 일이지만 기본교육을 받는 일 역시 쉽지 않다. 특수학교가 턱없이 부족해 많은 발달장애인 청소년들은 매일 기나긴 등하교 시간을 견뎌야 한다. '학교 가는 길'은 서울시 강서구의 특수학교인 서진학교의 설립을 위해 싸우는 강서장애인부모회의 이야기를 담았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걸어야 하는 투쟁의 길을 함께 걸어온, 김정인 감독을 만났다. <편집자 주>

서진학교는 지난 2020년 3월 개교한 서울시 강서구의 특수학교다. 특수학교를 신설하겠다는 교육청의 예고로 서진학교는 당초 2016년 개교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같은 자리에 특수학교 대신 한방병원을 짓겠다고 공약하면서 인근 주민들은 특수학교 설립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2017년 ‘제2차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설립 주민토론회(이하 주민토론회)’에서 하다 못한 장애인 부모들이 반대 측 주민들에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면서, 서진학교는 전국적인 관심 속에 어렵게 설립됐다.

2017년 당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1차 주민토론회 소식을 접한 김정인 감독은 카메라 한 대를 들고 2차 토론회장을 찾았다. 그것이 영화'학교 가는 길'의 시작이 됐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대학원생이었던 김정인 감독이 서진학교가 개교하기까지의 과정을 장편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 강서장애인부모회 활동가들은 흔쾌히 허락했지만 정말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이야기가 어떻게 다큐멘터리가 될까, 대학원생 하나가 와서 부탁하니 거절은 못 하고, 제풀에 지치면 관두겠지그런 마음으로 허락을 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김정인 감독은 곧 학교 가는 길을 위한 어머님들의 투쟁에 함께 하는 길벗이 됐다. 투쟁의 길목마다 김정인 감독과 그의 카메라가 함께 했다. “영화를 처음 보시고 어머님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한참 투쟁을 할 때는 장애인 부모들만 싸우는 줄 알았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웠는데 돌아보니까 김정인 감독이 항상 우리 곁에서 같이 싸우고 현장에 있어 줬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절대 외롭지 않았다고요. 부모님들이 많이 응원해주셨던 만큼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는데, 그 말씀을 듣고는 그간의 노력이 헛되진 않았다 싶었습니다.”

반대 측 주민 입장 균형감 있게 담으려 노력

영화에는 2차 주민토론회 현장을 포함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격렬한 모습이 모두 담겼다. 그럼에도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오히려 반대 학교 주민들의 입장도 헤아려보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그저 선악구도로만 당시 상황을 담지 않으려는 김정인 감독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가는 길'은 먼저 사건의 배경이 되는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의 역사를 짚는다. 1990년 정부는 가양동에 국내 최대 규모 영구임대아파트를 건설한다. 영구임대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장애인·기초생활수급자·탈북민·독거노인 등 가양2동의 소외계층 거주 비율은 전국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서진학교 설립 이전 강서구에는 교남학교가 있었던 데 반해 인근 양천구에는 특수학교가 없다. 이미 특수학교를 보유하고 있는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하나 더 짓자는 주장은, 어떤 가양동 주민들에게는 강서구에서만 반복되는 가난의 대물림을 연상하게 했다.

김정인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 반대 측 주민들의 입장을 담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많은 언론 콘텐츠들은 반대 측 주민들의 입장을 그냥 지역 이기주의나 님비로만 국한해서 전달하곤 했어요. 저는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그 지역주민들 역시 그 이전에 또 다른 의미에서의 아픔과 상처가 있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그 부분을 폭넓게 다룰 수 있을지가 굉장히 고민이었어요.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이분들이 왜 반대할 수밖에 없는지 그 근원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김정인 감독은 반대 측 주민으로부터 소송을 받기도 했다. 자신이 나온 부분을 삭제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이었다. 영화의 공익성이 크고, 해당 주민의 인격적 이익이 중대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서울북부지법의 판결로 소송은 마무리됐지만 감독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소한 소송이라도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그렇게 소송까지 하시게 된) 상황에 제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그분들을 단편적으로만 담지 않으려고 그래서 많이 노력했었던 건데 그분들이 어떤 심정이셨을지 마음이 많이 쓰였어요.”

영화 ‘학교 가는 길’ 중 일부 캡처.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해 삭발 시위에 참여한 강서장애인부모회 조부용 활동가와 자녀 현정이 서로 기대어 있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해 삭발 시위에 참여한 강서장애인부모회 조부용 활동가와 자녀 현정이 서로 기대어 있다. (영화 ‘학교 가는 길’ 중 캡처)

투쟁의 동지로 남은 인연들

영화에선 반대 측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도 의연한 강서장애인부모회 회원들의 모습이 두드러졌다. 김정인 감독은 서로를 의지하며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온 어머님들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다. “장애 관련 활동들을 하시면서 한고비 한고비들이 쉽지 않으셨을 거고, 낙심될 때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발달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그분들 사이에서 끈끈하게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너희들이 없었으면 그냥 포기했을 것 같다’, 본인들 스스로도 그렇게 말씀하시고요.”

강서장애인부모회 활동가들은 구청 점거에서부터 삭발 시위에 이르기까지, ‘내 아이의 엄마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한 활동가로 거듭난다. 서로를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가깝다고 술회하기도 한다. “특수학교 설립들에 앞서셨던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성인기여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교가 지어지지 않아도 상관이 없거든요. 근데 내 아이가 어렸을 때 느꼈던 어려움들을 젊은 후배 엄마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오셨던 거예요. 4, 5년 그 이상을요. 다음 후배들을 위해서 그렇게 앞장서시는 게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김정인 감독은 촬영 중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의식적으로 어머니들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어느 한 편에 서기 쉬운 이야기의 특성 상 감독이 먼저 입장을 분명히 할 경우 관객들의 객관적인 이해를 해칠 거라는 우려에서였다. “그래서 개봉 이후에 함께 행사를 다닐 때 어머니들이 제가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 줄 모르셨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촬영하러 가면 대화는 하지만 일상적으로 수다를 떨거나 하지는 않았거든요.”

영화 촬영을 마친 이후에도 김정인 감독과 강서장애인부모회의 활동가들은 동지로 남았다. “시사회에 초대 받으면 어머님들과 함께 보러 다니기도 하면서 지냅니다. 저도 그렇고 어머님들도 그렇고, 우리가 이번 생에 한 번 인연이 돼서 좋았다, 그렇게 이야기하곤 해요. 한 번은 꼭 만났어야 할 인연이라고요. 어머님들을 만나면서 제가 많이 배우고, 제가 몰랐던 거대한 세계를 만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머님들도 '학교 가는 길'로 인해서 코로나로 쉽지 않은 시기에 발달장애인에 대해 사람들이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돼서 참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서로가 서로를 만나서 참 좋다,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
▲김정인 감독은 ‘학교 가는 길’을 통해 장애 자녀를 둔 학부모들과의 여정을 함께 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이루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학교 가는 길'에도 비춰졌던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나 특수학교 신설 등의 문제는 아직도 제자리에 머물러있다. 이에 김정인 감독은 빠르게 변하지 않고 빠르게 응답하지 않는 사회가 야속할 때도 있다고 고백하면서도 낙관을 잃지 않는 것이 운동의 힘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다양한 현안들이 있는 만큼 그 중에서도 발달장애인 문제가 왜 필요한지 그 당위성을 계속 사회를 상대로 설득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도 노력한 만큼 사회가 바뀌고 진보하기 때문에, 어머님들도 투쟁을 계속 하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갈 길이 멀지만 마냥 비관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이후 노약자와 임산부 등 다른 교통약자들의 지하철 이용 역시 수월해졌듯이, 김정인 감독은 장애인에게 살기 좋은 세상이면 비장애인에게는 얼마나 살기 좋겠느냐고 묻는다. 장애 문제에 아는 것도, 관심도 없던 자신이 이제는 최소한 장애인들을 낯설게 여기거나 이유 없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처럼, 김정인 감독은 앞으로도 이런 사소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현재 김정인 감독은 '학교 가는 길'의 제작기와 장애 인권 문제에 대한 감독의 시각을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다. 후속 영화에 대한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김정인 감독은 다음 작품이 무엇이 될진 모르겠지만 사회의 가려져있는 부분을 조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카메라가 힘을 보탤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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