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포커스】 김태현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종신형 도입될까
【위클리 포커스】 김태현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종신형 도입될까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1.22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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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소 검색 등 범행 계획 정황...“가족은 우발적 살해였다” 주장
1·2심 모두 검찰은 사형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무기징역 유지해

재판부 “사형 실효성 없어 무기징역”...행정부에 가석방 지양 권고
사형 찬성 여론 우세하지만 종신형 등 대체형벌에도 공감대 있어
지난해 4월 김태현이 서울 도봉구 도봉경찰서에서 검찰 송치 전 취재진 앞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4월 김태현이 서울 도봉구 도봉경찰서에서 검찰 송치 전 취재진 앞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세 모녀 살해’ 피의자 김태현에 대해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하되 가석방하지 않을 것을 행정부에 권고한다고 밝히면서 사형의 실효성과 종신형 도입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스토킹 후 가족까지 살해...검찰 사형 구형

지난 2020년 11월 김태현은 한 온라인 게임 사용자의 대면 모임에서 A씨를 만난 뒤 지속적으로 A씨를 스토킹했다. 김씨는 A씨가 SNS에 올린 사진 속 택배 상자를 보고 주소를 알아내기도 했다. A씨가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자 김씨는 범행을 예고하는 협박 메시지를 보낸 뒤 범행을 준비했다.

김씨는 피해자가 3월 24일과 25일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내 3월 23일을 범행일로 정했다. 휴무일 직전을 범행일로 고르면 범행의 발각이 늦어질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전자기기 포렌식 조사에서 경동맥 등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급소 부위를 검색한 내역이 확인되기도 했다. 범행 당일 김씨는 범행에 사용할 도구를 마트에서 훔치고, 퀵서비스를 가장해 A씨의 집에 찾아갔다. 

집에 있던 A씨의 여동생을 살해한 뒤 현장에 계속 머물러있던 김씨는 당시 “(여동생을 살해한 이상) 이제는 벗어날 수 없고 잡힐 것이란 생각이 들어 계속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와 A씨를 차례로 살해했다. 

김씨는 범행 뒤 3일간 범행 현장에 머물며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사망하지는 않았다. A씨의 휴대전화 보안 패턴을 알고 있던 김씨는 범행 직후 A씨의 휴대전화에서 자신과 주고받은 대화 내역을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경찰은 김씨를 살인, 절도, 특수주거침입, 정보통신망침해, 경범죄처벌법위반죄 등 5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선 A씨 가족 살해에 대한 우발성이 쟁점이 됐다. 김씨 측은 줄곧 A씨를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들은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A씨의 가족 구성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다만 A씨의 주거지를 범행 장소로 택한 이상 가족을 죽이지 않고 A씨만 죽이는 것이 가능하냐는 경찰의 질문에 김씨는 그러기 어렵다고 답하기도 했다. 

1심에서 검찰은 “생명을 부정하는 극악한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는 게 불가피하다”며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우발적인 범행이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범행 대부분을 인정하고 있는 점, 이전에 벌금형 이상의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범행 후 도주하지 않은 점, 반성문을 제출한 점, 유사 사건들과의 형평성 등이 고려됐다. 이에 검찰과 김씨 측 모두 즉각 항소했다.

“무기징역이지만 가석방 없어야” 이례적 권고...절대적 종신형 도입될까

2심에서도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의 판결은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이었다. 다만 재판부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집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명시적으로 밝힌다”는 이례적인 판결문을 내놨다. 재판부는 “사형 선고가 마땅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면서도, “지난 25년간 집행된 적 없어 사형이 형벌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한 상황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종신형이 권고된 셈이다.

재판부는 “가석방 여부는 행정부의 소관으로, 법원의 의견이 행정부에 얼만큼 기속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렇게라도 해야 세 모녀의 원혼을 달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줄곧 사형을 요청해온 유족들은 재판 이후 “김태현과 같은 살인마가 세상에 나와서 햇빛을 보면 안 된다”며 “김태현이 종신형을 살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현행 법률상 무기징역은 형 집행 20년 이후부터 법무부의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수감자들을 가석방할 수 있다. 이에 많은 중범죄자들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사망시점까지 형을 다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돼왔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1997년으로, 지난 25년간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사형이 마지막으로 선고된 것은 지난 2015년 대구에서 전 여자친구의 부모를 살해한 장씨다. 그 전에도 2014년 강화도 해병대 부대 내에서 총기를 난사한 임모 병장 등 사형 선고는 드물게 이어졌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채로 수용돼있는 사형수는 60여 명에 이른다. 

이에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벌여온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부터 한국을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 폐지국은 108개국, 법적 또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은 144개국에 이른다. 전세계 사형 집행 건수 역시 2020년 기준 전년 대비 26% 감소해 10년 중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인 추세로 해석된다.

국제앰네스티는 ▲사형의 범죄억제효과가 미비하다는 점 ▲많은 국가에서 사형이 정치적인 무기로 활용된다는 점 ▲보석금 제도가 존재하는 한 처벌은 가난한 자에게 불리하다는 점 ▲가해자의 생명 박탈이 피해자의 회복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해왔다.

반면 국내 여론은 사형에 우호적인 편이다. 지난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사형제를 ‘매우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58.2%, ‘다소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22.5%에 이르는 등 사형제 찬성 비율은 80.7%에 달했다. 대체형벌의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36.5%에 그쳤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8년 실시한 조사에서 사면 및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이 대체형벌로 적절하다는 의견이 78.9%에 달했던 점, 대체 형벌 도입을 전제로 한 경우 사형제 폐지에 동의하는 비율이 66.9%였던 점 등을 미루어볼 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도입에는 비교적 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사형제에 대한 국내외의 경향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번 재판부의 이례적인 발표로 절대적 종신형 도입 가능성이 비춰진 만큼 대체형벌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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