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세컨드’.... 시간을 초월해 빛나는 영원
‘원 세컨드’.... 시간을 초월해 빛나는 영원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2.01.26 2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백 여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이며 배우이자 영화감독이며 코미디언이자 화가인 기타노 다케시(1947)는 2002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여, 한 인터뷰에서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고 말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내다 버리고 싶다’고 냉소적으로 말한 가족이지만, 가족에게 자신의 발언을 속죄라도 하듯, 후에 자신의 자서전(KITANO PAR KITANO, 2010)에서 만약 어머니가 없었다면 자신은 아마도 야쿠자가 됐을지 모른다고,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속마음을 토로했다. 과연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

'원 세컨드' 스틸 컷. 찬란 제공.
'원 세컨드' 스틸 컷, 찬란 제공.

영화 <원 세컨드 원제 : 一秒鐘/ One Second>(2020)는 가족의 정체성을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내가 얼마 전에 영화를 보는데 뉴스 필름에서 자네 딸을 봤다”는 편지는 남자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몰아간다. 이미 죽은 딸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남자는 수감 중인 교화소를 탈옥하여 영화가 상영되는 마을로 달리고 달린다.

한편, 빌려온 전등갓을 망가트려 괴롭힘을 당하는 남동생을 위하여 필름이 들어 있는 필름통을 훔치는 한 소녀. 필름통을 놓고 서로 뺏고 뺏기는 남자와 소녀의 숨바꼭질 같은 긴장감으로 영화는 서사를 구축한다. 티격태격하면서 서로의 속사정을 알게 되고, 결국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온기는 혈연 중심의 가족에서 확장된 가족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소녀 류가녀 역의 류호존, '원 세컨드' 스틸 컷, 찬란 제공.
류가녀 역의 류호존, '원 세컨드' 스틸 컷, 찬란 제공.

영화의 시대 배경은 중국 문화혁명 전인 중국 대약진운동에서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과도기를 담고 있다.1964년 제작된 <영웅아녀(英雄兒女>가 영화 중간에 실제로 상영되고, 동네 주민들은 집단농장에 근무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후 문화혁명 정책이었던 농촌 청년에게 제공되는 대학교 무료 교육 공고까지 영화에서 그대로 보여 준다.

문화혁명 전에 진행된 대약진운동은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중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실현하려는 시도로 시작되지만, 대약진운동이 실제로 추진되면서 생산의 대약진이 아니라 생산의 대폭락이 발생했고, 중국 경제에 농·경공업의 퇴보와 중화학공업의 과다 발전이라는 기형적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3천만~5천만 명에 달하는 중국 인민들이 아사하고 경제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파멸적인 결과가 초래됐는데, 이로써 권위를 실추한 마오쩌둥은 자신의 권력 회복을 목적으로 1966년에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영화에서도 이와 같은 시대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부모가 없는 소녀 가장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어린 남매는 이웃과 사회로부터 방치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영화는 아름답다. 영화는 모름지기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누추한 행색이나 옹색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세간이나 허름하게 사는 모습들은, 동네 너머 고비사막의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 언덕의 능선에 비추는 반짝이는 햇빛의 아름다움에 그만 마음이 녹는다. 모래 언덕의 그림자와 빛의 조화라니. 감독은 바람과 빛에 따라 움직이는 사막의 풍경을 마치 변화무쌍한 필름이 담고 있는 영화의 움직임에 빗대어 은유한다. 영화는 간결하고 아름답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 속에서 상영되는 <영웅아녀(英雄兒女>(1964) 가 한국전쟁 당시 항미원조(抗美援朝)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참전으로 인해 미국이 힘든 상황으로 벌어졌던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라 적이 놀랍고 불편하다.

남자 장주성 역의 장역, '원 세컨드' 스틸 컷, 찬란 제공.
장주성 역의 장역, '원 세컨드' 스틸 컷, 찬란 제공.

영화를 연출한 장예모 감독은 1988년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어서 <국두>(1990)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및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됐고, <홍등>(1991)으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수상, <인생>(1994)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집으로 가는 길>(1999)로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는 등 칸∙베를린∙베니스 최고상을 석권했다.

주인공 아버지 역은 장역, 소녀 역은 류하오춘이 맡았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열린 제15회 아사아필름어워즈에서 감독상과 신인상을 받았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