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 ‘안녕망원’ 편집장 다원
【인터뷰】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 ‘안녕망원’ 편집장 다원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2.01.27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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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제작·배포까지 혼자 하는 동네 사람이 만든 동네 잡지
평범한 직장인이자 편집장이 생각하는 진짜 N잡러의 의미
우체국 폐국 반대·바자회 등 소소하지만 특별한 일상의 기록
로컬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로컬 잡지의 미래

[한국뉴스투데이] 평범한 30대 무역회사 직원이 동네 이야기가 담긴 작은 잡지를 펴냈다. 기획부터 취재, 출판, 배포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서 했다. 재밌어서 시작한 일이 벌써 6호까지 출간됐다. 어느새 '안녕망원'은 1인 출판 로컬잡지의 교과서로 평가받는다. 작고 소소한 동네 이야기가 작은 파문을 던진다. 순탄치만은 않았던 시간이었지만, 꾸준히 책을 낼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사람의 따뜻한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편집자 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는 조금 특별한 잡지가 나온다. 20페이지 남짓한 두께에, 때마다 다른 망원동 이야기가 알차게도 담긴다. 독립책방, 우체국, 유기견들의 이야기를 싣고 평범해 보이지만 실상은 특별한 망원동 사람들을 만난다. 발행처는 마포구청도, 망원동주민센터도 그렇다고 잡지사도 아닌 한 사람이다.

2020년부터 로컬 매거진 '안녕망원'을 펴내는 다원 씨.

내 손으로 기록하는 이야기

1인 잡지이자 종이 매거진, 동네 사람이 만든 동네 잡지 '안녕망원'을 만드는 다원 씨는 홍대, 성산을 거쳐 3년째 망원동에 터를 잡고 산다. 코로나 19의 기세가 무섭던 2020년, 우연히 망원동 우체국 사거리에 있던 우체국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페이스북 커뮤니티 ‘망원동 좋아요’를 통해 알게 됐다.

“처음엔 그저 아쉽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런데 글이 올라온 후 3일 만에 100여 명이 모금에 참여하더라고요. 곧 현수막 100여 개가 우체국 사거리를 중심으로 길에 깔렸어요. 출퇴근길에 현수막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망원동 사람들이 무척 멋있었어요. 자세히 기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원래 동네의 소소한 이야기, 작은 모임을 좋아했어요. 동시에 저만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어요.”

계기가 우체국이었다면 기회는 우연히 듣게 된 워크숍이었다. 비슷한 시기, 합정동에 자리한 잡지 큐레이션 서점 종이잡지클럽에서 ‘로컬’과 ‘퇴사’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열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주제와 함께 잡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다원 씨는 워크숍을 통해 우체국의 상황과 더불어 로컬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떠올렸다. ‘동네의 기록을 잡지로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십여 년간 한 회사에 다니며 인풋을 만들어냈지만, 본인만의 아웃풋을 만들어내겠다는 강력한 욕망에 차올랐다. “해보자. 어떻게든 3호까지만 만들어보자.” 그렇게 로컬과 커뮤니티, 사람, 잡지 그리고 망원이란 키워드가 모여 '안녕망원'이 탄생했다. 2020년 6월이었다.

3호까지는 만들자고 시작한 <안녕망원>은 현재 6부까지 나왔다. 다원 씨는 앞으로 10년간은 쭉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모든 것을 혼자 했다. 동네에서 생활하다 궁금하거나 재미있는 것들을 기록하고 편집 프로그램을 배워 디자인을 완성했다. 제본은 컬러 인쇄 비용이 부담스러워 프린트기를 사서 집에서 직접 했다. 동네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렸고, 책을 주문하면 자전거를 타고 직접 배달도 갔다.

아침마다 ‘내가 이걸 왜 하지? 아무도 안 시켰는데 왜 이런 고생을 하지?’ 하는 자괴감에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무조건 3호까지는 내보자는 다짐이 다원 씨를 일으켰다.

“혼자 하면 모든 과정이 힘들어요. 저는 전문적으로 글을 써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새해마다 독서를 다짐하는 사람이었죠.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잡지도 많지 않아요. 디자인을 전공하지도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힘들 때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인터뷰하며 만난 분들이 저에게 해 주신 말이었거든요.”

5호에 출연한 동네 사람들 ‘화목일 프로젝트’였다. 동네의 우유팩이나 종이팩 등을 수거해 휴지로 바뀐 뒤 기부하는 작은 단체다. 재활용 쓰레기의 고유명사처럼 취급되는 플라스틱도 있는데 왜 하필 종이팩이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우린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 뿐이에요.”

<안녕망원>은 현재까지 각 호당 200부 정도가 팔렸다. 재밌는 건, 새로운 호가 출간되면 전에 나왔던 잡지들까지 함께 팔린다는 것이다. 

재미있으면 N이지!

그렇게 6호까지 나왔다. 권당 5800원. 그 마저도 10%는 마포구의 이웃과 함께하는 주민 복지 NGO 마포희망나눔에 기부한다. 동네 콘텐츠로 버는 돈인만큼, 다시 동네로 환원하고 싶다는 의미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안녕망원'으로는 월급도 가져가기 힘들다. 경제적인 이유로 3호와 5호의 발간은 텀블벅으로 후원받기도 했지만, 텀블벅 진행 자체도 혼자하기 힘들어 나머지는 모두 자체적으로 충당했다. 70여 명의 정기 구독자들이 있어 그나마 가능했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은 N잡러가 너무 당연한 말이 되었어요.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 살아갈 수 없는 시대를 상징하는 적절한 단어죠. 저 역시 N잡러이기도 하고 피할 수 없으니 기꺼이 즐기고 있어요. ‘잡(Job)’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안녕망원'을 돈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이 일은 ‘잡’이 되기 힘들어요. 하지만 돈은 다른 곳에서 벌고 재미나 의미를 이곳에서 찾는다면 기꺼이 ‘잡’이 될 수 있어요. 재미있는 일도 ‘잡’에 넣어 주자고요. 돈만 버는 일로만 사는 인생은 너무 힘들잖아요?”

잡지를 낸 뒤로 다원 씨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로컬 문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강의를 신청하기도 한다. 

‘프로 모임러’의 원동력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이었는데, 결과물이 쌓여갈수록 파생되는 재미있는 일도 많아졌다. 주위에서, 다른 지역에서 “우리 동네 잡지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지난해 말 독립출판의 축제라고 불리는 ‘퍼블리셔스 테이블’의 강력한 요청으로 드디어 수업을 만들기로 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고, 다원 씨는 본인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은 지역에서 잡지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안녕 로컬’ 수업은 이제 첫걸음마를 뗐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서울 연신내, 혜화부터 경북 영주, 강원도 평택 등 다양한 지역에서 참여한다.

코로나가 심해진 2020년 12월엔 망원동 상가의 점주들이 빈 가게 공간을 지원하고 주민들이 소소하게 팔고 싶은 물건을 기부한 뒤 판매된 금액은 소외된 청소년에게 기부하는 ‘무인당근밭’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자선바자 활동을 하고 있는 동네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연 바자회다. 또 동네 사람들의 투표로 뽑힌 망원동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에 대면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이벤트를 생각하다 보니 나온 아이디어였다. 요즘은 월요일마다 소모임을 하며 비건을 실천하는 ‘그린먼데이망원’, 글쓰기 모임 ‘금요글방’을 시작했다. 다원 씨는 농담처럼 본인을 ‘프로 모임러’, ‘연쇄 시작러’라고 표현한다.

“잡지를 만들기 전에도 소통하고 참여하는 일을 워낙 좋아했어요. 본업은 정해진 사람들과 메일이나 전화로 연락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소통 욕구가 쌓여 있었나 봐요. '안녕망원'을 하며 원 없이 분출하고 있어요. 기획부터 배포까지 혼자 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요. 재미있는 일을 끊임없이 만들고 고민하는 원동력이죠.”

당연히 홍보도 다원 씨의 몫이다. 때가되면 북페어를 나가기도 한다. 멀리서도 <안녕망원>을 알아보는 구독자들이 많다. 

로컬 문화의 선순환

다원 씨의 소모임이 활발하게 가능해진 이유에 최근 불어닥친 ‘로컬’ 붐도 한몫했다. 코로나가 앞당겨온 뉴노멀 시대가 온라인 모임을 활성화했고, 멀리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서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했다.

“다양성이 중요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로컬의 부흥을 도운 것 같아요. 꼭 서울이 아니어도 되잖아요. 예전에는 메인이라고 불렸던 것들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 외의 것에도 관심을 두고 얘기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지역에서도 충분히 많은 것을 할 수 있죠. 자연스럽게 로컬 문화가 선순환되는 것으로 보여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안녕망원'을 펼쳐내고 보니 꽤 많은 로컬 잡지가 있었다. 더 많이 로컬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토박이는 오래 묵혀온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고, 새로운 이주민들은 새로운 시선으로 본 신선한 이야기가 있다. 두개가 적절하게 섞였을 때 재미있는 지역 문화가 탄생한다. 이런 이유로 다원 씨는 본인이 사는 지역을 살리고 싶거나, 지역 문화를 부흥하고 싶다면 그 지역의 잡지를 만드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서 지속적해서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관공서에서도 만들 법한 관광안내 책자 같은 로컬 잡지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해요. 최대한 사람 냄새 많이 나는 잡지를 만들 거예요. '안녕망원'은 얇아요. 그래서 오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10년 정도는 끄덕없어요. 길고 얇게 가는 것이 제 목표거든요.”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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