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더'... 사랑을 잃고 비로소 회복하는 모성
'더 마더'... 사랑을 잃고 비로소 회복하는 모성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2.02.10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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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과 죽음의 이중주

지난 26회 부산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 초청된 레오스 카락스는 “영화는 근본적으로 이미지를 찍어낸다는 것이며, 영화의 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성영화를 꼭 찾아보길 바란다.”고, 여러 번의 공식 행사 때마다 되풀이하여 말했다. 지금도 무성영화를 즐겨본다는 레오스 감독. 그가 <더 마더>를 봤다면 무어라고 말했을까.

'더 마더' 스틸 컷. 해리엇 샌섬 해릿, 로지 데이.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더 마더' 스틸 컷. 해리엇 샌섬 해릿, 로지 데이.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더 마더, 원제: Baby>(2020)는 대사가 없는 무언의 드라마다. 영화를 연출한 후안 바호 우료아 감독은 “처음 각본은 대사가 아예 없던 건 아니고 거의 없는 정도였으나, 최종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영화가 가진 자체적인 언어(영상)를 신뢰하는 것이 더 진솔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사를 없앴다”고 한다. 과감한 시도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대사가 없는 대신 모든 사운드와 음악의 섬세한 뉘앙스는 물론, 주인공의 동작 하나하나와 표정이 아주 중요한 정보가 된다. 마치 배우의 몸짓과 표정으로 극을 완성하는 팬터마임처럼. ‘대사’로 영화의 주제나 의미를 파악하는 방식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신선한 영화적 충격이다. 기존의 영화 문법과 다른 형태의 <더 마더>의 가장 큰 미덕은 오롯이 영상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배우들의 대사를 음악이 대신한다. 오프닝 곡으로 쓰인 닉 드레이크(1948 –1974)의 ‘River Man’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쓸쓸하여 영화의 주제와 딱 들어맞는다. ‘탄생’과 ‘죽음’을 마주하며 듣는 닉의 노랫말은 오래도록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 아름다운 강가의 여러 장면과 겹쳐지며 새롭게 찾아 듣는 ‘리버 맨’의 여운은 감미롭고 처연하다. 감독은 “닉 드레이크의 음악은 내가 이 영화를 구상하자마자 떠올렸던 곡이고 그 곡이 사실 이 영화에 영감을 주었다”고 했다.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여 예술로 교감하고 새로운 장르에까지 영향을 주는 음악의 생명력은 무한한 듯.

'더 마더' 스틸 컷. 나탈리아 테나, 해리엇 샌섬 해리스.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더 마더' 스틸 컷. 나탈리아 테나, 해리엇 샌섬 해리스.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갓 태어난 아이에게 우유조차 먹이지 못하는 철없는 불량 엄마지만, 아이의 죽음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새 생명을 보듬어 앉을 수 있는 ‘진짜’ 엄마로 성장하는 여자. 그녀에 회한의 눈물은 참담하고 먹먹하다. 무엇보다 유아 브로커로 등장하는 해리엇 샌섬 해리스(1955)의 표정 연기는 압권이다. <리코리쉬 피자>에 깜짝 출연하는데, 역시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한다.

영화를 보면 갓난아이의 성별은 남자로 추측되지만, 그 외 인물은 세대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여자로 구성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는 결코 여자 혼자 낳을 수 없지 않은가(예수처럼 성령으로 잉태하지 않고서는 말이다). 출연자를 모두 여자로만 구성한 배경은 주제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으로 보인다.

<마더>는 결코 편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장르적 매력과 아름다운 풍광과 감미롭고 처연한 사운드트랙이 충돌하는 영화의 묘미가 신선하고 매혹적이다. 단연코 음악이 압권이다. 2020 제53회 시체스영화제 음악상을 받았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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