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은덕·백종민, 여행하는 부부의 모닥불 같은 삶
【인터뷰】 김은덕·백종민, 여행하는 부부의 모닥불 같은 삶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2.02.22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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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 하는 김은덕·백종민 부부
신혼에 떠난 2년간의 세계여행, 여행하는 삶 선택
여행에서 배워 온 습관과 경험이 만든 라이프스타일
코로나가 바꾼 한 달 살기 여행의 모습, 그리고···

[한국뉴스투데이] ‘한 달 살기’라는 말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던 때부터 한 달에 한 도시를 여행하는 젊은 부부가 있다. 젊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일찌감치 여행을 다니며 책을 쓴다. 노후를 준비해 은퇴한 것이 아니라 파이어족보다는 모닥불족에 더 가깝다고 웃으며 말하고 다닌다. 10년째 비움과 부부 평등 이야기, 여행과 습관형성 계발서 등을 펼쳐내고 있다. 부부가 추구하는 여행은 무엇일까? 그리고 여행과 삶이 연결되는 둘만의 지점은 어디였을까? <편집자 주>

지난 2021년 9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돌아온 김은덕, 백종민 부부 (사진제공/김은덕, 백종민)

여행보다 조금 더 깊은 여행

2015년 봄, 전 재산을 털어 떠난 2년간의 세계여행을 끝내고 부부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통장에는 500원이 채 남아있지 않았다.

“은덕 씨가 돈을 얼마나 알뜰하게 잘 쓸 수 있는 사람인지, 그때 알았어요.” 웃으며 회상하는 남편 백종민 씨는 부부가 서로 ‘뉴런을 공유한 사이’라고 말한다.

김은덕 백종민 부부는 2012년 결혼 후 1년 뒤 떠난 세계여행에서 24개 도시를 다니며 한 달씩 머물렀다. ‘한 달 살기’라는 말이 한국에서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였지만, 여행보다 더 깊은 여행을 하고 싶다는 부부만의 여행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8개월, 아메리카에서 9개월, 아시아에서 8개월을 보냈다. 이후 그들의 이야기는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로 출간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 살기는 잠시 눈요기로 만족하고 떠나는 짧은 여행이 아닌 현지인과 교감하며 보고 느끼는 느릿한 여행으로 트렌드가 됐다.

부부가 처음부터 뉴런을 공유한 건 아니었다. 남의 집 물건이라 못 던졌을 뿐, 던질 수 있는 건 다 던지며 싸웠다. 다툰 어느 날엔,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이혼해야겠다고 결심도 했다. 여행 전 계약된 세 권의 책이 아니었으면 진작 헤어졌을 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부부는 지금도 떠나기 위한 짐을 싼다.

지난 10년 간 부부는 꾸준히 한 달 살기 여행을 다녀왔고,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책을 내왔다. 

불안함에 맞서려 쌓은 습관들

부부는 지금까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한 달에 한 도시’(유럽/남미/아시아, 전 3권),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를 썼고, SBS ‘스페셜’, KBS ‘사람과 사람들’, EBS ‘생각하는 콘서트’ 등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SBS 교양국 유튜브 ‘달리’에서 미니멀 라이프 랜선 상담소 ‘나를 비워줘’를 진행했고, 가장 최근 다녀온 여행은 인터파크 유튜브 ‘공원생활’에서 ‘김은덕×백종민의 한달살기’에 소개됐다.

다양한 활동의 뒤에는 고난의 시간이 있었다.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뒤, 계속 여행을 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쌀 사 먹을 돈도 없었다”는 부부는 불안함에 다시 여행 전 일했던 분야로 돌아가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저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불안하더라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여행을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으니까요. 그래도 당장 돈이 없으니 너무 불안했어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때부터 불안감을 이겨내려 규칙적인 습관을 만들었어요.”

부부는 ‘똑같은 하루’를 생각해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이불을 개는 것, 환기를 시키고 아침밥을 먹는 것, 운동을 가고 공부를 하는 것, 악기를 배우고 책을 읽는 것, 글을 쓰고 시간을 보내는 것. 소소하게 시작한 부부의 사소한 습관은 점점 똑같은 하루를 만들어냈다. 같은 일상이 쌓이자 불안함이 줄어들었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를 보냈으니 내일도 똑같은 하루가 오겠지.’ 그들의 불안함은 그렇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면 종종 부부의 여행과 라이프스타일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만나 북토크를 연다. (사진제공/ 김은덕, 백종민)

여행에서 배운 소중한 경험들

많은 습관을 여행에서 배워왔다. 날씨가 너무 더운 동남아에선 아침 6시에 아이들이 등교할 정도로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기온이 가장 높은 낮에는 집에서 낮잠을 자거나 맥주를 마신다. 부부는 10년째 아침 5~6시에 하루를 시작하고 9~10시에 잠자리에 든다. 얼마 전 다녀온 스위스에선 우연히 케이블카를 타지 못하고 하이킹을 했는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느꼈다. 돌아온 뒤에도 시간 날 때마다 산에 올라 하이킹을 즐긴다.

어떤 여행에서 만난 미국 친구는 항상 가방에 사과를 넣어 다녔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사과를 챙겨줘 익숙하다는 그 친구와 여행을 하다 보니, 사과가 끼니를 대신할 수 있는 든든한 과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부부는 지금도 끼니를 대신할 수 있는 음식으로 사과를 먹는다. 터키에서 일주일을 살았던 집에선 식기세척기의 쓸모를 몸소 깨닫고 한국으로 돌아와 고민 끝에 식기세척기를 들였다. 그들의 삶은 여행에서 얻어온 것들로 성실하게 레이어드 됐다.

부부는 최근 이렇게 습관을 담은 책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를 발간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은 냉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건강과 성장을 향한 하루를 쌓다 보면 단단한 하루가 만들어진다는 그들만의 인생 노하우를 차곡차곡 담았다. 온전히 내 삶을 누릴 때의 만족감이 불안감을 이긴 그들의 경험을 녹인 책이다.

여행에서 경험해 온 것들을 삶 속에 적용해 살아가는 김은덕, 백종민 부부.

미니멀 라이프 여행편과 실전편

첫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부부는 두 개의 캐리어와 각자 노트북 가방 하나씩 들고 떠났다. 남편은 돌아올 때 분명 짐이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둘의 짐은 늘지 않았고 2년간 캐리어 두 개와 배낭 두 개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돌아온 뒤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알게 됐죠. 사실 저도 옷, 신발, 가방 사는 것을 좋아하고 명품을 모으기도 했어요. 옷이 너무 많아서 옷장이 무너지는 참사도 겪었죠. 하지만 2년간 여행을 다녀온 뒤론 미니멀리즘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도 된다는 것과 그것이 더 우리의 생활과 맞는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세계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와 10년간 매년 3~4개월씩, 주로 겨울에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책을 쓰던 부부도 코로나 19 앞에선 여행을 잠시 멈춰야 했다.

“일 년 반 정도 여행을 못 했어요. 여행이란 단어가 듣는 사람에 따라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희에게 한 달 살기는 마치 습관 같은 생활이었어요. 접종을 완료하고 지난 9월 드디어 스위스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코로나 이후 부부의 한 달 살기 캐리어에는 마스크와 체온계가 더해졌다. 평소엔 현지인과 교류하기 위해 집 안에 있는 방 한 칸을 빌려 살았지만, 코로나가 터진 뒤엔 호스트가 어떠한 외부활동을 할지 모르는 만큼 집 전체를 빌렸다. 취리히에 베이스캠프를 잡고 한 주는 동네를 돌아보고, 두 번째 주는 그보다 확장된 도시를 돌았다. 세 번째 주에는 외곽으로 나갔는데, 알프스에 가서 트레킹을 하고 대학교를 둘러보고 바젤을 다녀오는 등 중요한 관광지에 다녀왔다. 보통 마지막 주는 친분이 쌓인 외국 친구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에는 그 장소를 기억할 만한 물건을 고르며 조용히 마무리했다.

2022년, 부부의 목표는 1주일에 두 번씩 유튜브 콘텐츠를 업로드 하는 일이다. 

모닥불처럼 길고 은은하게

코로나가 바꾼 것은 또 있다. 일 년에 책 한 권씩을 냈지만, 코로나가 터진 뒤 일이 줄고 자유시간이 생기자, 부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빠르게 다가가기 위해 유튜브를 개설했다. 스위스 콘텐츠를 비롯해 미니멀리즘, 부부의 생활 습관 등을 유튜브에 공유했다. 그런데 채널명이 조금 특이하다.

“모닥불이에요. 요즘 노후 자금을 빠르게 모아 놓고 일찍 은퇴하는 파이어족이 늘어난다잖아요. 저희는 30대 초반에 은퇴하고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삶을 살고 있지만, 모아둔 돈이 넉넉치 않아 파이어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더라고요. 대신 조금씩 아껴서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나는 삶을 살고 있죠. 꺼지지 않고 오래 가는 모닥불처럼요. 오래 여행하며 이런 생활을 살아가는 것이 저희 목표이기도 하니까요.”

부부는 2월 21일, 터키와 조지아에 한 달 살기 여행을 하기 위해 떠났다. (사진제공/ 김은덕, 백종민)
부부는 2월 21일, 터키와 조지아에 한 달 살기 여행을 하기 위해 떠났다. (사진제공/ 김은덕, 백종민)

부부는 2월 21일 터키로 떠났다. 터키에서 한 달, 조지아에서 한 달을 살기로 했다. 여전히 짐은캐리어 두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돌아올 땐 캐리어 두개가 전부는 아닐 거다. 새롭게 배워오는 것들이 가득할 것이고, 그래서 버릴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채우고 비우는 부부의 은은한 이야기가 모닥불처럼 오래가길 바라는 이유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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