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는 두렵지 않았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는 두렵지 않았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2.03.13 1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랑에 빠진 남자

앞을 볼 수 없다. 가슴 밑으로는 마비되어서 넘어지면 혼자 일어설 수 없다. 앞도 볼 수 없고 걸을 수도 없는 다발 경화증을 앓고 있는 남자. 핸드폰과 휠체어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그가 사랑에 빠졌다. 사랑하는 여자 또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다. 남자와 여자는 천 킬로나 떨어진 다른 도시에 산다. 과연 그들은 만날 수 있을까.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스틸컷, (주)슈아픽처스 제공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스틸컷, (주)슈아픽처스 제공

긴 제목의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2021)는 핀란드 영화다. 영화를 연출한 테무 니키(1975) 감독은 20여 편의 영화를 연출한 중견 감독. 감독의 장,단편영화 중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하여 소개된 작품도 여러 편 있다. 전작 <님비: 우리 집에 오지 마>(2020)2021 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사랑을 받았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지난해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신설된 오리종티 엑스트라부문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역시 2021 26회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어 관객들의 찬사를 받은 영화다.

테무 니키 감독과 주인공 야코 역을 맡은 페트리 포이콜라이넨는 군대에서 군 연극에 참여하며 처음 만났다. 이후 영화감독과 배우로 성장한 두 청년은 세월이 20여 년이 흐른 중년의 나이에 다시 만난다. 그러나 그 만남은 예사롭지 않았다. 테무 니키 감독은 악성 다발 경화증을 앓고 있는 페트리 포이콜라이넨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연기를 계속하고 싶어 하는 페트리 포이콜라이넨를 위하여 단편으로 극영화를 써보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켜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편은 장편의 로맨스 드라마로 제작된다.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은 남자야코는 이렇게 탄생됐다. 페트리 포이콜라이넨는 실제로 눈도 멀고 다리도 마비되어 휠체어에 의존하여 생활한다.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스틸컷, (주)슈아픽처스 제공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스틸컷, (주)슈아픽처스 제공

영화로 생각하고 영화로 상상하는 남자

다발 경화증은 뇌, 척수, 시신경으로 구성된 중추신경계에 발생하는 만성 질환이다. 환자의 면역체계가 건강한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으로 한 번 발병하면 회복되지 않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주인공 야코는 다발 경화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하여 시력을 잃기 전에 보았던 영화로 생각하고, 영화로 상상한다. 애인 시르파(마르야나 마이얄라)의 얼굴조차 <에이리언>의 여전사 리플리(시고니 위버)로 상상한다. 어느 날 시르파는 치료제 부작용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천만한 소식을 전한다. 상심한 시르파를 위로하기 위하여 그녀에게 달려가야 한다. 다급한 마음에 야코는 혼자서 길을 떠난다. 2번의 택시와 한 번의 기차를 타면 된다. 5명의 타인으로부터 5번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집을 나선 야코. 험난한 여정 속에 드디어 시르파 집에 초인종을 누르며 그녀에게 준 선물이 영화 <타이타닉>DVD. 결코 <타이타닉>(1997)을 좋아하지 않지만, 시르파가 좋아하는 영화이기에 기꺼이 함께 볼 수 있는 야코. 사랑에 빠진 남자는 용감하고 아름답다.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스틸컷, (주)슈아픽처스 제공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스틸컷, (주)슈아픽처스 제공

감독은 저는 관객들에게 시각 장애라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영화적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영화는 전부 클로즈업으로 촬영을 했습니다.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는 흐리고 초점이 나가 있어요. 그의 얼굴과 손만이 이 영화의 무대로 기능하고 있죠. 이런 경우에는 여러분의 귀를 믿어야 합니다(청각에 의존해야 합니다).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 과연 그들에게 의존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같은 맥락으로 오프닝 자막은 점자로 했고, 내레이션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음성지원 목소리로 설정해 관객이 야코의 상황에 동화되도록 했다.

야코 역을 맡은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은 꿈꾸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게 출발점이니까요. 꿈꾸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뭐든 나중으로 미루지 마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절대 모르는 거니까요. 인생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다. 인생은 지금 여기에 있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