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장교 성폭행한 해군 장교 2명 '엇갈린 판결'
부하 장교 성폭행한 해군 장교 2명 '엇갈린 판결'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3.31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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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진술 신빙성 쟁점돼...1심서 징역 8년·10년→2심서 무죄
대법원 “신빙성 인정돼...일부 의심으로 전체 진술 배척은 잘못”

3년 만에 장교에 유죄...반면 상습 성폭력한 대령에는 무죄 확정
앞선 성폭력으로 다음 성폭력 발생했는데...“반쪽짜리 모순 판결”
여성 부하 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대령에 대한 유죄 취지 파기환송과 중령에 대한 무죄 확정으로 판결이 엇갈리면서, 공동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모순된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제공)
여성 부하 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대령에 대한 유죄 취지 파기환송과 중령에 대한 무죄 확정으로 판결이 엇갈리면서, 공동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모순된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제공)

[한국뉴스투데이] 여성 부하 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대령에 대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된 가운데, 그보다 앞서 피해자를 여러 차례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중령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31일 대법원은 군 형법상 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령(당시 함장)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반면 같은 혐의를 받는 중령(당시 소령) 박씨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확정지었다.

지난 2010년 장교(당시 중위) A씨의 직속 상관이었던 박씨는 A씨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인지한 뒤 “남자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며 A씨를 10여 차례 성추행하고, 2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군사법원에 기소됐다.

더불어 당시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중절수술을 받게 된 A씨는 김씨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구제를 요청했으나, 김씨는 도리어 상담을 빌미로 A씨를 성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발생하고 7년 뒤인 2017년 7월 A씨는 박씨와 김씨를 군 형법상 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고소했고, 해군은 같은 해 9월 이들을 구속했다.

당시 1심을 맡은 해군본부 군사보통법원은 박씨에게 징역 10년, 김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일로부터 오랜 시간이 경과됐는데도 A씨는 기억에 남아있는 당시 상황들을 통해 범행 일시와 장소 등을 특정하고 있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들어 이들의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2심을 맡은 고등군사법원은 1심을 뒤집고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은 범행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난 후의 기억에 의존한 것인데, 그 진술 내용에 모순이 되는 부분과 객관적 정황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피해자의 기억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상반된 판단을 내놨다.

나아가 김씨의 혐의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해 피해자를 추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간과 강제추행죄의 전제 조건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후 3년간의 계류 끝에 이날 대법원 1부는 김씨의 혐의에 관해 “김씨의 행위 등에 관한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심이 드는 일부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 전부를 배척한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며 해당 무죄 판결을 파기했다.

그러나 박씨에 대한 혐의를 다룬 대법원 3부는 이날 무죄 판결을 확정지었다. 재판부는 “박씨 사건과 김씨 사건은 사건의 구체적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피해자 진술 등이 서로 달라 신빙성을 기초로 한 범죄 성립 여부가 달리 판단될 수 있다. 원심 판결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없다”며 2심의 손을 들어줬다.

공동대책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가해자에게 처벌을, 피해자에게 일상을', '해군은 성폭력 가해자 징계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제공)
공동대책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가해자에게 처벌을, 피해자에게 일상을', '해군은 성폭력 가해자 징계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제공)

이에 군인권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10개 시민단체로 꾸려진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이하 대책위)는 이날 서울 서초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쪽짜리 모순된 판결을 내린 대법원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법률 대리를 맡은 박인숙 변호사는 선행한 박씨의 성폭력 때문에 두 번째 김씨의 성폭력이 발생한 것인데도, 선행한 성폭력이 인정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동떨어지지지 않은 일련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다른 사건에 대해선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대책위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 사건 피해자는 물론이고 군대를 성평등한 상식의 공간으로 바꾸고자 한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발걸음을 무력화 시킨 오판”이라며 “부하 여군과 해군 상관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강고한 위계질서, 해군 함정의 특수성, 성소수자라는 피해자의 위치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협소하게 해석한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대책위는 A씨의 입장문을 대독하며 “3년을 넘게 기다렸습니다. 파기환송 소식에 잠시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다시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성적 소수자라는 점을 알고도 강간·강제추행을 일삼고 결국 중절수술까지 하게 한 자를 무죄로 판단한 대법원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제가 겪어야만 했던 그 날의 고통, 수많은 날의 기억을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판결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전했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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