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안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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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2.04.01 09: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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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요즘 나는 일반인들을 만난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여기서 일반인이라고 하면 방송을 해왔던 방송장이가 아니라 유튜브나 팟캐스트의 경험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요즘 이들과 함께 방송을 만들고 있다. 

그래도 유튜브나 팟캐스트도 1인 방송이 아니던가? 당연히 나는 이들도 방송의 메커니즘이나 돌아가는 사정, 해야 할 일들이 뭔지 알 거로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그것들을 잘 몰라서 내가 알려주면 바로 이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기획안, 구성 등등을 얘기할 때 아주 해맑은 시선으로 ‘그게 뭐지?’ 하는 표정들을 짓는다.
난 그들을 보며 ‘뭐지? 이 반응은?’, ‘이걸 모른단 말이야? 설마?’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떻게 이게 어려울 수 있지? 난 그동안 방송을 하면서 설명이나 글의 수준은 중학생이나 고등학교 수준에 맞춰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설명하는 것이 절대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잘 못 알아듣는다. 나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이런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난 그동안 ‘지식의 저주’에 걸려 있어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식의 저주’와 관련한 재밌는 실험이 하나 있다.  
A그룹에겐 악보를 주면서 손바닥으로 리듬을 치라고 했고, B그룹은 그 리듬의 노래 제목을 맞춰보라고 했다. 

이후 리듬을 친 A그룹에게 B그룹이 몇 개의 노래를 맞출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7~80%’. 그런데 A그룹의 예상은 쉽게 빗나가고 말았다. 실제로 노래 제목을 맞춰야 했던 B그룹의 정답은 10% 정도밖에 안 됐으니.   

이미 노래의 제목을 알고 있는 A그룹에선 어떻게 이렇게 쉬운 걸 못 맞추냐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현실은 70%와 10%의 갭만큼 두 그룹의 인식에 차이가 있었다.   

이 실험은 아는 것과 아는 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으며, 많이 알고 있으면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즉 ‘지식의 저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내가 바로 이 ‘지식의 저주’에 걸려 있었다. 그동안 방송장이들과 일해 왔고, 그 속에서 있었으니 일반인(?)들이 이 정도까지 모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바로 실험에서 7, 80%가 알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이었고, 왜 쉬운 걸 모르냐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던 그 사람이었다.   

결국, 그들의 이해 부족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지식의 저주에 빠져 잘 알지 못한 나의 탓이다. 이 정도면 그들이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떤 진행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방송작가는 가방끈이 너무 길면 안 된다며 가방끈이 길면 원고가 어렵게 나온다는 말을 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알겠다. ‘지식의 저주’에 걸리지 말라고 미리 경고해준 거라는 걸….
  
이제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나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불평하고 푸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에 제일 이해력이 떨어진 이를 기준 삼아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을 써서 나의 말을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말이, 설명이 빛난다.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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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자 2022-04-11 13:18:20
세상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아요. 그게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저처럼 단순한 사람은 이렇게 글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