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젤렌스키의 리더십
푸틴과 젤렌스키의 리더십
  • 송은섭 작가
  • 승인 2022.04.13 12:2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더를 반기는 우크라이나와 리더를 겁내는 러시아” 
“권한을 위임하는 젤렌스키와 권한을 독점하는 푸틴”

리더를 반기는 우크라이나 vs 리더를 겁내는 러시아

20년 전, 강원도 전방대대 복무 시 군단장이 방문했다. 군단장이 탄 헬리콥터가 연병장에 착륙하기 1시간 전, 30분 전, 10분 전에 물을 뿌려야 했다. 힘들었지만 가까이서 중장계급의 장군과 헬리콥터를 볼 수 있다는 호기심으로 열심히 했다. 멀리서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대대장은 물뿌리던 병사들에게 “서둘러 막사 건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헉, 연병장에서 자연스럽게 경례하고 그런 거 아니었나?’ 급히 건물 안으로 뛰어갔다. 가까이서 볼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컸지만 대대장 명령이니 어쩔 수 없었다.

헬리콥터가 착륙하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창문마다 병사들이 달라붙었다. 대대장은 “창문에서 보이지 않게 들어가”라며 또 소리쳤다. 대대장은 군단장이 방문하는 시간대에는 아무도 건물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때 참모 한 명이 대대장에게 말했다. 
 
“대대장님. 정상적인 일과를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군단장님 오신다고 병력을 모두 내무실(지금은 생활관이라고 부름)에 대기시켜놓은 걸 아시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괜히 군단장님 눈에 띄어서 경례도 똑바로 못하고 숨거나 하면 군기가 빠졌다고 지적만 받아.”

군단장이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지휘통제실로 이동하면서 대대장에게 물었다. 
“대대장, 지금 뭐 하는 시간대냐? 왜, 병력이 한 명도 안보이냐?”
“네, 저…. 실내교육 중입니다.”

대대장의 자신 없는 태도를 보며 군단장이 뼈 때리는 한마디를 남겼다.
“너희 대대는 군단장을 반기는 게 아니라 겁을 내고 있구나!”

지금은 이런 지휘관이 없을 거로 생각한다. 군단장이 전방부대를 방문하는 것은 말단 병사들과도 의미 있는 소통과 격려를 하기 위함이다. 이를 중간 지휘관이 차단하는 꼴이 되면 그 지휘관은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오직 개인의 안위만 생각하고 중간 연결자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 중이다. 전쟁에서 소통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와 같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의 지휘관, 말단 병사와 국민들까지 원활한 소통없이는 전쟁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젤렌스키와 푸틴은 시간이 지날수록 리더십의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개전초기 미국의 망명제안을 거절하고 수도 키에프에서 자신이 군을 지휘하고 있음을 SNS로 소통했다. 특히 세계 각국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지원을 호소하며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조성, 우크라이나 국민의 90%가 그를 지지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각 정당 대표등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젤렌스키 대통령은 개전초기 미국의 망명제안을 거절하고 수도 키에프에서 자신이 군을 지휘하고 있음을 SNS로 소통했다. 특히 세계 각국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지원을 호소하며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조성, 우크라이나 국민의 90%가 그를 지지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각 정당 대표등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공동취재사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도망갈 비행기가 아니라 싸울 무기와 탄약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개전초기 미국의 망명제안에 위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수도 키에프에서 자신이 군을 지휘하고 있음을 SNS로 소통했다. 그를 제거하려는 수많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찾아 위로하고 감사를 표했다. 세계 각국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지원을 호소하며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90%가 그를 지지하며 가는 곳마다 환호하며 반긴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반면에 러시아의 푸틴은 그의 핵심 참모들과의 소통도 6M 이상 거리를 두고 할 만큼 권위적이고 독선적이다. 참모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상태에서 지시하고, 다그치며, 책임을 묻는 모습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러시아는 푸틴을 존경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겁을 내며 따르는 모양새다.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가진 강대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로 푸틴의 리더십이 문제라는 주장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놀라운 소통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리더였다. 그가 긴 여행을 마치고 백악관으로 돌아올 때 헬리콥터가 잔디밭에 착륙하는 소리가 들리자 백악관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아빠가 돌아오셨다(Dady’s home!)”며 기쁘게 대통령을 맞이했다고 한다. 조직의 구성원이 반길 수 있는 리더, 진심으로 소통하는 리더가 위기에서 조직을 구하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젤렌스키는 푸틴보다 몇 수 위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지금 내가 속한 조직은 어떤가?
“리더가 현장에 나타나면 반기는 조직인가? 아니면 겁을 내는 조직인가?” 

권한을 위임하는 젤렌스키 vs 권한을 독점하고 간섭하는 푸틴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을 사수하고 있는 부대 중에 ‘아조우(Azov)’라는 부대가 있다. 처음에는 수백 명의 민병대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연대급으로 확대되어 국가경비대의 일원으로 편입돼 정규군의 지위를 얻은 부대다. 아조우 연대(Azov Regiment)는 러시아군 소장을 교전 중 사살하는가 하면, 매복공격으로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를 격파하는 등 주요 격전지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아조우 연대(Azov Regiment)’처럼 소부대 위주의 게릴라전으로 곳곳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소부대들은 현장 지휘관의 상황판단과 작전지휘에 따라 생사가 좌우된다. 그래서 현장 지휘관에게 많은 권한이 위임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군은 열세한 전력의 악조건을 ‘권한위임의 리더십’으로 극복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어떠한가?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군 작전을 간섭하는 정치지도원이 있다. 당에서 파견한 정치지도원의 승인이 있어야 작전을 진행할 수 있다. 정치지도원이 군 지휘관의 판단과 작전지휘에 정치적으로 간섭하기 때문에 군 지휘관은 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를 보면 정치지도원이 군 지휘관을 현장에서 사살하는 장면도 있다. 군사작전에 대한 정치의 간섭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불행하게도 2022년의 러시아군은 80년 전 스탈린의 잘못된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일선 지휘관들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작전 수행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사상자만 늘어나고 있다. 권한을 독점하고 위임하지 않는 푸틴 리더십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리더는 구성원들을 믿고 자신이 가진 힘을 기꺼이 나누어줄 수 있을 때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미국의 부통령 후보였던 제임스 스톡데일 해군 제독의 말을 되새겨 보자.

“위대한 리더들은 권위를 버림으로써 권위를 얻는다. 위대한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면 권한위임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송은섭 작가 seop2013@hanmail.net

송은섭의 리더십이야기

인문학과 자기계발 분야 전문 작가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마흔, 인문고전에서 두 번째 인생을 열다>, <지적대화를 위한 인문학 고전 읽기> 등이 있다. 경기대 외교안보학 석사, 고려대 명강사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유튜버(작가 조바르TV), 팟캐스트(책 읽는 시간)로도 활동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방세경 2022-04-14 07:04:42
소통하는 리더십, 멋진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