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동성 군인 간 합의된 성관계 처벌 불가”...군형법 판례 변경
대법 “동성 군인 간 합의된 성관계 처벌 불가”...군형법 판례 변경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4.2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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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선고 뒤집고 원심 파기 환송...합의된 동성 군인 성관계 처벌 불가
“합리적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로 성적 자기결정권 과도하게 제한”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도록 한 군형법 92조의6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군인' 사건 등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착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도록 한 군형법 92조의6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군인' 사건 등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착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대법원이 군형법 조항에 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해,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까지 처벌해왔던 군형법의 기존 판례가 변경됐다.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군형법 92조의6에 따라 기소된 군 간부 A씨와 B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군형법 92조의6(추행) 조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어, 장소·시간·합의여부와 관계없이 동성 군인 간 성관계는 처벌 대상이 돼왔다.

이에 앞서 남성 군인인 A씨와 B씨는 근무시간 외에 영외의 독신자 숙소에서 합의 하에 성행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선 1·2심 역시 해당 조항을 위반했다며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1심에서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2심에서는 징역 3개월에 선고유예였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A씨와 B씨는) 같은 부대 소속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알게 된 사이이며 영외 독신자숙소에서 근무시간 이후에 합의에 따라 성행위를 했다”며 “그 과정에 강제력은 없었으며 의사에 반하는 행위가 문제되거나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했다는 다른 사정도 없으므로 군형법 제92조의6을 적용해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와 같이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두 가지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까지 처벌대상으로 삼는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전원합의체는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며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17년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육군 군사경찰 중앙수사단은 대대적인 성소수자 군인 색출을 강행한 바 있다. 당시 육군 수사단은 ▲남성 동성애자 데이팅 앱에 잠입해 색출 ▲군 내에 폭로하겠다는 등 협박 포함 강압적 수사 ▲수사 과정 내 성희롱 ▲개인 핸드폰 수집해 디지털 포렌식 진행 등 끝에 총 23명에게 군형법 제92조의6을 적용해 입건했다.

군인권센터 등에 따르면 그 중 기소된 피해자는 9명으로, 4명은 1심에서 유죄가 확정됐고 5명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날 군인권센터는 성명서를 통해 “진일보한 판결에 환영의 뜻을 밝힌다. 성관계의 주체가 성소수자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이들의 사생활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은 이 법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이어 군인권센터는 “이제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남았다. 해당 조항 관련 위헌법률심판사건이 2건, 헌법소원이 10건 계류 중이다. 언제까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법정에서 재판하는 후진적인 법률을 남겨둘 것인가? 조속한 시일 내에 위헌을 결정해 지금까지 부당한 차별로 전과자가 된 성소수자 군인들이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법원 등 법원도 유사 사건으로 계류 중인 다른 제92조의6 사건들에 대해서도 즉시 무죄를 판결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동성 군인 간 합의된 성관계에 최초 무죄 판결은 지난 2018년으로, 당시 서울북부지법은 “군형법의 해당 조항은 군인이 다른 군인의 의사에 반해 추행을 했을 때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유죄가 확정된 바 있어 논란은 계속돼왔다. 지난 2016년 헌법재판소 역시 5:4 의견으로 합헌 결정한 바 있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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