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세상 사는 일이 대게 그렇다
‘봄날’... 세상 사는 일이 대게 그렇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2.04.27 1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의 전성기를 꿈꾸며

완연한 봄날이다. 형형색색의 봄꽃과 보드라운 봄바람의 생기는 천지가 새롭게 태어나는 탄성으로 눈이 부신 요즘이다. 화창한 이즘에 봄날과는 사뭇 다르게 영화 <봄날>은 무겁고 흐린 겨울날 같은 영화다. 겨울이 잠든 텅 빈 앞마당으로 내려앉아 쌓이는 첫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자신조차 하나의 쓸쓸한 풍경으로 피어나는 홀로움 같은 영화. 봄에서 겨울로, 희로애락 질풍노도의 인생 여정의 갈피들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잘 살고 잘 죽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왼쪽부터 박혁권, 손현주, '봄날' 스틸컷, ㈜콘텐츠판다 제공
왼쪽부터 박혁권, 손현주, '봄날' 스틸컷, ㈜콘텐츠판다 제공

<봄날>은 이돈구 감독의 생생한 체험에서 시작됐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힘없는 뒷모습을 보고,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봄날을 그리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출발한 영화라고 감독은 제작 노트에서 밝혔다.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소한 풍경을 허투루 흘려버리지 않은 감독의 야무진 눈썰미가 영화적 재미를 준다. 아버지를 잃고 상주가 된 부친이 흘리는 눈물과 회한을 20대 초의 아들은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영화로 만들었다. 그렇게 <봄날>은 죽음에 기대어 삶을 돌아보게 한다. 뒤돌아볼 수는 있어도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세월. 그래서 우리의 봄날은 아프고 아리다.

<봄날>에는 형 호성의 손현주, 동생 종성 역의 박혁권, 호성의 죽마고우 양희 역에 정석용 배우가 출연해 연기 앙상블을 맛깔나게 보여 준다. 감독은 2015년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 세 배우를 염두에 뒀고, 첫 촬영 후에 세 배우의 연기를 보며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싶었다고. 그만큼 세 배우의 연기는 천연덕스럽고 감칠맛 난다.

정석용, '봄날' 스틸컷, ㈜콘텐츠판다 제공
정석용, '봄날' 스틸컷, ㈜콘텐츠판다 제공

배우 손현주는 제작보고회에서 우리 영화가 작은 영화가 아니다. 장르적으로 말씀드리면 패밀리 액션 누아르다. 호성은 8년 만에 교도소에서 나와 가족들에게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캐릭터다. 장녀이자 집안을 지탱해 온 딸과 배우 지망생인 아들에게 돈을 마련해주고, 술을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술값을, 복덕방을 하는 동생에게도 돈을 좀 쥐여주려고 노력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봄날>을 소개했다.

'봄날' 스틸컷, ㈜콘텐츠판다 제공
'봄날' 스틸컷, ㈜콘텐츠판다 제공

그렇다. “위해 주고 싶은 가족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다(신동엽, ‘담배 연기처럼일부, 1966)는 시처럼, 가족은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있어도 말과 행동이 엇나갈 때가 참 많다. 영화는 이런 보편적인 정서를 드라마로 담았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비롯된 감독의 깊은 사유는 마치 내 이야기처럼 공감이 간다.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어렴풋이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게 되다니,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고향 집 마루에 나란히 걸려 있는 부모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끝내 오열을 멈추지 못하고 들썩이는 호송의 등짝. , 그만 나도 따라 운다. 미처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한 마음의 빚을 딸에게 갚듯이, 해산달이 가까운 딸에게 도라지를 손질하여 택배로 보내는 호성의 마음 씀씀이가 바로 아버지의 내리사랑 아니겠나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와 섬세한 연출력을 바탕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손현주의 연기는 단연 빛난다.

이돈구 감독은 데뷔작 <가시꽃>(2013)으로 2013년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라노마 부문에 초청받아, '박찬욱을 잇는 잔혹 미학'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후 내면에 잠재한 불안과 공포를 탁월하게 표현한 <현기증>(2014)2019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팡파레>(2019)로 주목받았다. <봄날>은 전작들보다 순한 맛이지만 진국이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