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로운 리더는 역사 앞에서 시치미를 떼지 않는다
의(義)로운 리더는 역사 앞에서 시치미를 떼지 않는다
  • 송은섭 작가
  • 승인 2022.04.28 10: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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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평가를 받으려는 리더는 의(義)로운 선택을 하고,
현재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리더는 시치미를 떼는 선택을 한다.
▲리더는 역사라는 흐름 속에서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를 위해, 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시치미를 떼는 리더는 역사의 냉혹한 평가를 피할 수 없다. 그들의 선택이 많은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뉴시스/공동취재사진)
▲리더는 역사라는 흐름 속에서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를 위해, 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시치미를 떼는 리더는 역사의 냉혹한 평가를 피할 수 없다. 그들의 선택이 많은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뉴시스/공동취재사진)

시치미 떼지 마라!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가 해당 후보자의 적격성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인사청문회법 제정으로 처음 도입됐으며, 국회는 해당 후보자를 출석시켜 질의하고 답변과 진술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지금 국회는 새로운 정부 구성을 위한 인사청문회를 시작했다. 2000년부터 시작했으니 우리는 22년 동안 봐 온 것이다. 수많은 후보자가 시치미를 떼거나 정당 간 수준 낮은 후보자 검증 싸움을 지켜 봐왔다. 때론 통쾌할 정도로 잘 검증된 예도 있었지만, 후보자나 검증하는 국회의원이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나?’ 싶을 정도로 실망하는 때도 많았다. 누가 시치미를 떼고 있는지 국민은 다 안다. 정작 그들만 모를 뿐이다. 

‘시치미’는 고려 시대 귀족들이 하던 매사냥에서 나온 말이다. 매가 사람의 말을 듣고 사냥을 할 정도로 훈련을 시키려면 새끼일 때부터 훈련하며 길러야 한다. 오랫동안 길을 들여야 하는 만큼 매는 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매 주인은 자신의 매에 이름표를 부착했는데 이것을 ‘시치미’라고 불렀다. 
매 사냥터에서 토끼나 꿩 같은 사냥감이 보이면 참가자들이 동시에 매를 날렸는데 매가 사냥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시치미부터 살펴봤다. 누구의 매인 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때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시치미를 붙이고는 모른척했다고 해서 ‘시치미 떼지 마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요즘도 많이 쓰는 말이다. 

고위 공직에 나서는 사람들은 정직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직무수행에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된다면 당당하게 사의를 표명하면 된다. 내 자리가 아닌데 시치미를 떼고 내 자리인 것처럼 위장하면 안 된다. 검증하는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사실과 다른 부풀리기식 검증과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검증은 삼가야 한다. 

후보자나 국회의원은 역사의 평가를 받는 의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당의 결정에 따라”, “능력은 안 되지만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이런 말들은 매에게서 시치미를 떼는 것과 같다. 정정당당하게 내가 누구인지 밝히고, 어떤 자격을 갖추었으며,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를 시치미에 붙여 놓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선택할 수 있다. 사냥감을 잘 사냥해서 주인에게 사랑받는 매가 될 건지, 사냥감을 주인 몰래 먹어치우는 매가 될 건지 시치미를 보고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게 의(義)로운 리더가 되는 기본이다. 

의(義)로운 리더와 왕이 되고자 했던 리더의 최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연임 후 고별사를 남기고 정계를 떠났다. 그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며 왕처럼 살려고 했다면 더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연임을 마지막으로 대통령직을 내려놓았다. 

“정계를 떠나고자 하는 내 선택이 주의와 분별의 잣대에 비추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애국심의 잣대에 비추어서도 그릇되지 아니한 선택이라 믿습니다.”

당시 조지 워싱턴의 선택은 미국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뒤를 이은 후임 대통령들도 재선 이후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백악관을 나왔다. 초대 대통령이 남긴 의로운 선례가 암묵적인 규칙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의 전시 상황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4선을 한 것을 제외하고 모든 대통령이 조지 워싱턴의 선례를 따랐다.

역사에서 만일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겠지만 만일 조지 워싱턴이 왕처럼 군림하며 3선 4선 계속 권력을 이어갔다면 이후 대통령들도 초대 대통령처럼 똑같이 따라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미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더의 의로운 선택이 역사를 어떻게 세우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쏘지 마!, 살려줘!”

이 말은 2011년 10월 20일, 리비아의 독재자로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왕처럼 군림하던 카다피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한 나라의 최고 리더로서 유언이 아니라 구걸을 남기고 죽었다.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후 2011년 축출될 때까지 무려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한 인물이다. 그는 2009년 UN 연설에서 자신을 ‘아프리카의 왕 중의 왕’으로 자칭할 정도였으며, 헌법과 의회를 폐지하고 전제적 독재 권력을 행사했다. 이후 2011년 리비아 민주화 운동으로 정부군과 시민군의 내전이 촉발되었고 시민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고향 마을의 좁은 배수관에 숨어 있다가 시민군에게 끌려 나왔는데 성난 시민군이 머리에 총격을 가해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한 정육점 냉동고에 옮겨졌다가 가족에게 인계되었다. 결국, 역사에 ‘개인적인 이익만 추구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리더’로 남게 되었다.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했다. 리더는 이 말을 역사 인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 내가 선택하려는 결정이 역사를 두고 의로운 선택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선택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런 역사 인식 기준마저 없다면 리더로서 자격이 없음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역사의 평가대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 

리더는 역사라는 흐름 속에서,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를 위해, 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시치미를 떼는 리더는 역사의 냉혹한 평가를 피할 수 없다. 그들의 선택이 많은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청문회를 준비하는 후보자나 검증하는 국회의원이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청문회장에 입장하기 바란다. 

“매의 눈으로 국민이 보고 있다. 시치미 떼지 마라!”

송은섭 작가 seop2013@hanmail.net

송은섭의 리더십이야기

인문학과 자기계발 분야 전문 작가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마흔, 인문고전에서 두 번째 인생을 열다>, <지적대화를 위한 인문학 고전 읽기> 등이 있다. 경기대 외교안보학 석사, 고려대 명강사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유튜버(작가 조바르TV), 팟캐스트(책 읽는 시간)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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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박 2022-04-28 12:19:39
센스있는 마지막 문장이 모든걸 말해주네요!!! 역시 멋집니다

이주한 2022-04-28 11:35:51
형님 멋진 글 잘보고갑니다.^^
맛점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