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22년 만에 영화 ‘박하사탕’을 다시 봤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22년 만에 영화 ‘박하사탕’을 다시 봤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2.05.04 2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영화 보고 있는 거야?

23회 전주영화제가 지난 428일 개막하여 57일 폐막한다. 지금 전주는 영화로 한창이다. ‘전주는 영화다고 힘차게 외친 개막 선언의 울림은 너울너울 극장과 극장으로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적에도 폐막식까지 전주는 영화다라는 명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전주돔,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전주돔,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에 진심인 관객. 삼삼오오, 혹은 혼자 배낭을 둘러메고 극장을 오고 가는 그들의 얼굴에는 형형할 수 없는 빛이 흐른다. 그 빛이 환하기도 하고 때때로 어둡기도 하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영화로 향해 있는 그 열정을 영심(映心)’이라고나 할까.

전주에서 태어나고 전주에 묻힌 전주의 작가 최명희(1947~1998)의 소설 혼불(10)에는 전주를 꽃심으로 묘사한 대목이 있다. “끝끝내 그 이름 완산이라 부르며 꽃심 하나 깊은 자리 심어 놓은 땅, 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 꿈꾸는 나라라며 꽃심이 있는 생명의 땅으로 전주를 묘사했다. ‘꽃심을 품은 전주는 이제 영심하나 깊은 자리에 심어 놓은 듯하다.

'박하사탕' 스틸, 설경구, 문소리, (주)이스트필름 제공.
'박하사탕' 스틸컷, 설경구, 문소리, (주)이스트필름 제공.

22년 만에 다시 본 <박하사탕>

이번 영화제에서는 57개국 217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217편 중에서 영화 한 편 골라서 본다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특히 짧은 일정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통상 초청작은 영화제 기간에 2~3회씩 상영되지만, 특별상영은 한번 상영으로 끝난다. 같은 시간대에 보고 싶은 영화들이 겹칠 때는 선택에 신의 한 수가 필요하다. 작은 망설임 끝에 <박하사탕>(1999)을 봤다. 3가지 이유에서 결정했다. 첫째 올해가 마지막이 될 전주돔에서 영화를 보고 싶었고, 둘째는 감독의 신작 단편인 <심장소리>도 함께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내 기억의 저편에 액자처럼 자리 잡은 영화 속 한 장면 때문이었다.

전주돔의 객석은 23백석 규모다. 야외 상설극장과는 또 다른 공간적 분위기가 있다. 내년에는 전주독립영화의집이 건립될 예정이라 돔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마지막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쉬웠다. 무엇보다 이창동 감독의 특별전에 초청된 <박하사탕>은 전주돔에서 단 한 번 상영되기에 더 주저할 수가 없었다.

'박하사탕' 스틸컷, (주)이스트필름 제공
'박하사탕' 스틸컷, (주)이스트필름 제공

200011일 개봉했으니 실로 22년 만이다. 개봉에 앞서 1999년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맞물린 개인의 불행을 1999년 봄을 시작으로 1979년 가을까지 20년 세월을 살아 낸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의 흔적을 7개의 챕터로 보여준다.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는 박하사탕은 결국 눈물의 사탕이 되고 죽음의 사탕이 된다. 혼수상태에서도 첫사랑 영호(설경구)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순임(문소리). 감은 눈 사이로 흘러내리는 그녀의 눈물은 마치 박하사탕의 결정체처럼 빛난다. 사실 이 장면을 다시 보고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비로소 이 장면의 의미가 분명하고 또렷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을 본 것처럼 먹먹하다. 영호는 어림잡아 올해 63세다. 험악한 시대를 살아 낸 우리의 영호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었을까. 소풍에서 야유회로 세월은 변했지만, 박하사탕을 건네주던 그곳 강가에는 가을이 오면 여전히 들국화가 아름답게 피고 질 것이다. 옛날은 가고 없어도 그때 어른거리듯이, 훗날 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 <박하사탕>으로 기억될 것 같다. 박하사탕 같은 영화제로.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