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소수자 청년 실태조사 발표...“차별에 제도적 대안 마련해야”
한국 성소수자 청년 실태조사 발표...“차별에 제도적 대안 마련해야”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5.1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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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가정·직장·학교 등 일상적 공간에서 차별 체감
그럼에도 성소수자 보호 않는 제도정치권에 불신 높아
적대적 환경은 건강 문제로...차별금지법 등 대안 촉구
다양성을 향한 움직임, 다움이 한국 청년 성소수자 39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적 욕구 실태조사의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다움)
다양성을 향한 움직임, 다움이 한국 청년 성소수자 39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적 욕구 실태조사의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다움 페이스북 제공)

[한국뉴스투데이] 청년 성소수자 단체 다양성을 향한 움직임, 다움(이하 다움)이 한국 청년 성소수자 대상 사회적 욕구 실태조사의 결과를 발표하며,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다움은 지난해 3911명의 청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의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다움은 “청년 성소수자는 일상적인 공간은 물론 다양한 관계에서 '성소수자가 아닌 청년들과는 다른' 특수한 경험과 감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청년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 사회에서 청년 성소수자의 삶은 철저히 비가시화돼있다. 청년 성소수자의 인식과 경험을 드러내는 조사를 계획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며 조사의 취지를 밝혔다.

이번 조사를 통해 다움은 ▲일상 속 혐오와 차별의 체감 ▲정체성을 드러내도 괜찮은 사회에 대한 욕망 ▲구직·노동 환경에서의 장벽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위험 ▲성소수자에 적대적인 제도정치권에 대한 불신 ▲다양한 가족구성권과 파트너십에의 열망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등 한국의 청년 성소수자들이 가진 다양한 경향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불가피한 독립...혈연 가족 떠나는 성소수자 청년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청년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 자체보다 성소수자라는 것이 알려졌을 때 가족·친구·지인·사회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더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부정적인 반응’을 걱정했다는 응답이 83.9%로 가장 높았고, ‘사회적으로 만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걱정했다는 응답이 82.4%로 그 뒤를 이었다.

실제로 가족에게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알리는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의 경우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얻은 것으로 확인됐다.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가족 중 아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절반(1955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응답자 가운데 커밍아웃을 했을 때 ‘가족이 자신을 지지해주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30.8%에 그쳤다. 39.5%는 ‘가족이 자신을 지지하지도, 반대하거나 무시하지도 않았다’고 응답했고, 29.7%는 ‘가족이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반대하거나 무시했다’고 답했다.

이때 부정적인 반응의 내용으로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알면서도 모른 체한 경우(45.6%) ▲언어적 폭력을 당한 경우(26%) ▲오랜 시간 대화를 회피한 경우(17%) ▲원하는 성별표현을 금지한 경우(10.9%) 등이 가장 많았다. 심지어는 ▲상담사·종교인을 통한 교정 시도(4.4%) ▲신체적 폭력(3.9%) ▲경제적 지원 중단(3.5%) ▲절연(2.3%) 등을 경험한 경우도 있었다.

한 면접 참여자는 “(커밍아웃을 하고도) 부모님이 계속 (남성과) 결혼 언제 할 거냐고 물었다. 제 파트너랑 관계도 좋고 같이 살고 있었는데, 계속 그렇게 묻는 것이 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고, 또 다른 참여자는 “부모님한테 말을 하려고 했었는데 미리 알아채시고는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우리는 들어줄 수 없으니까 네가 고치라’고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에 청년 성소수자의 평균 독립 시기는 21.8세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독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독립한 응답자 1784명 중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이 독립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응답자는 34%였고, 현재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독립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한 1591명 중 ‘자신이 성소수자인 점이 독립을 고려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63.2%에 달했다.

특히 성소수자 정체성의 영향으로 독립을 한 청년들의 경우 ▲파트너와의 관계를 숨기는 것이 어려워서(49.9%) ▲퀴어임이 드러날 수 있는 물품을 숨기기 싫어서(33.3%)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지만 부모가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드러내서(31.8%) ▲이성과의 연애나 결혼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괴로워서(22.7%) ▲성별표현을 위한 각종 물건들을 숨기기 어려워서(17.5%) ▲커밍아웃/아웃팅(정체성이 타의에 의해 강제로 드러나는 일) 이후 부모 또는 형제와의 갈등(15.7%)과 ▲폭력적인 언행 때문에(6.6%) 독립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혐오와 차별 체감...건강 문제로

가정 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체감하는 차별의 문제도 심각하게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가운데 최근 1년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했다고 밝힌 응답자는 33.6%에 달했다. 특히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최근 1년간 차별을 경험했다고 밝힌 비율은 69.6%로, 트랜스젠더 10명 중 7명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움은 “청년 성소수자가 주로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에서 차별 경험이 높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학생의 32.4%가 대학(원), 취업자의 26.8%가 직장, 무직/주부/구직 중인 자 중 20%가 구직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차별을 우려하는 청년 성소수자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기게 되고, 성소수자의 비가시화와 함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반복적으로 유통되는 효과가 생겨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차별을 경험한 응답자 중 85.7%는 피해를 신고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항상 일어나는 일이므로 신고할 가치가 없다고 느껴져서(53%) ▲내가 성소수자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38.6%) ▲사람들이 이 사건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아서(28.6%) 등이었다. 이에 다움은 “청년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우리 사회가 자신이 겪은 차별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를 적절하게 해결해 줄 것으로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다움은 “근본적으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인권과 시민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문제인 셈이다. 설문참여자의 거의 대부분은 국회와 정부, 사법부 모두가 성소수자에게 비우호적이라고 응답했다. 경찰에 대한 신뢰도 매우 낮았다. 국가기관이 성소수자 차별을 정책적으로 예방하고 시정해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상에서의 차별 체감은 건강의 문제로도 이어졌다. 응답자 가운데 41.5%는 최근 1년간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최근 1년간 실제로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경우 역시 8.2%에 달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 등 일반 청년 전반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실태조사에서 자살을 생각한 비율이 약 5%, 자살을 시도한 비율이 약 1% 미만 수준으로 나타난 것을 고려하면 8배가량의 차이를 보인 셈이다.

이에 다움은 “청년 성소수자의 건강 문제는 이들이 처해있는 사회적 환경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것이 폐를 상하게 하듯,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며 “성소수자 청년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를 연구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이 연구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한편, 다움은 성소수자 관련 정책 중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꼽은 응답자가 60.3%에 달한 점을 강조하며 “많은 청년 성소수자들에게 있어서 성소수자 차별 및 인권 제고와 관련한 전반적인 문제가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이슈로 수렴되고 있으며,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밖의 성소수자 인권 관련 정책 변화의 첫걸음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는 평등사회 실현을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 비율은 67.2%에 달한 바 있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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