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은퇴한 축구선수의 새로운 길, 스포잇 권정혁 대표
【인터뷰】 은퇴한 축구선수의 새로운 길, 스포잇 권정혁 대표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2.05.29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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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시절 보고 느낀 스포츠 선수의 은퇴 후 인생 그리고 복지
열정적인 학구열과 노력으로 일군 스포잇, 사회적 기업으로 탄생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등 CSR 사업 위탁… 기회균등 노력

[한국뉴스투데이] K리그 역대 최장 거리 득점의 주인공이자 한국 최초로 유럽에 진출한 골키퍼 권정혁 선수가 은퇴 후 대표로 변신했다. 그것도 축구 유소년 센터 운영이나 자영업이 아닌 사회적 기업이란 생소한 분야로 도전했다. 겉으로 보면 의아하기만 하던 그의 행보가, 긴 이야기 끝엔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는 길로 가기보단 새로운 길을 만들고자 한 스포잇 권정혁 대표를 만났다. <편집자 주>

(사진/권정혁)
국내 최초로 골키퍼로서 유럽에 진출했던 전 프로축구 선수 스포잇 권정혁 대표 (사진/권정혁)

국내 최장 거리 골 기록 보유자

“누구나 은퇴 후 어려움을 겪습니다.”

K리그를 오래 봐 온 팬이라면 익숙한 얼굴의 권정혁 대표는 2001년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으며 골키퍼로 데뷔했다. 상무 시절을 지나 포항 스틸러스와 FC서울 등에 입단하게 되지만 국가대표 골키퍼로 잘 알려진 정성룡, 김병지 등의 선수와 경쟁하며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고민 끝에 그는 국내 최초로 유럽에 진출한 골키퍼가 되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도전장을 내민다. 핀란드 리그의 RoPS 팀과 계약하고 두 시즌 간 모두 주전 골키퍼 장갑을 꼈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이었다. 핀란드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2년은 그의 은퇴 후 인생을 크게 바꿔 놓게 된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은퇴 이후에 뭘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반면, 핀란드에서 만난 선수들은 은퇴 후 구체적인 계획이 있더군요. 은행원이 될 것이라든지 엔지니어 자격증이 있다든지 하는 식이었죠. 한국에 있는 동료들 그리고 제 모습과 비교가 됐어요. 한국의 운동선수 중 99%는 은퇴 후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핀란드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권정혁 대표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2013년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골문 앞에서 찬 롱킥이 상대의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K리그 역사상 최 장거리(85미터) 득점 기록으로 남았다. 이 시즌에는 전 경기 풀타임 출장으로 K리그 특별상까지 수상했다.

(사진/권정혁)
스포잇은 은퇴한 축구 선수와 취약계층 유소년 유망주를 매칭하는 멘토링 서비스를 구축했다. (사진/권정혁)

은퇴 후 스타트업 창업을 위한 노력

이후 광주 FC를 지나 부천 FC, 경남 FC 등을 거쳐 자연스럽게 은퇴의 수순을 밟았다. 핀란드에서 돌아온 뒤부터 꾸준히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던 그는 부모님이 오랫동안 사업을 한 덕분에 창업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경영 관련 책을 주로 읽으며 공부와 은퇴 준비를 동시에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의 학구열은 선수 시절부터 남달랐다. 훈련 시간 외에는 토익과 회화 공부에 몰두하기도 했다. 덕분에 외국어에 매우 능통해 통역 없이도 대화가 가능하다. 포르투갈어도 독학한 덕분에 핀란드에서도 현지 선수들과 소통에 문제없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지냈다.

그뿐만 아니라 체육 특기자들이 학적만 두고 실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것과 달리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학하며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받고 시험을 쳤다. 일반적인 운동선수와는 다른 행보였다. 이런 공부와 언어가 바탕이 되며 그의 핀란드 진출이 가능하게 됐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의 학구열은 은퇴 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은퇴 선수들이 우선 가장 많이 하는 축구교실에 저 역시 지분투자를 했었습니다. 1년 정도 지분투자 한 채 무엇을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요식업일 수도, 프랜차이즈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그러던 와중 스포츠 IT 기업인 QMIT의 이상기 대표를 만나 스타트업 분야를 새로 알게 됐고 이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죠. 저 역시 스타트업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당시 이상기 대표가 있던 공유 오피스 옆에 무작정 1인 사무실을 얻었어요. 경영 관련 책을 읽기도 하고 이상기 대표의 일을 보며 많이 배웠죠.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보기도 했고요.”

(사진/권정혁)
모든 스포잇의 구성원들이 하나의 꿈을 좇아 달려가고 있다. (사진/권정혁)

취약계층 꿈나무들의 기회균등을 위해

스포잇은 그렇게 탄생했다. 6개월간 공부한 권정혁 대표가 2019년에 문을 연 스포잇은 코로나 19가 창궐하던 시기에도 묵묵히 본인만의 성장을 이뤄냈다. 첫발은 은퇴선수와 취약계층의 축구 유망주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의 역할이었다. 은퇴 선수로서 은퇴 후를 걱정했고, 그런 선수들 사이에 있던 권정혁 대표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본인뿐만 아닌 동료와 후배들의 은퇴 후를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1년 정도 지나니 연맹이나 협회에서 자연스레 주목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능숙하게 일한 건 아니었다. 정부 지원사업에 도전하는 미션이 있어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 때는 스피치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돈 내고 뭘 배워본 적 없던 그였지만 학원에서 발표하는 법을 배우니 새롭고 재미있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고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에 스트레스도 받았다. 창업 후 8개월가량은 사업 방향을 의심하기도 했다.

“1년 정도 지나니 연맹이나 협회에서 러브콜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제야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맞구나 하는 확신도 들었죠. 2020년부터 한국프로축구연맹 CSR 사업 K리그 드림 어시스트를 운영하며 어려운 축구 유망주를 은퇴하거나 현역 선수들과 매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레슨 기회를 가지지 못한 유망주들에게 기회의 균등을 맞추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스포잇은 또 대학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하거나 중고등학교 선수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 필요한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촬영, 편집해 판매하는 스카우팅 비디오 서비스 ‘풋앤볼 코리아’를 인수해 운영한다. 대한축구협회 SCR 사업을 위탁 운영하며 ‘KFA 레전드 클리닉’ 역시 진행한다. 2020년 도교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 교육 영상, 대한체육회 꿈나무-청소년 선수 및 지도자 온라인 교육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프로스포츠협회와 은퇴선수 온라인 교육으로 축구뿐만 아닌 모든 스포츠 분야 은퇴 선수들의 두 번째 인생을 응원한다.

국내 최장거리 골 기록 보유자이기도 한다. (사진/권정혁)

하나의 꿈을 좇는 ‘원팀(One Team)’

연맹이나 협회 같은 공인된 기간 일하다 보니 사회적 기업 인증도 빨라졌다. 일반 기업을 운영할 수도 있는데 왜 하필 사회적 기업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권정혁 대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답했다.

“핀란드에 있던 시절 복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동안 연봉을 올리는 것이 선수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사람들이 협력을 통해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사회적 구조, 가치에 대해 고찰했고 은퇴 후 사업을 고민할 때도 이 시절 했던 생각이 적용된 것 같아요. 사업 방식이 무척 좋고, 이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내가 기여할 것은 무언인가를 생각하며 방향을 잡으니 자연스럽게 사회적 기업이 됐습니다.”

권정혁 대표는 사회적 기업이 돈이 안 된다는 일련의 편견들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수익 구조를 더 탄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사업과 연계해 진행하고, 이를 알아본 회사의 투자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2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스포잇은 믿을 수 없는 성장을 이루었다.

“최근엔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것 같습니다. 이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만 더 만들면 될 것 같은데 말처럼 쉽진 않아요. 하지만 대표 한 명의 꿈을 모두가 좇는 것이 아닌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꿈을 꾸는 것이 주식회사의 본질이듯 이 꿈을 향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주인 의식으로 일을 찾아서 해주는 직원들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혼자 해내진 못했을 거예요. 저의 최장 거리 골은 단순히 ‘해프닝’입니다. 수백 번, 수만 번 했던 킥이 어쩌다 골이 됐을 뿐이죠. 저는 갑자기 오는 행운보다는 묵묵히 걸어온 인생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믿어요. 스포잇도 마찬가지예요.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해프닝 같은 일들이 일어나 있겠죠.”

(사진/권정혁)
축구 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선수의 은퇴 후 삶을 응원하는 스포잇. (사진/권정혁)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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