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커리어와 우울증' 위선임 작가에게 듣는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
【인터뷰】 '커리어와 우울증' 위선임 작가에게 듣는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2.06.29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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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책 엮어낸 위선임 작가
JTBC 여행 예능 ‘트래블러’ 메인 작가로 이례적 데뷔
커리어 정점에서 맞은 우울증으로 3년간 칩거 생활
“수많은 노력과 도전 그리고 운동으로 이겨낸 마음의 병”

[한국뉴스투데이] 위선임 씨를 처음 만난 건 2018년 초가을, 당시 신간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를 통해 위선임, 김멋지 두 여성의 세계여행을 엮어낸 뒤 활발한 활동을 시작할 때쯤이였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들은 유쾌했고 반짝였다. 앞으로의 미래에 기대감 가득 찬 눈빛은 기자가 때마다 위선임이란 이름을 검색어에 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5년 뒤 다시 만난 위선임 씨는 조금 더 깊어진 눈을 밝히고 있었다. [편집자주]

5년 뒤 다시 만난 위선임 씨는 조금 더 깊어진 눈을 밝히고 있었다.
5년 뒤 다시 만난 위선임 씨는 조금 더 깊어진 눈을 밝히고 있었다.

인생의 계단 앞에서 WHY를 외쳤다

위선임 씨의 본명은 위경은이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회사에서의 직급인 ‘선임’이 성씨에 붙인 그만의 닉네임이 어느덧 가명이 됐다. 살아온 인생을 대변하는 위선적 별명이자, 다가오는 삶은 이름과 다르게 살겠다던 그녀는 어떤 궤적을 그려왔을까?

대학교 의류학과에 입학 후 동기 김멋지 씨와 만난 위선임 씨는 함께 세계 여행을 약속했지만, 20대를 졸업과 취업, 치열한 회사생활로 훌쩍 보내 버렸다. 서른을 앞둔 위선임 씨는 그동안 세상이 원하는 틀에 맞춰 살아왔다는 생각과 함께 소위 ‘현타’가 왔다. 졸업 후 취업, 취업 후 결혼이라는 당연하게만 느껴진 인생의 계단 앞에서 문득 물음표가 찾아온 것이다. 당시 남자친구와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지만,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기다려주겠다던 남자친구도 오랜 여행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힘들어했다. 결국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위선임 씨는 김멋지 씨와 ‘야반도주’했다. 전 세계로.

워킹 홀리데이로 딸기 공장에서 단순노동 하기도,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무리를 마주치고 대자연 앞에서 펑펑 눈물이 나기도, 요르단 페트라에서 날 선 감정 싸움을 하기도 했던 두 여성이 여행 내내 블로그로 기록한 그들의 이야기는 서서히 유명해졌고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엔 떠나기 전과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고 인터뷰와 강연 등이 이어졌다. 그중 블로그를 통해 연락해 온 JTBC 최창수 피디는 위선임 씨를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데려갔다.

“피디님이 저희 블로그의 애독자셨대요. 어느 날 블로그에 안부 글을 남기신 거예요. 저희가 여행하는 과정을 다 지켜보셨다며, 우리가 만날 때가 된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말씀과 함께 연락 달라고 하셨죠. 여행을 통해 재미있는 걸 만들어보고 싶은데 같이 해보자고 하셨고 그렇게 만든 것이 JTBC의 여행 예능 <트래블러>였어요.”

위선임 씨는 절친 김멋지 씨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서른, 결혼 대신 야반 도주' 책을 펼쳐냈다. 

세상의 끝에서 방으로 들어가다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무거운 자리였다. 경력이 없을 뿐 아니라 두 명 외에 다른 작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례적인 데뷔와 동시에 메인 작가가 된 위선임 씨와 김멋지 씨는 최대한 여행자의 시선으로 생생함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배우 류준열과 이제훈이 열정의 나라 쿠바에서 여행하는 모습을 그린 <트래블러> 시즌 1은 큰 호평을 받으며 시즌 2를 준비했다. 위선임 씨가 이상함을 느낀 것도 이즈음이었다.

“시즌 1이 진행될 때부터 잠을 못 자기 시작했어요. 짜증과 예민함도 늘었고요. 처음엔 단순히 피곤한가 보다 생각했죠. 지금 돌아보니 제가 스스로 소진하는 성격이라 조금씩 지쳐갔고 신체적으로 증상을 나타나기 시작한 거였죠. 아침까지 못 자던 날이 많았는데 어느 날 새벽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 왜 우는지도 모르겠는데 몇 시간을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같이 살던 멋지가 자다 깨서 너무 놀랐죠. 그때 제가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부터는 약을 먹으면서 일했어요.”

약이 효과를 보이며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고 느꼈다. 시즌 2 시작 전, 2~3개월 휴식 기간이 있었다. 위선임 씨는 쉬어보니 또 괜찮아진 것 같다고도 느꼈다.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얼마 후 시즌 2를 시작하게 됐고, 아르헨티나 답사에 갔을 때 결국 일이 터졌다.

세계여행을 할 때 정말 가보고 싶었지만, 여건 상 포기해야 했던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 있었다. ‘세상의 끝’이란 별명처럼 여행자들에겐 성지나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와보고 싶었던 우수아이아에서 배를 타고 땅끝으로 가는 중에, 그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 느끼지 못했다. 스태프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하염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며 울기만 했다. 비교적 힘들지 않았던 답사였지만, 위선임 씨에겐 모든 것이 무겁게 느껴졌다.

단 두 명의 작가만으로 이뤄진 방송. 그만두겠다고 말해야 했던 시기는 지나버렸다. 친구이자 동료였던 멋지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한없이 밀려왔다. 위선임 씨는 이때를 두고 “인생을 살면서 지금까지 가장 힘든 선택을 해야 했던 순간”이라고 떠올린다.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 직전 트래블러 시즌 2를 관두고 본격적인 휴식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낫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지더군요. 투명한 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 느낌과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이 닥쳐와요."

“방광이 터질 것 같은데 화장실을 못 갔어요”

그렇게 그의 긴 칩거 생활이 시작됐다. 시즌 2를 관둔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누구도 그의 공백이 이토록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위선임 씨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푹 쉬면 괜찮아지겠지’ 했던 공백은 3년여간 이어졌다.

“코로나 직전 트래블러 시즌 2를 관두고 본격적인 휴식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낫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지더군요. 투명한 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 느낌과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이 닥쳐와요. 삶을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얼마 못 가 부딪히는 거예요. 그런데 실체가 없으니 깨부술 수도 없고 열 수도 없고 뭔지 몰라요. 그런데 항상 부딪치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 나는 앞으로 못 나가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반복돼요. 방광이 터질 것 같은데 화장실을 갈 수 없거나 신발 끈을 묶고 현관문을 나갈 수 없거나 글을 쓰기 위해 바로 앉는 것도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해요.

위선임 씨는 수도 없이 시도했다. 어떤 날에는 성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좋아졌다고 느껴질 때는 그만큼 괴로움이 더했다.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자기 연민에 빠졌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깁스를 한 것처럼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병에 걸렸던 그는 자신의 병을 끊임없이 의심했고, 때문에 더욱 고통스런 날을 보냈다.

2년이 지났을 때쯤 끔찍한 자기 연민과 고통에 빠져있던 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남들에겐 별것 아니었지만, 위선임 씨에겐 너무 힘든 도전이었다. 유튜브나 책을 찾아보고, 남들 일어날 때 일어나고 낮에는 무조건 나가기도 했다. 햇볕을 쬐고 걷고 홈트레이닝도 했다. 글로 본인의 감정을 기록했다.

“MBTI로 쳤을 때, 저는 태생적으로 파워 E예요. 남들을 만나고 바깥에 나가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인데 그 사실에 너무 자만했나 봐요. 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너무 오래 마지막까지 밀어붙였더니 생긴 일이었죠. 하지만 최대한 노력했어요. 할 수 있는 건 다했어요. 글을 쓰는 건 제 인생의 낙이었는데 한 자도 쓸 수 없을 때, 너무 절망했지만 계속 시도했고 어떤 날은 됐고 어떤 날은 안됐어요. 나머지도 그런 식으로 끊임없이 시도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수많았던 시도들이 제 우울증에 계속 잔금을 낸 것 같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제가 그동안 했던 작지만 힘든 노력이 모여 실금을 내고 있었는데, 운동이 그 보이지 않던 유리천장을 와장창 부숴준 매개체였죠."

작은 노력이 모인 소중한 결실

위선임 씨는 3년 여간의 칩거 생활을 끝내고, 지난해 우연한 기회로 찾은 헬스장에서 운동에 처음 눈을 뜨고 서서히 자신의 벽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운동을 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체력이 달렸고 병원에서 운동해야 한다고 했지만, 시도하기 힘들었다. 그를 지켜보던 지인이 몇 번의 설득 끝에 억지로 스케줄을 잡아끌고 간 이후였다.

“사람들은 종종 운동이 저의 우울증을 끝냈느냐고 물어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제가 그동안 했던 작지만 힘든 노력이 모여 실금을 내고 있었는데, 운동이 그 보이지 않던 유리천장을 와장창 부숴준 매개체였죠. 확실한 건 운동이 아니었으면 안 됐을 거라는 거예요.”

목 끝까지 숨차게 운동하며 그녀는 점점 우울증에서 벗어났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스스로 했던 소중한 노력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그녀는 없었을 거다. 1년 여간의 노력 끝에 이제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그녀는 최근 자신을 문밖으로 꺼내준 헬스장에서 직원으로 일한다. 이 역시 위선임 씨의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들의 덕분이다. 자신이 운동을 통해 우울증을 이겨낸 경험을 살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위선임 씨의 의욕도 컸다.

“힘들 만큼 힘들어 본 것인지, 요즘 저는 잠재적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보여요. 제가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고 일까지 해 준 멋지가 지난 해부터 약간 번아웃이 오더라고요. 적금이라도 깰 테니 무조건 일을 쉬라고 했고 고맙게도 그렇게 해주었어요. 멋지에겐 평생 빚을 갚고 살아야죠. 다른 누군가도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면 제 경험을 살려 도와주고 싶어요. 트레이너가 될지 교육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글을 통해 도움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누군가는 그 긴 터널 한가운데서 울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제 작은 움직임이 언젠가 도움이 되길 바라요.”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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