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커스】 尹정부, 연장근로 ‘월 단위’로 개편...노동 건강권 적신호
【위클리포커스】 尹정부, 연장근로 ‘월 단위’로 개편...노동 건강권 적신호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7.02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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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 시 산술적으로 최대 주 92시간 노동도 가능해
“노사 합의 거쳐야 해 비현실적” 정부 해명했지만
장시간 노동 가능성 열어 양대노총 등 노동계 반발
지난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윤석열 정부가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월 단위로 개편하겠다고 밝히면서, 노동 건강권 보호 조치 없이 오히려 장시간 노동 사회로 역행하고 있다는 반발이 거세다.

尹정부, 연장근로시간 월 단위 개편

지난 2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서 현재 1주일에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노사합의에 따라 월 단위로 바꿀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6일 정부가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의 맥락을 이은 것으로, 정부는 “주 52시간제 기본 틀 속에서 노사합의를 기반으로 근로시간 운용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근로자의 건강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건강보호조치를 병행하겠다”며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단위 확대를 예고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달 중으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를 꾸려 4개월간 민간과 노사 의견을 청취한 뒤 구체적인 입법과제와 정책과제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책 추진 방향에서 큰 틀이 이미 결정된 만큼 큰 이변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택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1주 최대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1주 최대 연장근로시간을 12시간으로 정해, 연장근로시간을 모두 사용하더라도 1주일의 최대 근무 시간이 52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이는 문재인 정부 당시 추진된 노동 정책으로 지난 2018년 3월 근로기준법 개정을 거쳐 그 해 7월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됐다. 

그런데 연장근로시간의 단위를 월 단위로 바꿀 경우, 산술적으로는 주 최대 92시간 근무도 가능해진다. 달마다 일수가 28~31일로 달라 1달을 4.345주라고 계산한다면 월 단위 최대 연장근로시간이 약 52시간(4.345주x12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를 한 주에 몰아서 사용하면 1주 최대 근로시간인 40시간에 더해 92시간을 근무할 수 있게 된다.

이 장관은 이날 “주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급격하게 줄이면서도 기본적인 제도의 방식은 그대로 유지함에 따라 현장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작년 4월 유연근로제가 보완됐지만 절차와 요건이 쉽지 않아 활용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이라고 개편 취지를 설명했다.

친기업·반노동 움직임 본격화 우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주 120시간 바짝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후 “주 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데 따른 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한 것이지 실제로 120시간씩 과로하게 하자는 취지가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으나, 주 52시간제의 예외 조건을 확대하는 등 개편해야 한다는 입장은 유지했다.

아울러 정부의 정책 발표에서 한국의 고질적인 노동 문제로 꼽히는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양극화 ▲장시간 노동 ▲과로사 ▲특수고용노동자 등 보호 사각지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미적용 등에 대한 구체 해결 방안은 일체 언급되지 않아, 윤석열 정부의 노동관에 대한 비판은 계속됐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가 나서서 장시간 노동의 가능성을 열자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고용노동부 장관이라면 물가폭등 시기에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보장할 임금인상과 복지확대, 노동시장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비정규직 대책, 산업환경의 변화로 플랫폼노동의 확산에 따른 노동자 권리 보호 방안 등의 문제에 대한 정책 방향을 내놔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민주노총은 “노동담당 부처 장관으로서 소신과 전문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통령의 관심사인 시대착오적 장시간 노동방안과 사용자의 일방적 임금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만을 내놓은 것에 대해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역시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반발하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목표에 역행하는 과제로, 사용자단체의 숙원과제들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장시간 노동사회...해결 불투명

이에 이 장관은 “주 92시간 근무는 매우 극단적인 예”라며 “정부 구상대로 제도가 개편되더라도 개별 사업장에 적용되려면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실현될 수 없다”며 “11시간 연속 휴식 등 건강권 보호조치가 반드시 병행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11시간 연속 휴식은 하루 근무가 끝나고 다음 날 근무 시작 전까지 1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부여해야 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이 역시 불가피한 경우에는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 간 서면 합의에 따라 예외를 둘 수 있다고 허용하고 있어, 노동조합이 없거나 힘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아울러 현재도 유연근로시간제가 존재해 ▲최대 6개월까지 업무량에 따라 1주 평균 52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특정 기간의 근로시간을 늘릴 수 있는 ‘탄력근로제’ ▲1개월에서 3개월까지 총 근로시간만 정한 뒤 노동자가 1일 근로시간만 선택하는 ‘선택근로제’ 등이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월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을 확대하는 데에는 ▲유연근로제의 최대 기간인 6개월이 짧고 ▲근무 일정을 사전에 확정해야 해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으며 ▲출퇴근 시간을 노동자가 정하고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등 단점을 해소해달라는 기업들의 요구가 이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 지난 1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주 52시간 제도는 경직적이어서 (기업들이) 개선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기업 현장에 직접 가거나 기업인을 만나면 이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이 없다”며 이러한 맥락을 재차 확인시켰다.

또 추 장관은 “장기적으로 근로시간을 점차 줄여나가는 방향성은 정부나 저나 백번 공감한다”면서도 “근로시간 정산 기간을 유연하게 해달라, 일을 많이 해야 할 때는 하고 수요가 적을 때는 쉬고, 평균적으로는 주 52시간을 지키겠다(는 호소를 듣는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장시간 노동 국가다. 한국은 2021년 기준 연간 근로시간이 1928시간에 달한다. OECD 국가 평균 근로 시간이 1500시간대인 것을 고려하면 약 400시간, 즉 약 2개월을 더 일하는 셈이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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