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친구이야기 
행복한 친구이야기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2.07.08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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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것은 마음에서 오는 걸까?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걸까?
흔히,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다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 행복할 거라고 여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소식이 끊어지기 전까지 이 친구는 손에 꼽히는 부자였다. 물질적으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친구라 심심하면 외국에 왔다갔다가 했기에 좀처럼 만날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은 친구였다. 

그런데, 작년부터 연락이 닿으면서 최근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사정을 일일이 얘기하긴 좀 그렇지만, 행복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이 친구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물질적으로 집안이 넉넉했던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딱히 직업을 얻어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하지만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남편과 원만하지 못했던 친구는 타지에서 외롭게 딸아이를 낳아야 했고, 시댁의 말도 안 되는 요구와 핍박을 받으면서 살았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마음고생을 했다. 

결혼 10년차 쯤 돼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혼을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남편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남편은 딸아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 친구를 알기에 아이의 양육권을 무기삼아 버티고 버텼다. 친구는 더 이상 마음고생을 하며 힘들게 시간을 끄는 것보단 거액의 위자료를 주기로 합의를 봤다. 그때 당시엔 딸아이를 지킬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단다. 그 마음이 닿았는지, 친구 전남편은 위자료를 받자마자 바로 양육권을 포기했다.  

이혼도 하고, 아이의 양육권도 가지고 왔으니 이제는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을 거라 생각했다. 딸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지금껏 한 번도 부족함 없이 살았던 친구에게 궁핍함은 견딜 수 없는 현실이 돼버렸다. 어떻게 해야 될 지 막막한 상황에서 딸아이의 학비까지 걱정하는 친구를 보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는데…….

시시각각 조여 오는 경제적 위기는 친구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경제적 궁핍함은 누구에게나 힘든 시련일 텐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세상물정 모르는 친구에겐 더욱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세상에 대한 원망이 점점 커갔다. 왜 그런 남편을 만났는지, 왜 요구만 하는 시댁이었는지, 왜 거액의 위자료를 주었는지……. 자신을 책망하며 세상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두문불출하며 어두운 마음속에만 갇혀 지냈다. 급기야 몸에도 이상이 나타나 관절이상, 듣도 보도 못한 피부병과 오십견,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혼자 있다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숨을 쉴 수가 없었단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단다. ‘이렇게 죽는 구나’ 싶었단다. 그때 마지막 기도로……. 

‘지금껏 이렇게 누리고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번을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면서 평소의 마음과 달리 정말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단다. 
그리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둑의 물이 터지듯 숨이 트였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친구는 정말 절실히 경험을 했다. 그 이후 먹고 살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넉넉하진 않지만 딸아이 뒷바라지를 열심히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지금도 세상에 대한 원망은 다 가시지 않았지만 지난 모든 일들이 자기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고 했다. 이 친구가 내 친구라 자랑스럽다.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내 줘서 고맙다. 

그 친구는 말한다. 
“남들이 보기에 지금의 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초라하고, 힘든 상황처럼 보이지만, 
내가 느끼는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하다.”

친구를 보며 깨달았다. 
물질적으로 넉넉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그 넉넉함은 객관적 기준이 없기에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늘 부족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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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자 2022-07-10 13:58:57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난 다음에야 우리들은 귀중한 것을 알게 될까요? 조물주는 우리에게 한꺼번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 않고 이렇게 시련을 통해서 만이 터득하도록 했다는 아이러니...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