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평에 스스로 갇힌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에 쏠린 눈
0.3평에 스스로 갇힌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에 쏠린 눈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7.08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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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 철제 감옥 안쪽서 스스로 용접하고 17일째 갇혀
불황에 임금 30% 삭감...인력난으로도 이어져 임금 회복 요구
사측 피해 크다며 집행부에 고소장 제출...경찰 체포영장 발부
지난달 22일 스스로 1세제곱미터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 갇히는 방식으로 점거 농성을 시작한 유최안 부지회장이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페이스북 제공)
지난달 22일 스스로 1세제곱미터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 갇히는 방식으로 점거 농성을 시작한 유최안 부지회장이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한국뉴스투데이]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지회)가 삭감된 임금의 원상회복과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 등 파업을 한 달째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각 협력사, 대우조선해양, 산업은행 등 원청과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은 채로 체포영장이 신청돼 노사정 갈등은 격화되고 있다.

0.3평에 스스로 갇힌 노동자

하청지회의 점거 파업은 지난달 2일 시작됐다. 하청지회는 옥포조선소 1번 독에서 건조 중인 원유운반선을 점거하고 파업했다. 이어 지난달 18일에는 배를 물에 띄워보는 진수 작업이 하청지회의 점거 농성에 가로막혔다. 

1번 독은 옥포조선소 내 가장 큰 독으로, 선박 4척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규모다. 가장 큰 도크가 파업으로 막혀 앞뒤 공정에도 차질이 생기자 대우조선해양과 각 협력사는 사내 인력을 동원해 하청지회 조합원들을 밀어내는 등 파업 중단을 시도하면서 갈등을 키웠다.

그러자 지난 22일 유최안 하청지회 부지회장은 1번 독에서 유언장을 작성한 뒤, 가로·세로·높이 1m인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 안쪽에서 용접해 자신을 가뒀다. 유 부지회장은 “만약 회사나 경찰이 나를 체포하려고 철제감옥을 절단기로 제거하려고 시도한다면 인명사고로 이어질 것”이라며 시너 통까지 구비해 파업 거점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유 부지회장이 철제 구조물 속에 몸을 구겨 넣은 채로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피켓을 들고 카메라를 응시한 사진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시민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현재 유 부지회장은 17일째 철조물 안에서 끼니와 생리현상 등을 해결하면서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청지회 조합원 6명 역시 15m 높이의 원유 저장 시설 난간에서 고공농성 중이다.

하청지회 조합원 6명은 옥포조선소 1번 독의 15m 높이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페이스북 제공)
하청지회 조합원 6명은 옥포조선소 1번 독의 15m 높이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삭감된 임금 원상회복 요구...원청 책임 강조

하청지회의 핵심 요구는 지난 5년간 삭감된 임금의 원상회복이다. 조선업이 불황을 겪는 동안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은 30%가량 삭감됐고,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임금은 30% 이상 삭감됐다는 것이 하청지회 측의 설명이다.

최근 들어 조선업계의 수주는 회복됐지만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회복되지 않았다. 이러한 임금 삭감은 인력난으로 이어졌고, 인력난은 노동 강도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갇혔다.

조선업이 불황을 겪는 동안 하청노동자들은 대거 해고됐고, 임금 삭감과 작업 자체의 위험성 등으로 인해 스스로 그만두는 하청노동자들도 늘었다. 이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은 전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인력난으로 인해 더 높은 노동 강도를 견뎌야 했던 셈이다.

아울러 노사 간 쟁점이 되는 문제는 집단교섭 여부다. 하청지회는 하청노동자가 어떤 업체에 소속되어 있든 똑같이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며 여러 협력업체들이 하나의 대표단을 꾸려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사 측은 협력사마다 경영 상황이 다른 만큼 개별적으로 교섭을 진행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지난 2000년 대우조선해양이 대우중공업의 구조조정 등에 따라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됐고 현재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의 55.7%를 소유한 대주주로 재무·인사 등 결정권을 쥐고 있어 노동계는 산업은행이 노사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체포영장 신청에 노사정 긴장 고조

이에 대해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협력사와 노동자 간의 문제로, 하청지회 측과 대화할 계획은 아직까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조7549억 원, 올해 1분기 4701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대우조선해양은 협력사에 지급하는 전체 도급 금액을 평균 3.5% 인상했고, 대부분의 협력사에서 임금 협상을 마무리한 만큼 더 이상의 도급액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나아가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말 하청지회의 지회장과 부지회장 2명 등 3명을 업무 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대우조선은 하청지회의 파업으로 2800억 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했고, 일정 미준수로 인한 지체보상금을 고려하면 더욱 피해가 막심하다고 호소했다. 

지난 6일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사장을 포함한 모든 임원이 24시간 비상 체제를 가동하며 현 위기를 해소하는 일에 앞장서겠다"며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다. 박 사장은 "오랜만에 찾아온 조선 호황,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지역 및 국가 경제 활성화 기여 등의 기회가 불법 파업으로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간곡히 부탁드린다. 불법행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주길 바란다"고 밝혀 하청지회 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재확인했다.

갈등이 해결될 여지가 보이지 않자 경상남도와 고용노동부 통영지청, 국회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은 하청지회, 대우조선해양, 협력사, 통영지청, 정규직 노조 등 5자 간담회를 제안했고, 국회에서도 관련 좌담회가 개최되기도 했으나 아직 협의에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태다.

한편, 지난 29일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경남연대’는 시민 1만 명이 1만 원씩 모아 1억 원을 만들어, 장기 파업으로 생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청노동자 200명에 50만 원씩 지급하자는 취지로 모금사업을 시작했다. 시작 당일 2200명이 약 4400만 원을 보냈고, 지난 3일 기준으로는 8700명이 돈을 보내와 1억8000만 원가량 누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인 후원금은 하청노동자들의 월급날이었던 오는 15일 전달된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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