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 김유미 간사
【인터뷰】 한국 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 김유미 간사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7.21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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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축복한 죄'로 감리교서 재판 회부된 이동환 목사
재판 관련 대책위 활동으로 인연 시작돼 함께 큐앤에이 출범

정기예배 등 기독교인 성소수자 당사자와 지지자 위한 활동 지속
동성애 죄로 규정하는 한국 교회...교단법 조항 등 변혁 위해 운동

[한국뉴스투데이] ‘차별금지법은 곧 동성애 옹호법’이라는 보수 기독교 세력의 격렬한 반대로 차별금지법이 번번이 입법에 실패해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기독교에게 차별금지법 찬성 여론의 부상은 하나의 위기다. 이에 본보기라도 보이려는 듯 대한감리회는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를 들어 한 목사를 재판에 회부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교회 내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큐앤에이다. 예수야말로 손가락질 당하는 이들과 고난 당하는 이들 곁에 있었다고 기억하는, 김유미 간사를 만났다. <편집자 주>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한국 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Q&A의 김유미 간사를 만났다. (사진/한국뉴스투데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한국 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Q&A의 김유미 간사를 만났다. (사진/한국뉴스투데이)

한국 교회, ‘성소수자 축복한 죄’를 묻다

지난 2018년 9월, 인천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됐다. 그러나 인천기독교총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기독교 시민단체들의 반대 집회로, 축제는 사실상 진행되지 못했다. 반대 집회자들은 축제의 진행을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축제 참여자들을 상대로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

당일 집단적인 폭력 상황이 가까스로 종료된 후에도 축제 참여자들은 각종 성희롱과 혐오 발언, 불법 촬영과 협박 등을 증언했고, 공포와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이에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은 참가자들을 위한 트라우마 치유 상담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기도 했다. 책임을 묻는 인천퀴어문화축제비상대책위원회의 형사 고발 등에 따라 일부 가해자들은 이후 상해죄 및 집회를 방해한 죄 등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이듬해 열린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이동환 목사는 성소수자 축복식의 집례자 중 한 명으로 나섰다. 혐오와 폭력으로 얼룩졌던 지난 축제를 위해 기도하고, 성소수자들을 축복한다는 의미에서 꽃잎을 뿌렸다. 그런데 다음 해인 2020년 6월, 이동환 목사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내 재판에 회부됐다. 감리회의 교단법인 ‘교리와 장정’의 3조 8항,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는 정직·면직·출교할 수 있다’는 조항을 위반했다는 명목이었다.

성소수자를 위해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 처분을 받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이동환 목사가 지난해 2월 22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에서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동환 목사의 왼쪽으로는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대책위 구성원들이, 오른쪽으로는 동성애 문제에 반발하는 세력들이 늘어서있다. (사진/뉴시스)
성소수자를 위해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 처분을 받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이동환 목사가 지난해 2월 22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에서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2020년 8월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꾸려졌다. 이동환 목사가 재판에 회부됐다는 소식을 듣고 모인, 감리교 소속 신학교 학생들과 감리교단 목회자들로 꾸려진 대책위였다. 당시 감리교 신학대학교 학생이었던 김유미 간사 역시 소식을 듣고 곧장 대책위에 참여했다.

“제가 신학대학교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당시 몇몇 신학대학교들은 ‘나는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서약을 받았어요. 저는 그런 서약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서약을 받지 않는) 감리교의 신학대학교를 골랐던 거였고요. 그런데 이 교단이 단지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목사를 재판에 회부했으니, 제가 대책위에 참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목회자로 살면서 언젠가는 성소수자 의제로 활동해야겠다고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만 때가 빨리 찾아왔다는 생각이었어요.”

대책위원으로서 이동환 목사의 재판 과정을 지켜봐 온 김유미 간사는 재판에 아쉬운 점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이 재판이 개인의 신앙 문제를 넘어서 신학적으로도 성소수자 관련 논의를 시작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재판은 실상 재판이라기보단 징계위원회 같은 느낌으로 진행이 됐어요. 선생님이 교무실에 잘못한 학생 불러다 훈계하는 느낌이었으니까요. 논의가 확장되지 못하고 계속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만 물으며 제자리에 머물러있으니 답답했죠.”

지난해 열린 감리교 입법총회를 찾아간 큐앤에이 활동가들이 '무지개 빛으로 다시 서는 감리교회' 등의 피켓을 들고 성소수자 차별조항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큐앤에이 제공)
지난해 열린 감리교 입법총회를 찾아간 큐앤에이 활동가들이 '무지개 빛으로 다시 서는 감리교회' 등의 피켓을 들고 성소수자 차별조항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큐앤에이 제공)

한국 교회를 향한 퀴어한 반문

재판을 겪으면서 한국 교회 내 성소수자 차별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체감하게 된 이동환 목사와 김유미 간사는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대응할 단체를 꾸리기로 마음을 모았다. 목회자로서의 경력으로 교회 내 인프라에 접근하기 쉬웠던 이동환 목사와 디자인·홍보·이슈체크 등에 능한 김유미 간사는 좋은 동지가 됐다. 

이후 두 사람의 단체 조직 취지에 동감하는 10명가량의 활동가가 모여 준비위원회를 진행했고, Q&A(이하 큐앤에이)로 이름을 지었다. ‘한국 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이라는 슬로건도 덧붙여졌다. 뜻을 모은 운영위원들과 준비 활동을 거쳐, 지난 4월 창립총회를 진행하며 정식으로 출범했다.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마다 예배를 진행하고, 성소수자 기독교인들을 위한 상담프로그램부터 웹진, 팟캐스트, 여름 수련회, 영화 상영회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도 이동환 목사도 일할 때 브레이크가 없는 타입이에요. 재밌지 않을까? 하면 해요. 신나게 일을 벌려놓곤 서로 버거워할 때도 있고요. 이동환 목사와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목사님의 제안으로 말을 놨는데요. 제가 하도 짓궂게 장난을 쳐서 아마 말 놓자고 한 걸 후회하고 있을 거예요. (웃음)”

교리와장정 3조 8항과 같은 교단 내 성소수자 차별 조항을 개정하는 일 역시 큐앤에이의 주요 사업이다. 지난해 큐앤에이는 격년으로 열리는 감리교 입법총회에 찾아가 피켓팅을 진행하고, 차별법을 주제로 내부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법총회를 구성하는 특정 인원들이 의결권을 쥐고 있는 만큼, 개정에 이르기까지 아직 넘을 산이 많다.

“제가 속한 학교와 교회의 미래가 걸려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 운동을 하는 것이지만, 제가 차별법 개정 운동의 성과를 누릴 당사자가 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미래를 위해서 논의의 문을 연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누군가 시작하지 않으면 저절로 되는 일은 없으니 이런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알리려는 거죠.”

차별 조항 관련 간담회를 진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간담회를 통해 큐앤에이는 해외 교단에서의 차별 조항 개정 흐름을 살펴보고, 국내 성소수자 차별 조항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모으고, 피해 양상을 모니터링하고, 필요할 경우 피해 내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긴 시간에 걸쳐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내실을 다지는 단계인 셈이다.

출범 1년이 되어가는 지금, 큐앤에이는 퀴어 교회력 및 퀴어 시편 제작, 성소수자 친화 교회 지도 구축, 생애 주기에 따른 성소수자 예식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한국뉴스투데이)
출범 1년이 되어가는 지금, 큐앤에이는 퀴어 교회력 및 퀴어 시편 제작, 성소수자 친화 교회 지도 구축, 생애 주기에 따른 성소수자 예식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한국뉴스투데이)

소수자 곁에 서는 신앙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하며 목사 안수를 준비하고 있는 김유미 간사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사람도, 신앙 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아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중학생이었던 김유미 간사는 특목고나 자사고에 입학하길 원했던 부모님의 기대를 꺾고 특성화고 영상과에 진학했다. “고등학교가 미션 스쿨이었는데, 그것도 저는 잘 몰랐어요. 입학식에서 강당의 긴 의자를 보고도 마을버스 의자 같은 게 있네? 그렇게만 생각했죠.”

그런데 입학한 학교가 우연히 미션스쿨이었던 것이 김유미 간사에게는 일종의 전환점이 됐다. ‘이야기’를 좋아했던 성향이 성서에 대한 매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성서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가치가 자신에게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된 김유미 간사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당시 세월호 참사를 목도하면서, 김유미 간사는 학교보다 광장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된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대학에 가지 않았고, 대신 출판사에서 여는 시 수업을 들었다. 등단하겠다는 목표에서도 아니었다. 영상과에 진학했을 때처럼, 그저 이야기를 만나고 글을 만지는 일이 즐거워서였다. 그런데 시 수업을 듣는 동안, 한편에선 신학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싹텄다. 

지난 16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진행된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김유미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지난 16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진행된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김유미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한국 교회가 성서를 해석하는 방식이 너무 획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해석을 접할 일도 많았고요. 성서는 정말 넓고 깊은 텍스트인데, 이걸 이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근본적인 신학을 배우고 싶다는 꿈이 생긴 거죠. 17살엔 특성화고에 가겠다고 하더니, 20살엔 대학에 안 가겠다고 하고, 23살이 된 이번엔 신학대에 가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얘는 3년 주기로 지랄을 한다’고 그러시기도 했어요. (웃음)” 

신학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목사가 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김유미 간사는 성서에 대한 획일적인 해석이 유통되는 현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해석들도 있고, 해외의 다양한 성서 해석을 들여오는 신학자들도 많지만, 그걸 이 땅에 발 붙게 만들 사람이 없는 것이더라고요. 소수적인 목소리도 발 붙일 환경을 만들어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서 속 구절들을 근거로 동성애는 죄라는 해석을 반복하고 있는 교단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김유미 간사에게 목회자와 인권활동가는 분리된 직업이 아니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한국 교단 내 성소수자 혐오 문제가 지속되는 이상, 교단의 현실을 바꾸려는 목사의 역할은 곧 한국 사회를 변혁하는 활동가의 일과 같기 때문이다. 학교와 사무실, 학생과 활동가를 오가는 김유미 간사가 이른바 ‘꿘’인 목사가 되고자 하는 이유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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