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가지 말자 
힘들게 가지 말자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2.07.22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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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평소에 잘 가지 않는 곳이지만 몸이 찌뿌듯해서 억지 마음을 먹고 올랐다. 대신 평소 가던 길이 아니라 조금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해서……. 

산이라는 것이 원래 처음에는 가파른 오르막이 있기 마련인데, 오늘 택한 길은 편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완만한 경사 끝엔 내리막까지 있어준다. 산이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편한 길이다. 물론 숨이 차거나 땀도 많이 나지 않는다. 인생의 길도 이렇게 편하면 얼마나 좋을까? 잠깐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게 문제다. 당연히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는 걸 모르는 내가 아니다. 내가 온 길을 그대로 간다면 갈 때는 당연히 땀에 쩔 만큼 힘든 길이 버터고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오늘은 그 힘든 길을 어떻게든 비켜나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오르막을 피하고 싶었고, 헉헉대며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산에는 여러 갈래가 있어 쉬운 길만 가도 집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좀 돌아가는 길이 될 수도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 평평한 길만을 골랐다. 오르막과 내리막 두 갈래의 길이 있으면 무조건 내리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덕택(?)에 힘들거나 쉬이 지치지 않았다. 그 덕택(?)에 30분이면 도착할 것을 거의 2시간 넘게 걸려 집에 왔다.    

난 오늘 무슨 일을 했던가? 오르막이 싫어서, 힘든 것이 싫어서 시간을 허비한 건가?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힘든 것을 잘도 피해왔다고 스스로 대견해해야 할까? 

사실 정답을 잘 모르겠다. “세상에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힘들고 어렵고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어렸을 때 하기 싫은 일은 떼를 쓰면서까지 안 하려고 했던 나를 보며 엄마가 야단치며 했던 말이다. 

엄마의 말씀처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인 것을 나는 애써 외면한 걸까? 당당히 오르막을 마주하지 못하고 용기 없이 피한 걸까? 그러면서 인생의 중요한 뭔가를 놓쳐버린 걸까? 힘들고 하기 싫어하는 일도 해야 좋아하는 일들을 할 기회도 생기는 걸까?

하지만 곧 생각을 달리했다. 인생엔 정답이 없다는 것을. 
평탄한 길을 가기 위해 돌아 돌아 왔다고 해도 그것이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도 좋을 것이고, 어렵고 힘들지만 잘 헤쳐 나와 남들보다 빨리 갈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면 그 또한 잘 선택한 것이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외길이라 해도 선택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힘든 오르막길 밖에 없다면 땀이 나지 않게, 천천히 오를 수 있겠지. 남들보다 뒤처지면서 천천히 가더라도 힘들지 않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 

모든 인생의 길은 저마다의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그 오르막과 내리막을 피할 수 없다면 그 길을 묵묵히 갈 수밖에……. 
다만, 오르막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속도를 내며 힘들게만 오를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의 속도에 맞게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간다면 오르막 역시 내리막과 같이 숨이 차지 않게, 땀 흘리지 않고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힘든 오르막보다는 쉬운 내리막을 선택하고,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오르막이라고 해도 내리막처럼 천천히 가보리라.  

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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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자 2022-08-17 15:36:27
작가 님 말마따나 인생의 정답은 없는 듯 합니다. 평생 그렇게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한번쯤, 아니 종종 편하게 또는 내키지 않을 때는 하지 않을 권리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