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용의 출현’... 적의 무리가 달아났다
‘한산: 용의 출현’... 적의 무리가 달아났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2.07.24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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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성을 쌓아라! 승리의 전술 학익진

이순신(1545~1598)난중일기에는 1592년 임진년 611일부터 823일까지의 일기가 없다. 159211일부터 1598년 무술년 1117일까지 7년 동안 출전한 날을 제외하고는 간지(干支: 십간과 십이지)와 날씨를 빠뜨리지 않고 틈나는 대로 적었던 그가... 당항포 해전 이후부터 한산 해전까지, 이순신은 단 한 줄의 일기도 남기지 않았다. 그때는 조선의 국운이 풍전등화 같은 위태로운 시기였다. <한산: 용의 출현>은 당항포 해전 이후부터 한산해전이 일어난 후일까지를 영화에 담았다.

'한산: 용의 출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산: 용의 출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592413일 부산포가 기습적으로 뚫리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외부의 침략에 대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은 단 15일 만에 왜에 한양을 내준다. 도성을 잃은 선조는 평양으로 떠나고 왜군 주력군들은 조선 정복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계속해 북진한다.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은 6, 경상도 고성 당항포에서 왜선 20척을 수장시켰다. 하지만 이순신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어쩔 수 없는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에 미리 대비하여 1591년부터 거북선 제조에 착수하고 군대를 정비하였다.

이순신이 임진왜란을 준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되었던 황윤길과 김성일의 보고가 단초가 됐다. 그들이 가져온 일본의 국서에 군사를 거느리고 명나라에 뛰어 들어가겠다는 말은 당시 조정을 긴장시켰다. 조정은 변방 대비책을 강화하기 위하여 인재 추천을 명했고, 류성룡(1542~1607)은 정읍 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을 천거하여 전라좌도수사에 임명하게 된다이순신은 전라좌도수사로서 수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해상과 육지전을 모두 염두에 두고 전쟁을 대비했다. 그 결과 1952년 왜란 발생 후 옥포해전을 비롯한 당포, 한산도, 명량 등의 여러 해전을 지휘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전쟁에 대한 신속 정확한 대비와 파악으로 작전하는 모습에서 충무공의 철저한 유비무환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박해일(이순신), '한산: 용의 출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박해일(이순신), '한산: 용의 출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산: 용의 출현>은 당항포 해전 이후 약 한 달간부터 한산해전이 일어난 후일까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드라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수많은 전투 중 최초로 압도적 승리를 거둔 한산해전은 그야말로 조선의 운명을 바꿔놨다. 한산해전은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백성들의 열망에 불을 지폈고 전국 곳곳에 의병들이 봉기하며 방어에 나섰다.

영화를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임진왜란은 전대미문의 사태였고, 사변이었다. 조선이 굉장한 수세에 처해있던 상황에서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전체적인 전황을 반전시키는 전투가 바로 한산해전이다라며 한산해전이 그 어떤 전투보다 벅찬 승리의 전투임을 전했다.

한산도 대첩(閑山島大捷) 혹은 견내량대첩(見乃梁大捷)1592814(선조 25년 음력 78)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육전에서 사용하던 포위 섬멸 전술 형태인 학익진을 처음으로 해전에서 펼쳤다. 56척의 조선 배와 73척의 왜선이 싸워 47척을 격파하고 왜군 1만여 명을 전사시켜 임진왜란 전투 중 가장 최초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전투에 속한다.

김한민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 압도적인 승리의 전투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최대치로 전달하기 위해 학익진 연출과 거북선 디자인 및 작업에 공을 들였다. 난중일기에는 한산도 대첩이 발발했던 때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고, 제작진은 역사적인 자료가 부족한 상황임에도 최대한 여러 사료와 영화적 상상력을 조합한 연출에 신경 썼다. 특히 거북선 연구가들의 분분한 의견들 속에서 임진왜란 개전 초기 일어난 전투에서 가장 실용적이고 실효성 있는 모델은 어떤 것인가?’를 기준으로 <한산: 용의 출현>만의 거북선이 모델링 되었다.

당시 수세에 몰려 있었던 조선.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우수영과 경상우수영 장수들을 모아 전면전을 한다. 이순신은 몇몇에 반대를 무릅쓰며 바다 위의 성을 쌓는 학익진 전술을 강행한다. 그의 판단력과 적을 반드시 이기겠다는 주도면밀한 작전과 기세가 영화를 압도한다. 학익진과 거북선 모두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절대적인 판단력과 기세를 확인할 수 있다.

<한산: 용의 출현>에 박해일, 변요한, 안성기, 손현주, 김성규, 김성균, 김향기, 옥택연, 공명, 박지환까지 두 세대를 뛰어넘는 넓은 스펙트럼의 배우들이 캐스팅됐다.

김한민 감독은 임진왜란 초기 지장으로서의 이순신은 어떤 느낌일지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배우 박해일을 캐스팅한 이유에도 그의 눈빛 속에 지혜로운 이미지가 묻어 나서였다고. 징비록(류성룡 )에 장수 이순신을 묘사한 내용 중 영명한 눈빛이 마치 선비와 같았다라는 부분이 박해일 배우를 떠오르게 했다고 캐스팅 배경을 전했다. 한산해전 당시 이순신의 나이는 47. 배우 박해일 45.

'한산: 용의 출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산: 용의 출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한민 감독은 "영화가 사회적 함의를 담아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명량' 통해 배웠다""이번 영화는 전쟁 초기 조선이 끝장날 수 있었던 시기를 그린다. 이순신이 홀로 고군분투하면서 거북선까지 등장하는데 세계사적으로 완벽한 진법을 구사한 것 자체가 대단하다. 이런 영화를 대한민국의 이 시점에 보면서 무한한 자긍심을 가졌으면 한다. 큰 위안과 용기로 남을 거로 생각해서 <한산: 용의 출현>의 의미를 그렇게 두고 있다"고 솔직한 심정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영화를 본 후 난중일기를 읽었다. “홀로 배 위에 앉았으니 어머님 그리운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라는 구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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