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호텔식 웨딩카 서비스 제공하는 ‘은발의 웨딩쇼퍼’ 더쇼퍼 노경환 대표
【인터뷰】 호텔식 웨딩카 서비스 제공하는 ‘은발의 웨딩쇼퍼’ 더쇼퍼 노경환 대표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2.07.31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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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간 호텔 총지배인으로 일한 노경환 대표, 은퇴 후 창직의 꿈
쉽지 않은 은퇴 후 인생, 대리운전으로 시작 "관두라는 말까지 들어"

호텔식 서비스를 갖춘 대리운전으로 시작한 사회적기업 더쇼퍼
아들 결혼식에서 웨딩카 이동 서비스 사업 아이템... "새 시작"

3,5,7,10시간대 별 웨딩카 이동 서비스, 신혼부부 맞춤 제공
"코로나 시기엔 위기... 헌혈캠페인 참여 서비스로 버텼다"

웨딩카 시장의 판도가 바뀐다. 은퇴한 중장년들이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여는 신혼부부의 웨딩카를 운전하는 사회적기업 ‘더쇼퍼’가 그곳이다. 더쇼퍼를 창립한 노경환 대표는 수십 년간 해오던 일을 접고, 남은 자산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그 결과 코로나 기간 동안은 혈액을 이동하는 대기업의 파트너로, 코로나가 막바지로 접어든 최근에는 또다시 황혼의 드라이버로 더쇼퍼를 성장시켰다. 노경환 대표를 만났다. [편집자주]

대리운전으로 시작해 웨딩카 이동 서비스라는 새로운 개념의 사업 아이템을 성공한 더쇼퍼의 노경환 대표 

 

은퇴한 호텔리어의 새 도전

더쇼퍼 노경환 대표는 20여 년간 5성급 호텔 총지배인으로 몸 담은 그야말로 서비스계의 베테랑이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88 서울올림픽 당시 16일간 세웠던 할인율 제로, 공실률 세로, 판매율 100%의 호텔 영업 최고 기록에도 그가 있었다. 치열한 인생 1막을 조용히 내린 그는 62세에 은퇴와 함께 다시 세상에 뚝 떨어진 기분을 느꼈다.

“은퇴 후에도 몇 날 며칠간 호텔 일 하는 꿈만 꿨어요. 그만큼 은퇴가 실감나지 않았죠. 조마조마한 경영 성과 회의를 하다가 깨기를 며칠. 잠재적 습관이란 고리를 단번에 끊을 수 없듯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갑자기 늘어난 시간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도 만나고 등산을 다니고 자원봉사를 나갔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저마다 희망을 안고 은퇴를 하고 모였지만, 막상 재취업의 현실에 부딪혀 한숨만 쉴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의 기분을 살피게 되더군요. 집에서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자원봉사, 도서관, 등산 등의 스케줄을 꽉꽉 채워 잡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동질감과 동시에 씁쓸함을 느꼈어요. 현실을 즐기는 은퇴 후 인생이 아닌, 도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노경환 대표는 그제야 일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백여 통에 달하는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실업급여가 끝났지만, 나이 장벽에 부딪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2013년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첫날부터 손님에게 상처받고 “그만두라”는 말을 들기도 했고, 실수가 잦아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만둘 것”이라는 주위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그는 4년간 대리운전 일을 했다.

더쇼퍼의 쇼퍼(운전자) 교육을 이수한 사람들. 쇼퍼는 모두 중장년층으로 구성돼있다. 

“대리운전에 호텔 서비스를 접목하면?”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직업이 무얼까 생각하면서 크게 고민 없이 떠오른 일이 대리운전이었습니다. 대리운전을 할수록 직업인으로 제대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점점 호텔리어 서비스와 대리운전 기사를 접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부터 사업을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호텔리어처럼 복장을 갖추고 더 퀄리티 좋은 대리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시작이었죠.”

하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젊은 시절 10여 년간 사업을 했던 경험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머릿속에선 ‘대리운전을 새로운 개념의 은퇴 직업으로 창업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이때부터 노경환 대표는 본격적인 창업을 시도했다.

우선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모집에 맞춰 응모했지만 2번의 낙방이 이어졌다. 창업관련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사회적기업 진흥원 위탁 교육기관의 창업아카데미를 들었다. 4개월간 학습을 통해 사업계획서 작성 기술과 프리젠테이션도 배웠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와 개념을 확실히 배우기도 했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창업공모전에도 한 번 낙방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도전한 끝에 성남시 사회적경제 창업공모전에 합격했다. 더쇼퍼는 그렇게 시작됐다.

안전한 오너 드라이빙과 그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더쇼퍼.

아들의 결혼식에서 얻은 창직 아이템

하지만 처음부터 더쇼퍼가 웨딩카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은 아니다. 시작하고 보니 프리미엄 대리운전 사업의 기존 시장이 매우 견고하고 규모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틈새시장이 보여도 투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더구나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도 법인설립 이전에 사업 구체화 과정을 통해 아이템 수정을 촉구했다. 더 색다르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하던 노경환 대표에게 아들의 결혼식은 발상의 전환이 돼주었다.

“결혼식 당일,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고 나가는 아들을 보며 순간적으로 웨딩카 서비스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결혼식 당일은 신랑, 신부의 가장 행복하고 좋은 날인데 이런 날 운전까지 해서야 되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긴장과 떨림으로 스트레스가 심한데 친구에게 신세 지는 것은 결례처럼 생각된다는 아들을 보며 ‘이거다’ 싶었죠. 그렇게 웨딩카 이동 서비스를 사업 아이템으로 정할 수 있었어요.”

결국 2016년 4월, 더쇼퍼는 성남시 사회적 경제 지원센터 인큐베이팅에 들어가 1년간 창업 준비자금을 받고 3년간 업무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전문가 멘토링과 교육을 무상으로 받는 혜택도 따라왔다. 시범운행을 통해 웨딩카에 적합한 차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결혼식에 필요한 대형 캐리어, 액자, 한복, 드레스 등의 물품을 적재할 시뮬레이션도 완성했다. 카니발 한 대로 이동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7년 13커플로 시작한 더쇼퍼의 웨딩카 서비스는 2018년 103커플, 2019년 202커플이란 성과를 거두며 급속히 성장했다.

쇼퍼라고 불리는 운전기사 교육 역시 처음엔 알려지지 않아 교육 콘텐츠 프로그램이 성원 미달로 폐강되기도 했지만, TV, 라디오, 신문, 유튜브를 통해 더쇼퍼가 알려지자 쇼퍼를 희망하는 중장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9년 가을 50플러스 재단에서 다시 시작한 웨딩쇼퍼 교육 프로그램은 대기자가 발생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가 가져온 위기는 웨딩업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며 더쇼퍼를 휘청이게 했다. 위기에 놓인 노경환 대표는 또 다른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기간동안 줄어든 예식사업을 대신해 헌혈을 돕는 기프트카 레드카펫에 참여했다. 

웨딩카를 운전하는 노신사들

“코로나19로 결혼식이 줄었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잖아요. 무엇보다 국민적 재앙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죠. 마침 현대자동차그룹에서 혈액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으로 특별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제안해왔어요. ‘대국민 헌혈 캠페인’이었는데, 헌혈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이동을 도와주는 것이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좀 더 이동에 안전함을 느끼고 헌혈을 늘리고자 하는 의도였죠.”

기회는 계속 이어졌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인연이 이어져 ‘기프트카 레드카펫’의 파일럿 드라이버에 26명의 쇼퍼들이 8개월간 무사고로 운행했다. 백신을 맞으러 가는 것이 힘든 노인들을 위해 포드자동차 한국 공식 딜러 프리미어모터스사와 함께 운행 서비스도 제공했다. 거리두기가 끝나고 올해 봄부터 본격적으로 결혼식이 재개되자 더쇼퍼도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잊혔지만, 노경환 대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더쇼퍼는 현재 신랑, 신부가 안전하고 편안한 결혼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3, 5, 8, 10 시간별로 각기 다른 서비스를 제공한다. 집과 샵, 웨딩홀과 호텔 또는 공항까지 이동이 많은 결혼식 날 상황에 맞게 든든한 기사와 차량을 서비스하는 일이다. 노경환 대표는 결혼 날짜를 정한 직후 찾아온 신부 아버님의 루게릭병 사연이나 중요한 물품을 챙기지 못한 신부, 결혼식 당일 코로나19에 확진된 부모님 소식을 들은 신랑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신혼부부를 만났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더쇼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고객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그들은 수백 개의 감사를 남기며 떠났다. 결혼식 외에도 병원이 필요한 시니어를 안전하게 모시는 웰케어 쇼퍼, 골프라운딩 같은 중요한 클라이언트와 이동해야 하는 경우 등을 위한 꽃중년 쇼퍼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은퇴 후 무조건적인 창업은 절대 권하고 싶지 않아요. 실패할 경우 재기가 힘드니까요. 일자리를 얻는 것보다 일거리를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길 바라요. 사회적 경제나 사회 공헌 시장에서 창직 아이템을 찾아보는 것을 권합니다. 나의 경험이 앞으로 창직, 안정적인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은퇴 후 겪게되는 난감한 현실과 새로운 삶을 위한 구체적인 도전을 실천해 낸 더쇼퍼의 노경환 대표는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자신을 보고 힘을 내길 바란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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