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계
잃어버린 세계
  • 김민희 배우
  • 승인 2022.08.01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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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단 한번뿐인 삶. 그 삶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떠나보낸다. 
그 중에서도 나의 세계로 완벽하게 들어온 존재를 잃는 상실감은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다.

상실이란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며, 누군가와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잃게 되든, 그것이 내게 소중한 가치가 있을수록 공허할 수밖에 없다. 물질적 상실이나 인간관계의 상실이나 나의 세계 속에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면, 그것을 잃고 난 후에 따르는 고통과 슬픔은 더욱 깊다. 그래서 잃을까봐 미리 두려움을 갖게 되거나, 상실의 트라우마로 힘들어 하기도 한다.

소중한 것, 사랑하는 이가 사라진 세상에서, 그 상실감에서 나를 버티게 할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이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켜내야 하는 것이 곧 나를 지탱해 줄지도 모른다. 상실의 기억을 지니고도 우리의 삶을 지속하고 영위하는 것이 남겨진 자의 몫이기도 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성실함도, 그 어떤 강인함도, 그 어떤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내버려둬도 만사는 흘러갈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 입을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 그게 인생이야."
 -무라카미 하루키<상실의 시대 (원제:노르웨이의 숲)>중에서-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잃어버리고 나면 더 괴로운 일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건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잃게 되는 일일 것이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모습이고, 심지어 그 슬픔을 치유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그러나 삶의 굴곡은 당장의 치유만이 해답은 아니다. 오롯이 겪어내야만 극복할 수 있는 것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회복하고 치유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치유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슬픔을 완전히 겪어야 한다. 밖으로 나갈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통과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건너뛸 수는 없다. 슬픔을 늦추기 위해서는 주위에 조심스럽게 앉아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단지 슬픔 곁에 앉으라. 슬프면 자신이 그 슬픔을 느끼게 하라. 분노와 실망에도 이같이 하라. 하루 종일 울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 상처를 억누르거나 또한 표현할 정도로 충분히 아물지도 않았는데 인위적으로 꺼내려고 하는 것만 피하면 된다. 여기서 얻어야 할 것은 고통을 느끼고 난 후 찾아오는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쿼블러 로스 & 데이비드 케슬러 <상실수업> 중-

충분히 슬퍼하라는 것. 슬픔을 억누르고 괜찮은 척 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슬픔과 함께 하라는 이야기다.

인간의 관계를 완벽히 단절 시키는 죽음 역시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중에 하나라고 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포함되는 것 같다.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죽음. 그에 따른 슬픔, 상실감. 충분히 겪어내야만 고통에서는 해방될지 모르지만, 끝내 내 마음속에 안고갈 수밖에 없다.

로스와 케슬러는 <상실수업>에서 '상실'은 가장 큰 인생수업 이라고 했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무언가 잃어갈 것들에 대해 정녕 두려운가.
하지만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실이란 '모두 끝났다'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의 증거가 된다."

나의 세계에서 소중한 무엇을 잃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잃을 것이 단 하나도 없는 삶이야말로 '모두 끝나버린' 진정한 상실이 아닐지.

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김민희 배우 calnews@naver

배우 김민희

만 6세인 1982년 KBS 성탄특집극 《집으로 가는 길》에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에 들어선 아역스타 출신이다. MBC베스트극장에서 다수의 주인공 역을 시작으로 SBS 대하드라마 《여인천하》, MBC 주말연속극 《여우와 솜사탕》, 등을 통해 안방극장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 특히 1997년 MBC 일일연속극 《방울이》에서 주인공인 방울이 역을 맡아 많은 사랑을 받은 연기파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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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동철 2022-10-07 23:50:02
'충분히 슬퍼하라는 것. 슬픔을 억누르고 괜찮은 척 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슬픔과 함께 하라는 이야기다' 라는 부분에서... 1997년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장례식때 두 아들인 윌리엄, 해리왕자가 왕실의 법도 때문에 울음을 가슴속에 삭히며... 어머니의 운구를 따르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국민들에게 절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왕자들의 슬프고도 비극적인 면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