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커스】 의사 없어 숨진 간호사...‘필수의료 저수가’ 문제 대두
【위클리포커스】 의사 없어 숨진 간호사...‘필수의료 저수가’ 문제 대두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8.06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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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가능 의사 모두 휴가 중 뇌출혈 발생
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해 논란

24시간 365일 상시가동 응급의료체계 마련 촉구
고위험 저수가로 인력 부족 악순환, 정부 나서야
서울아산병원에서 한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픽사베이)
서울아산병원에서 한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픽사베이)

[한국뉴스투데이] 초대형 상급종합병원에서 한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후 사망한 사건이 논란이다. 이에 정부가 나서 응급의료체계를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높은 위험도에 비해 수가가 낮게 책정된 필수 의료 분야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술할 의사 없어 숨진 간호사

지난 2일 서울아산병원의 한 간호사가 근무 도중 뇌출혈 증상으로 해당 병원의 응급실에 갔지만, 뇌출혈 응급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아산병원은 규모와 의료 면에서 국내 병원 가운데 이른바 ‘빅5’로 꼽히는 곳임에도 의료인력 부족으로 환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에 파장은 더욱 커졌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는 30대 간호사 A씨는 지난달 24일 오전 6시 30분경 출근 직후 극심한 두통을 느끼고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 의료진은 뇌출혈 진단을 내리고 혈류를 막는 색전술 처치를 했지만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를 여는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당시 병원에는 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의사가 없었다.

아산병원의 뇌 질환 담당 신경외과 전문의는 총 3명이다. 그런데 그중 뇌혈관 외과 수술이 가능한 2명 모두 이날 학회 참석 및 휴가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에 응급실 의료진은 해당 의사들이 병원에 도착하는 것보다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 조치하는 것이 더 빠를 것으로 판단해 A씨를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A씨는 이송된 후에도 회복하지 못하다가 지난달 30일 끝내 숨을 거뒀다. 

인력 부족과 부실한 응급치료체계 지적

이에 관련 학회와 보건의료단체들은 의료진 인력 부족과 응급치료체계 부재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4일 대한뇌졸중학회는 “그동안에도 이번 사망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비일비재했지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현재 전국에서 뇌졸중 집중치료실을 갖춘 병원은 42.5%에 불과하고, 전국 응급의료센터 중 30% 이상이 24시간 뇌졸중 진료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학회는 “무엇보다 전국에 충분한 숫자의 뇌졸중 치료 권역센터를 확보하고 권역센터에서는 365일 24시간 치료체계가 상시 작동하도록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 특히 뇌졸중 응급진료를 감당해야 하는 전공의 숫자를 늘려 전문의 당직근무로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려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역시 “2700여 병상 규모의 상급종합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조차 긴급수술을 할 의료진이 없어 타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다는 사실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환자가 365일, 24시간 발생할 수 있는 조건에서 학회나 휴가 등의 변수가 존재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보건의료노조는 “정부는 이번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와 병원 차원의 대책 마련이 잘 이루어지는지 철저히 감독하고, 기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 17년째 제자리걸음인 의대 정원을 수요에 맞게 대폭 확대하고 응급·외상 등 필수 의료를 책임질 수 있게 양성과정을 개편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 평가나 의료기관 인증평가에 대해서도 다시금 점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위험 저이익’인 필수의료...정부 나서야

뇌출혈 수술 인력이 부족한 현실은 높은 부담에 비해 낮은 이익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뇌혈관외과 교수는 “뇌혈관 수술의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지원자도 급감해 없는 작금의 한국 현실에, 그나마 뇌혈관 외과 의사를 양성해놓으면 대부분이 머리 열고 수술하지 않는 시술 의사의 길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방 교수는 “실력을 갖추려면 1년에 휴가 10일 정도 외에는 일만 하는 기계처럼 근무해야 한다. 이러니 자라나는 젊은 의대생들이 신경외과, 특히 뇌혈관외과를 지원할 리 없고, 뇌 수술 꿈을 가지고 들어온 신경외과 전공의들도 전공의 4년을 마치고 나면 현실의 벽에 절망해 대부분 척추 전문의가 되는 게 현실”이라며 높은 노동 강도와 인력 부족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필수적인 의료분야보다는 이익이 높은 분야에 주력하는 병원들의 경향도 문제로 꼽힌다. 뇌출혈 수술과 같이 위험 부담이 크면서도 이익이 낮은 분야의 경우, 반드시 충분한 인력이 확보돼야 하는 분야임에도 병원들이 투자하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병원 자율로 인력 고용을 맡겨놓기보다 정부가 특정 진료에 전문의 인력 고용을 제도적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가 나서서 의료 체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자, 정부는 관련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5일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여러 어려운 여건 때문에 의료제공이 원활하지 못한 필수적인 의료 부분을 확충·강화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 대변인은 아울러 “보상을 비롯한 여러 재정적인 지원 방안과 의료인력을 포함한 진료현장의 실질적인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며 “여러 현장의 전문가나 의료단체 등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의견도 함께 수렴하고 있다. 장기간 의료현장에서 수고하셨을 고인이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에 대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분들에게도 조의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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