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군대 내 성폭력·괴롭힘①] 故이예람 중사 부대서도 재발
[끝나지 않는 군대 내 성폭력·괴롭힘①] 故이예람 중사 부대서도 재발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8.0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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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 하사에 이 중사 사망한 관사 추천...생전 공포감 호소
유서 추정 다이어리엔 군 생활로 힘들어했던 정황 발견돼

공군 제15특수비행단서 성폭력 재발...성추행·협박·회유 등
피해 내용 모욕 및 신고 내용 누출 등 2차 가해도 재발해

[한국뉴스투데이] 지난해 5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상관의 성추행 및 부대 차원에서의 2차 가해에 시달리던 이예람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정황들까지 알려지면서 군 검·경 조직의 폐쇄성과 그로 인한 사건 은폐 가능성이 재차 확인됐다. 군 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군 조직이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사건을 은폐·무마하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일은 지난 2013년과 2017년에도 있었다. 이예람 중사의 사망 이후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고 군인권보호관이 출범하는 등 표면적이나마 재발 방지 조치가 이뤄졌음에도 반복되고 있는 군 내 성폭력·괴롭힘과 이를 방조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김숙경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장이 공군15비 여군 하사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김숙경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장이 공군15비 여군 하사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故이예람 중사 소속 부대서 여군 숨진 채 발견

지난 6월 ‘공군 20전투비행단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군 내 성폭력 및 2차 피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안미영 특별검사팀’이 출범했다. 이는 이 중사 사망을 둘러싼 의혹과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특검이 꾸려져야 한다는 유족들과 시민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중사 사망 이후 군의 조직적 사건 은폐 시도 정황 등이 폭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의 조사에서는 관련 핵심 인물들이 모두 제외돼 처벌을 피해 간 바 있었다. 현재 특검은 해당 부대를 압수수색하고 자료를 살피는 등 관련 인물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특검이 압수수색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19일 오전 이예람 중사가 근무했던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여군 부사관 강 모 하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강 하사가 발견된 곳은 강 하사가 사망 전까지 머물던 군 내 관사로, 이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됐던 관사와 같은 곳이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이 중사의 사망 이후 이 중사가 사용했던 관사는 반년 넘게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초임 하사였던 강 하사가 제20전투비행단 복지대대에 관사로의 이사를 신청하자 복지대대는 별다른 설명 없이 강 하사에게 해당 관사를 추천했다. 이에 지난 1월 강 하사는 해당 숙소에 입주했다가 약 3개월이 지나서야 우편물 등을 통해 해당 관사가 이 중사의 사망 장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강 하사는 주변 동료들에게 공포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군인권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유서로 추정되는 다이어리에는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한테 다 뒤집어씌운다’, ‘나만 억울하게 살기도 힘들다’, ‘만만해 보이는 하사 하나 붙잡아서 분풀이한 것 나중에 꼭 그대로 돌려받아라’ 등 사망에 부대 내 요인이 존재했음을 추론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군사법원법 개정에 따라 공군은 군사경찰은 민간 경찰과 함께 사망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군인권보호관도 사건 통보를 받은 후 조사를 개시했으며, 범죄 혐의점이 확인되면 사건은 민간 경찰에 이관될 예정이다. 

공군서 성폭력·2차 가해 재발

강 하사의 사망 사고가 알려진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A하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도 잇따라 알려졌다. A하사는 이예람 중사가 전출돼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부대인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 소속으로, 가해자는 이 중사 사망 이후 해당 부대에 새로 부임한 B준위(44)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B준위의 성폭력은 지난 1월부터 시작해 피해자가 신고하기까지 3개월간 이어졌다. B준위는 안마를 해준다거나 부항을 떠준다는 핑계를 대며 여러 차례 성추행했고, A하사가 거부 의사를 표현할 경우 통상 A하사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에서 A하사를 배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불이익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4월 3일 늦은 저녁 시간 B준위는 A하사에게 코로나19로 확진된 동료 남군 하사의 격리 숙소에 동행할 것을 요구했다. 남군 하사로부터 코로나를 전염받아야 업무를 쉴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에 A하사는 예정대로 코로나 검사를 받겠다며 거절했으나 B준위는 40여분에 걸쳐 동행을 강요했고, 상관의 말을 더 이상 거부하기 어려웠던 피해자는 결국 해당 숙소에 동행했다.

그런데 B준위는 해당 숙소에서 A하사에게 코로나에 감염돼야 한다는 구실로 동료 하사에 입을 맞추라고 지시하는 등 성적 접촉을 명령했다. A하사가 불응하자 B준위는 자신의 손에 직접 해당 하사의 침을 묻힌 뒤 피해자에게 이를 핥으라고 하는 등 황당한 지시를 이어갔다.

이를 A하사가 모두 거부하자 B준위는 숙소를 나서면서 확진 하사가 마시던 음료 한 병을 챙겼고, A하사에게 이를 마시라고 강요했다. 이미 늦은 새벽 시간에 계속 거부할 경우 귀가도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A하사는 결국 이를 마셨으며 3일 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마련된 故이예람 중사 추모 시민분향소에서 이 중사의 양친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마련된 故이예람 중사 추모 시민분향소에서 이 중사의 양친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결국 참다 못한 A하사가 4월 15일 공군 양성평등센터에 피해 사실들을 신고하며 고소 의사를 밝혔고, 이튿날 B준위는 군 경찰에 입건된 뒤 같은 달 26일 구속됐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B준위는 구속 전까지도 A하사에게 “너랑 나랑만 알고 평생 발설하지 않고 간다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 자료를 증거자료로 제출하면 나는 진짜 끝이다.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등 27차례 협박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군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코로나19에 확진됐던 남자 하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던 중 A하사가 확진자 격리 숙소에 간 사실을 들어 A하사를 주거침입과 근무 기피 목적 상해 혐의로 입건했다.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40여 분에 걸쳐 이어진 가해자의 강요에 따른 A하사가 도리어 피의자 신분이 된 셈이다. 

또 지난 6월 20일 A하사는 피해 사실을 모욕하고, 피해 신고 사실을 인지한 뒤 이를 B준위에게 알려 2차 피해를 유발한 C원사를 공군 수사단에 신고했다. 그러나 2차 가해는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서 분리 조치 대상이 아니라는 군의 판단에 따라 A하사는 현재까지 청원휴가를 쓰며 스스로 분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권센터는 “공군이 불과 1년 전 성추행 피해로 인한 사망사건을 겪고 특검 수사까지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라며 “공군15비행단은 이예람 중사가 전출된 후 2차 피해를 겪은 곳이다. 부서원들 다수가 관련 혐의로 입건돼 수사를 받거나 기소됐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같은 부대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피해자 보호와 지원이 엉망으로 이루어져 피해자가 갈 곳 없이 유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공군은 이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 법과 규정에 따라서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라며 “수사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민간 자문위원으로 구성된 수사인권위원회에도 자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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