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군대 내 성폭력·괴롭힘②] 8년 만의 군인권보호관 출범
[끝나지 않는 군대 내 성폭력·괴롭힘②] 8년 만의 군인권보호관 출범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8.1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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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건 이후 군 내 인권 보호 기구 필요성 대두
여야 합의로 개정안 마련됐으나 국방부 반대로 좌초

이 중사 사망 후 논의 재차 가속...8년 만의 출범
불시방문권 없는 채로 출범해 유명무실 우려도

[한국뉴스투데이] 지난해 5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상관의 성추행 및 부대 차원에서의 2차 가해에 시달리던 이예람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정황들까지 알려지면서 군 검·경 조직의 폐쇄성과 그로 인한 사건 은폐 가능성이 재차 확인됐다. 군 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군 조직이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사건을 은폐·무마하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일은 지난 2013년과 2017년에도 있었다. 이예람 중사의 사망 이후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고 군인권보호관이 출범하는 등 표면적이나마 재발 방지 조치가 이뤄졌음에도 반복되고 있는 군 내 성폭력·괴롭힘과 이를 방조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달 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군인권보호관 출범식에서 박찬운 초대 군인권보호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군인권보호관 출범식에서 박찬운 초대 군인권보호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일병 사건’ 8년 만에 군인권보호관 출범

지난달 1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 군인권보호관이 출범했다. 이는 지난 2014년 4월 육군 전방사단에서 선임병들의 구타 및 가혹행위 끝에 병사가 사망한 이른바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군 인권 전담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 약 8년만의 일이다. 

인권위는 군인권보호관 출범에 발맞춰 군인권보호국을 신설하고, 군인권보호총괄과·군인권조사과·군인권협력지원과 등 실무조직도 설치했다. 인권위는 약 25명의 전담 인력이 군 인권 보호 및 증진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인권보호관 및 군인권보호국은 앞으로 ▲군인 사망사건 수사 입회 ▲군 사망·성폭력 신속 대응 ▲중대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직권조사·실태조사 강화 ▲군부대 방문 조사 및 상시 상담 체계 구축 ▲군 인권교육 전문성 강화 ▲유가족 지원 강화 등 군 인권에 관한 종합적인 권리구제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초대 군인권보호관은 변호사 출신으로 인권위 상임위원을 역임해온 박찬운 위원이 맡았다. 박 보호관은 “군인권보호관이 만들어진 것은 오랜 기간 군부대 내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절절한 호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군인권보호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출범식에는 故 윤승주 일병, 故 이예람 중사, 故 홍정기 일병, 故 황 하사 등의 유가족들이 자리했다.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씨는 “제 아들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는 게 너무도 슬프고 원통하고 분한 일이지만, 유족들이 군 인권보호관 설치를 힘줘 이야기했던 건 우리 같은 이들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군에서 억울한 우리 아이들의 죽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반성 없는 국방부 반대로 무산돼온 출범

윤 일병의 사건 이후 6개월 뒤인 2014년 10월, 19대 국회는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결과 2015년 7월 인권위 내에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하는 데에 여야가 뜻을 모으며 국가인권위회법의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이 마련됐다. 지난 2005년 훈련소 인분 사건 및 연천 총기 난사 사건 등으로 이른바 ‘군 옴부즈맨’이 도입돼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음에도 긴 시간 진전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한 발 나아간 셈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군에 이미 권리구제 제도가 존재하며 국방부의 지휘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취지로 강경하게 반대했다. 그러면서 국회에 ▲‘군 인권법’을 ‘군인의 지휘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으로 ▲‘군인권보호관’을 ‘군기본권보호관’으로 ▲군인권보호관을 ‘둔다’가 아닌 ‘둘 수 있다’로 바꿔 명시할 것 등을 요구했다. 

국방부는 개정안의 명칭들이 ‘군대가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적 집단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식의 반감만을 드러내면서, 군 내 권리 구제 제도가 존재하는데도 어째서 폭력과 은폐가 끊임없이 반복되는지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았다. 이에 국방부가 윤 일병 사건 등을 겪고도 개선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달 1일 군인권보호관 출범식에서 고 윤 일병 어머니 안미자 씨가 기념사를 듣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1일 군인권보호관 출범식에 참석한 故 윤 일병 어머니 안미자 씨가 기념사를 듣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뉴시스)

결국 19대 국회는 국방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2015년 12월 ‘군인의 지휘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안에도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별도 하위 법률에 명시하도록 해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항으로 전락했다.

2017년 8월 인권위가 재차 실무추진단을 구성하고 문재인 정부 역시 100대 국정과제에 군인권보호관 신설 뜻을 밝히기도 했으나, 논의는 비슷한 갈등 속에서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그러다 지난 2021년 5월 이예람 중사가 성폭력 피해 끝에 사망하면서 군인권보호관이 의무 도입돼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재차 거세졌다. 이에 지난 2021년 12월 인권위법 개정안이 통과돼 이날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숱한 군인들의 죽음 끝에 만들어진 제도지만 한계를 안은 출범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불시에 부대를 방문할 수 있는 권한이 제외되는 등 권한이 입법 초반 기획에 비해 축소된 채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군인권보호관은 부대에 방문하기 위해서 3일 전 부대장에게 통보하거나 긴급할 경우에도 국방부 장관에 12시간 전까지 통보해야 한다.

또 군인권보호관을 별도로 뽑지 않고 기존 인권위 상임위원 3명 중 대통령이 정한 1명이 군인권보호관을 겸직하는 방식이 채택돼, 인력 부담 문제도 남아있다. 박 보호관은 “겸무 체제라 인권위로선 부담이 크다. 입법 과정에서 1년 정도 업무를 해본 다음 군인권보호관을 전담하는 상임위원이 필요한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임기가 반년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하고 퇴임하기는 어렵다. 다만 군인권보호관의 업무 체계를 잘 만들어 후임자에게 넘겨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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