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군대 내 성폭력·괴롭힘③] 군사법원법 개정에 폐쇄성 해소 기대
[끝나지 않는 군대 내 성폭력·괴롭힘③] 군사법원법 개정에 폐쇄성 해소 기대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8.13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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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군사법원 57년 만에 폐지...3대 범죄는 민간에서 모두 담당
초동수사·2차가해 등 군 몫으로 남아 폐쇄성 여전하다는 우려도

[한국뉴스투데이] 지난해 5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상관의 성추행 및 부대 차원에서의 2차 가해에 시달리던 이예람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정황들까지 알려지면서 군 검·경 조직의 폐쇄성과 그로 인한 사건 은폐 가능성이 재차 확인됐다. 군 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군 조직이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사건을 은폐·무마하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일은 지난 2013년과 2017년에도 있었다. 이예람 중사의 사망 이후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고 군인권보호관이 출범하는 등 표면적이나마 재발 방지 조치가 이뤄졌음에도 반복되고 있는 군 내 성폭력·괴롭힘과 이를 방조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달 1일 군사법원법 개정안의 시행으로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되고 3대 범죄는 민간 법원에 넘겨졌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1일 군사법원법 개정안의 시행으로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되고 3대 범죄는 민간 법원에 넘겨졌다. (사진/뉴시스)

군사법원법, 57년만의 대대적 개정

지난달 1일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군사재판의 항소심을 맡아온 고등군사법원이 57년만에 폐지됐다. 이에 지난달부터 모든 군사재판의 항소심은 민간법원인 서울고등법원으로 이관됐다. 뿐만 아니라 ▲성폭력 범죄 ▲구타·가혹행위 등에 따른 군인 사망사건 관련 범죄 ▲군인이 입대 전 저지른 범죄인 경우 1심부터 민간법원이 관할하며 수사와 기소도 민간 검·경이 담당한다. 

이에 국방부는 “과거 군 수사 및 재판에 의혹이 제기되었던 사건들을 민간으로 이관하게 됨으로써 피해자와 국민의 불신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또한 군단급 이상 부대마다 설치돼 1심을 담당해온 보통군사법원 역시 국방부 장관 직속 5개 지역군사법원으로 통합됐다. 이외에도 관할관 확인제도가 폐지되고, 심판관 없이 군판사 3인으로 재판부를 구성하도록 하는 등 군 검찰 조직은 대대적인 변화를 맞았다. 

이러한 군사법개혁안은 지난 2014년 故 윤승주 일병 사건을 계기로 제기됐다. 윤 일병은 한 달여간 이어진 고참들의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 끝에 사망했다. 그런데 당시 가해자들은 목격자들을 위협해 사건을 은폐하고자 했고, 군 당국 역시 온몸의 멍자국 등을 확인했음에도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사망했다며 사인을 ‘기도 폐쇄에 의한 뇌손상 사망’으로 기록했다. 이에 가해자들은 추후 군인권센터에 의해 가혹행위 사실이 폭로되기 전까지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받았다. 

이후로도 군사경찰과 군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가해 내용을 축소하고, 군사법원도 이에 따라 가해자를 솜방망이 처벌하는 패턴은 여러 차례 반복됐다. 가령 지난 2018년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최현진 일병이 가해 상관의 질책과 조롱을 견디다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렀던 때에도 군검찰은 “최 일병이 스트레스와 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해당 상관의 모욕 혐의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했다.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군사법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27명 중 찬성 135명, 반대 63명, 기권 29명으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군사법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27명 중 찬성 135명, 반대 63명, 기권 29명으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개정안 한계 우려도

이처럼 군인 연루 범죄를 폐쇄적인 군 조직 내부에서 다루는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된 끝에 군사법원법이 개정됐으나, 폐쇄성은 사실상 여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초동단계의 사실조사는 여전히 민간 경찰이 아닌 군이 맡는데, 군이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면 민간 경찰에 사건을 넘기지 않아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군이 민간의 자료 제공 요청에 의무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조항이 누락되면서, 검찰이 초기 조사 단계에서 사건 검토를 위해 자료를 요청해도 군이 응하지 않으면 사실상 개입하기 어렵다. 군은 “검사나 경찰관이 필요하면 검시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사항을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할 여건이 마련돼있다. 다만 사건이 민간 경찰 관할로 확정되기 전에 사건 기록을 민간 검경에 공유하는 절차에 대해선 관계기관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 2차 가해의 경우 여전히 민간 경찰이 아닌 군 경찰이 수사하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지난달 11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와 경찰은 최근 3대 범죄의 민간 이관에 관해 수사절차 협의를 마쳤는데, 협의 끝에 마련한 가이드라인은 군에서 발생한 성범죄 관련 2차 가해 사건을 경찰이 수사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경찰이 군대 내 성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 정황을 발견해도 경찰은 이에 직접 개입할 수 없고 군으로 인계해야 한다. 군인이 저지른 성매매 사건 역시 경찰이 수사할 수 없는데, 2차 가해와 성매매 모두 군형법상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2차 가해의 경우 성범죄와 긴밀하게 연계돼 피해자 보호에 핵심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민간 경찰이 수사 주체에서 제외돼, 개정 취지에 충돌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편, 국방부와 경찰청은 군사법원법 개정안 시행 이후 6개월간 상시 협의체를 운영할 방침이다. 대대적인 개정이 있었던 만큼 안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상호 협력해 해소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2차 가해 이관 제외와 같이 피해자 보호 취지에 역행한다고 지적돼온 항목들이 추후 개정될지에 대해서도 주목되고 있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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