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2.08.19 11: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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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한낮이 버겁다. 
억수처럼 비가 쏟아지는가 하면, 습기 가득한 공기는 맥을 못 추게 만든다.

휴가라도 떠날 수 있다면 이 더위가 그리 덥게 만은 느껴지지 않을텐데, 여의치 않은 경제적 상황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기분까지 제한한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고 하더니 요즘이 정말 그런 것 같다. 뉴스에선 연일 자꾸 오르는 물가 얘기만 한다. 코로나 때문에 제약을 받았던 활동이 좀 자유로워졌나 싶더니 경제가 발목을 잡는다. 여름의 더위만큼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예전엔 여름을 참 좋아했었다. 
땀이 나고, 높은 기온 때문에 지치기는 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 여름 말고 또 어디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나무들을 봐도 그렇고, 속 시원하게 거침없이 쏟아지는 장맛비도 좋았다.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마저도 반가웠다. 그래! 여름아! 맘껏 강인함을 발산해 봐라. 모두 받아 줄 테니…….  

그런데, 이번 여름은 참 싫다. 
습기 가득한 공기가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외국여행을 가는 것도 여의치 않다보니 설레는 마음도 덜하다. 뉴스에선 연일 즐거운 소식보단 우울한 소식만 가득하니 덩달아 기분이 나지 않는다. 

계절 탓인지, 나이 탓인지 요즘 사는 게 참 재미가 없다. 
짜증나는 더위 때문인지 즐거운 일이라곤 없고, 불평불만만 가득하다. 날씨는 왜 더운지, 왜 비는 자꾸만 오는 건지, 왜 기다리는 버스는 늦게 오는 건지, 왜 맛 집이라고 찾아간 곳은 맛이 없는지……. 
한 친구는 50이 넘으면 그리 즐거운 일은 없고, 불평불만만 많아진다고 하던데 원래 그런 걸까?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고쳐먹게 된 계기가 있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유명한 요나스 요나손의 또 다른 책,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인데, 그 책 속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주인공 놈베코는 자본주의도 싫다, 공산주의도 싫다, 육식도 싫고, 육식을 하지 않는 이도 싫다며 모든 것에 화가 나 있는 한 여성을 두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공동변소에서 분뇨 통을 두어 개 비워 보면 시야가 좀 더 넓어질 텐데’라고……. 
물론, 소설에서 놈베코는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고 말하는 철부지 여성을 두고 한 말이지만, 어쩐지 그 말은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복에 겨워 불평불만만 가득한 나에게…….

그러고 보니 전에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사업이 망한 어떤 한 사람이 점심 값을 아끼기 위해 4,5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었는데, 그 사람은 도시락을 먹으면서 비참함을 느꼈던 것이 아니라 ‘굶지 않고, 이 도시락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래. 나에겐 감사의 마음이 부족했다. 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있기에 시원함이 반가운 거고,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게 감사한 거였다. 이렇게 몸 건강히 지내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감사한 것이 아니었던가? 굳이 아프리카에서 분뇨 통을 치우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불평불만은 아무리 늘어놓는다고 해서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상황이 나아진다고 하면 기를 쓰고라도 불평불만을 하겠지만, 그 자체는 나의 마음만 갉아먹을 뿐이다. 그 대신 내가 가진, 나의 상황 모두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그래야 스스로를 괴롭히지도 않고, 예전처럼 이 여름의 막바지를 즐길 수 있겠지.    

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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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자 2022-09-02 13:41:53
우리는 인간이기에 불평 불만을 하는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어떤 땐 감사하는 마음이 눈꼽만큼도 들지 않은데 감사하는 마음 보다는 나 혼자라도 실컷 불평을 하든지 욕을 하든지 하고 난 다음에 자신을 뒤돌아 보는것도 좋을 듯 합니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막 발산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서~ ^^뭔가 앙금이 남으면 병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