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대상·범위 등 기업 요구 그대로 반영돼 논란
기재부 “월권 의도 아냐”, 노동부 “의견으로 이해”
[한국뉴스투데이] 기획재정부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에 관련해 경영계 요구를 반영한 연구용역 결과 및 개정 방안을 고용노동부에 전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획재정부가 경영계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 고용노동부를 압박하는 등 월권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기재부, 노동부에 중대재해법 개정 방안 전달
25일 한겨레는 기획재정부가 최근 중대재해법에 관련해 독자적으로 연구 용역을 진행한 뒤, 시행령 개정 방안을 마련해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자료에는 ▲안전보건최고책임자가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해 최종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면 경영책임자로 인정하고 ▲사업주가 안전·보건에 관한 인증을 받으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는 등 처벌 대상과 범위를 완화해달라는 경영계의 요구가 대부분 그대로 반영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노동계가 ▲안전보건최고책임자라는 이름의 이른바 ‘바지사장’을 앉히고 실질적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면하려는 의도로 법 취지를 무력화하며 ▲각종 안전·보건 인증이 존재함에도 산재 사망 예방에는 실효성을 갖지 못했다며 반대해, 중대재해법 개정에 있어 첨예한 쟁점이 돼온 대목이다.
또한 현재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노동부는 앞서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충실히’와 같은 표현을 손보는 수준에서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고, 특히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대해서는 법률상 위임 규정이 없어 시행령에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한겨레는 중대재해법 소관부처가 고용노동부인 만큼 기획재정부의 행보가 월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지적했다. 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 더불어민주당이 6차례에 걸쳐 기재부에 연구용역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기재부는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는 물론 연구용역 계약 관련 서류 및 제목까지도 비공개라고 답변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기재부 월권·압박 논란...양대노총 비판
이날 우 의원은 한겨레를 통해 “중대재해법 소관 부처도 아닌 기재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법률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 이는 ‘검수완박’ 무력화에 이은 제2의 시행령 쿠데타”라며 “대통령실의 지시인지 재계의 소원수리 입법인지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노총 역시 이날 성명서를 내고 “기재부가 노동부에 전달했다는 개정방안은 중대재해법에서 시행령에 위임한 사안도 아니다. 시행령 개악으로 법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방안”이라며 “노동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오로지 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기재부를 강력 규탄한다. 기재부는 연구용역보고서를 공개하고 시행령 개악 추진을 즉시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한국노총도 성명을 통해 “내용도 문제일 뿐만 아니라 기재부의 행태도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월권”이라며 “기재부는 연구용역 보고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데, 내용이 편파적이지 않고 당당하다면 공개 못 할 이유가 무엇인가. 기재부가 나랏돈을 움켜쥐고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국민들이 일터에서 죽고 다치고 병드는 것은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재부 “참고토록 한 것...월권 의도 아냐”
이처럼 논란이 일자 기재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중대재해법은 범부처 정책조정 시안”이라고 지적하며 “기재부는 중대재해법을 포함해 노사·관계부처간 이견이 첨예한 정책 사안에 대한 협의와 조정 업무를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중대재해법 관련 연구용역도 올해 초 법 시행 전후로 산업 현장의 혼선과 경제계 우려 등을 반영하고 범부처 정책조율 필요성 등을 감안해 수행한 것”이라며 “연구자가 제시한 시행령 개정 관련 제안을 공유해 정책 결정에 참고토록 한 것으로 월권의 의도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편, 이러한 논란에 관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고용부가 주무 부처지만) 각 부처가 입장을 낼 수는 있다고 본다. 기재부의 의견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행자가 ‘고용노동부가 시행령안을 만든 후 입법예고로 관계 부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선후 관계가 바뀐 것 같다’고 묻자 이 장관은 “그게 (기재부가) 좀 성급했다 싶은 생각은 있다”며 “시행령 개정은 노동부가 중심을 잡고 책임지고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