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다운’... 죽음의 메타포(Metaphor)
‘썬다운’... 죽음의 메타포(Metaphor)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2.09.02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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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카풀코 해변의 비가

나의 죽음은 어떻게 올까? 죽음을 질문하며 관통하는 영화 <썬다운: 원제 Sundown>. 겉옷을 벗은 몸으로 만나는 아름다운 멕시코 아카풀코 해변, 밀물과 썰물로 지워지는 해변의 무수한 이름 모를 발자국의 흔적처럼 타인의 '죽음'을 변주하는 미셸 프랑코 감독에 깊은 사색의 무늬가 한 폭의 풍경화처럼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주저앉아 목놓아 울고 싶은 일몰의 아름다움이여! 일몰이 사라지면 밤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듯이, 죽음도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시작이라고 믿고 싶다.

'썬다운' 스틸컷, 팀 로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썬다운' 스틸컷, 팀 로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의 배경은 한여름이다. 런던에서 멕시코의 아카풀코로 휴가 온 가족. 주인공 (팀 로스)’이 여동생 앨리스(샤를로트 갱스부르)’와 그녀에 아들, 딸과 함께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중에 모친의 부고를 듣는다. 그러나 그는 모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런던으로 향하던 공항에서 그는 발길을 돌려 혼자 아카풀코 해변에 남는다.

눈 뜨면 하는 일이라곤 일렁이는 해변의 파도를 물끄러미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다거나 새로 사귄 애인과 손을 잡고 휴양지를 배회하거나 사랑을 나누고 시시덕거리는 것이 그가 하는 일에 전부다. 그야말로 먹고 노는 일에만 진심인 팔자 좋은 휴가객처럼 보인다.

그는 왜 모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윙윙거리는데 아뿔싸, 또 다른 죽음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 쉬고 있는 바로 옆 비치 바라 솔에서 사내가 죽고, 그리고 상속 문제로 찾아온 여동생이 도로에서 개죽음당한다. 그뿐인가. 그가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란 것이 밝혀진다이쯤 되면 관객은 그가 왜 모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면서 급격히 의 감정으로 이입된다.

'썬다운' 스틸컷, 샤를로트 갱스부르, 팀 로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썬다운' 스틸컷, 샤를로트 갱스부르, 팀 로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이 모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일탈적인 행동을 한다든지,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의 찡그린 얼굴을 반복적으로 보게 되면, 순간적으로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감독의 의도가 아니란 것을 금방 눈치채게 된다. 그만큼 영화적 이미지의 강렬함에 무장해제 된다. 푸른 바다 위로 사정없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쨍한 태양은 모든 치부를 도말 할 것 같은 위용으로 하늘 아래 모든 생물을 관장하듯 강한 힘()이다.

'썬다운' 스틸컷, 팀 로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썬다운' 스틸컷, 팀 로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시종일관 '죽음'을 관망하고 사색한다

감독은 인간의 죽음뿐만 아니라 물고기와 돼지의 죽음을 비유하며 생물체의 죽음을 포괄적으로 직시한다. 갑판 위에 물고기의 죽음과 ''의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돼지의 죽음까지, 영화는 시종일관 죽음을 관통한다. 죽음으로 대물림되는 부의 상속과 죽기 때문에 상속을 포기하는 죽음에 숙명까지, 영화는 첫 장면과 끝 장면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죽음을 점진적으로 사색하고 은유하고 질문한다.

영화 제목 '썬다운(일몰)'처럼, 죽음은 결국 소멸이다. 눈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해가 질 때 바다 물결의 잔잔한 진동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붉은 태양이 서서히 바닷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몸도 바닷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겉잡지 못할 눅눅한 비애를 한순간이라도 느껴 보았는가?

감독은 죽음을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죽음을 관망하고 죽음을 사색한다. 죽음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가 무척 지적이다. 형이상학적인 추상적인 주제를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한순간으로 포착해 가는 감독의 영상 언어 감각은 참으로 놀랍고 경이롭다. 하여, 영화를 보고 나면 강렬하게 부서지는 햇살만큼이나 많은 생각들이 부서진다. 슬그머니 다가온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죽음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갈피 없이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죽음이 벗어놓고 간 의 푸른 셔츠가 마치 살아있는 푸른 잎새처럼 나풀나풀 속삭인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썬다운>을 연출한 미셸 프랑코 감독 감독은 1979년생이다. 멕시코 시티 태생이다. 한창나이에 죽음을 염두에 두고 진지하게 작품을 만든 감독의 예리한 통찰력과 예술적 심미안이 놀랍고 놀랍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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