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 주는 행복 
그늘이 주는 행복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2.09.16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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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기 싫다’
‘집에서 그냥 뒹굴고 싶다’

찌는 듯 한 지난 무더위에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은 달리기를 해봤자 
오히려 지쳐서 본전도 못 찾을 거라는 생각에 하루, 이틀 건너뛰는 날이 많았다. 

더위가 가시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요즘. 
그 핑계는 사라졌으니 이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오랜만에 러닝화를 신고 한강공원으로 나갔다.  
하늘은 그 어느 날보다 화창하고 맑았다. 이런 날 달리지 않으면 화창한 날씨에 대한 보답이 아니리라. 

하지만, 가을날의 시원함도 잠시. 얼마 되지 않아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화창한 가을 햇볕은 여름의 그것만큼 지치게 했다. 
게다가 한동안 쉬었던 만큼 처음 시작할 때처럼 숨이 차고 힘들었다. 

‘여기서 그만 둘까?’ 
평소의 절반정도 뛰었을 때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무리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자기 합리화의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온몸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늘이다. 

한강공원은 대부분 그늘이 없는 곳이지만, 머리 위의 고가도로나 길옆에 있는 큰 나무들이 간간히 그늘을 만들어 준다. 내가 뛰는 안양천변도 그렇다. 
그날도 달리기에 지쳐갈 무렵 나를 응원하는 것처럼 때마침 그늘이 나타나 기운을 얻게 되었고, ‘여기서 그만 뛸까?’ 하는 마음은 작아지고, 계속 뛰어야겠다는 마음은 더 커졌다. 

시원한 그늘을 지나고 다시 햇볕에서 뛰다 지쳐갈 무렵에 또다시 그늘을 만나게 되고……. 
목표한 거리를 뛰는 동안 ‘그만 둘까?’, ‘계속 가자’라는 마음이 반복됐다. 
그날은 뛰는 내내 그랬다. 

결국, 오랜만에 시작한 달리기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지만 
간간이 찾아오는 그늘 덕분에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목표한 거리만큼 완주할 수 있었다.  
완주후의 감동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터.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에서 이는 뿌듯함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늘이 주는 행복이 이렇게 컸던가? 
화창한 날씨에 그늘이 주는 시원함, 그리고 완주까지 모든 게 완벽한 날이었다. 

우리 삶에도 간간이 찾아오는 그늘 덕분에 힘을 얻을 때가 있다.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고,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 좌절하고, 실망하고, 
삶의 의미조차 희미해져 지쳐갈 때 그때 찾아오는 그늘은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마주하는 그늘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되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된다.   

지금 앞만 보고 가고 있다면, 그래서 지치고 힘들다면……. 
잠시 옆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러면 반드시 나에게 필요한 그늘이 나타날 것이고, 
그 그늘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다만, 달리면서 저절로 만나는 그늘과는 달리 
인생에 찾아오는 그늘은 스스로가 원해야만 만날 수 있다. 

삽화/ 박상미
삽화/ 박상미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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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자 2022-10-11 08:58:17
인생에 찾아오는 그늘! 참 위안이 되는 말이네요. 오늘도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