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 ‘이태원 참사’ 현장 무분별 공유...재난 대응 윤리 부각
【이슈체크】 ‘이태원 참사’ 현장 무분별 공유...재난 대응 윤리 부각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11.02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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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언론서 모자이크 없이 현장 사진·영상 공유
정부·플랫폼 규제 나서...삭제 등 적극 조치 공지
집단 트라우마 우려 지속...심리 지원 대책 강화

[한국뉴스투데이]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사고 현장이 적나라하게 담긴 사진과 영상이 SNS와 언론을 통해 무분별하게 공유됐다. 공유된 게시물 중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2차 피해로 이어질 게시물도 있어 우려되고 있다. 특히 사고 장면이 여과없이 유포돼 집단적인 트라우마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정부의 심리 지원책 보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참사 현장 무분별 공유...재난 대응 윤리 지적

지난달 29일 밤 서울 이태원구 용산동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3년 만의 마스크 없는 핼러윈 주간을 맞은 이날 이태원에는 10만 명가량의 인파가 몰렸다. 이날 밤 10시 30분경 해밀톤호텔 옆 T자형 좁은 골목에 각 방향에서 밀려든 인파가 몰리면서 참사가 시작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는 156명, 부상자는 151명으로 사상자는 모두 307명에 달한다.

사고 이후 각종 SNS와 포털을 통해 당시 사고 현장이 무분별하게 공유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트위터·페이스북·틱톡 등 각 SNS의 일부 게시물에는 사상자들이 신체를 드러낸 채로 쓰러져 있는 모습, 심폐소생술이 실시되는 모습, 바닥에 일렬로 누인 사망자들의 모습 등 구체적인 사고 장면이 그대로 담겼다. 언론 역시 사고 현장을 모자이크 없이 보도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전달했다.

이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30일 성명서를 통해 사고 당시의 참혹한 장면을 여과 없이 공유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행위는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고, 다수 국민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 아울러 학회는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과도하게 반복해서 보는 행동도 자제하라고 권했다.

한국기자협회 역시 각 언론사에 재난보도준칙을 엄수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기자협회는 참사 이후 언론들이 앞다퉈 사건 현장을 찾아 소식을 전하는 가운데 자극적인 보도 피해자와 유가족에 2차 피해가 이뤄지고 있다며, 199개 지회에 각 기자들에게 재난보도준칙을 전파해달라고 당부했다.

재난보도준칙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마련된 것으로, ▲재난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해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킬 것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유의할 것 등을 목표로 세칙을 정하고 있다.

규제 나선 정부...지상파 3사 “현장 영상 사용 않겠다”

정부도 무분별한 유포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지난달 31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사상자들을 혐오하는 발언이나 허위 조작 정보, 자극적인 사고 장면을 공유하는 행동을 자제해달라고 강경하게 권고했다. 

이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이하 심의위) 역시 자극적인 현장을 여과 없이 노출한 사진·영상 11건을 긴급 심의해 삭제 또는 접속 차단 조치했다고 발표했다. 심의위는 자극적인 게시물 외에도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정보 등에 대해 중점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 카페가 지난달 30일 공지한 이태원 참사 관련 주의 요청 게시물. (사진/다음 카페)
다음 카페가 지난달 30일 공지한 이태원 참사 관련 주의 요청 게시물. (사진/다음 카페)

심의위는 네이버·카카오·유튜브·구글·페이스북·인스타그램·메타·트위터·틱톡 등 국내외 주요 플랫폼 사업자를 대상으로 자정 활동을 강화해달라고 요청했고, 지상파 방송 및 종합편성채널 등 각 방송사업자에도 재난 방송 시 심의 규정을 준수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KBS·MBC·SBS 등 지상파 3사는 모두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 규명 등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사고 현장 영상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방송사별 차이는 있었다. KBS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현장 영상을 사용하지 않되 상황을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경우 엄격하게 사용하겠다고 했고, MBC는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 현장음을 모두 지워 사용하고, 그 외 상황은 정지화면으로만 전하겠다고 밝혔다. 

SBS 역시 자극적인 영상은 원칙적으로 쓰지 않되, 사고 상황을 설명하는 경우에만 최대한 흐릿하게 절제해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YTN은 사상사가 노출되거나 심폐소생술을 하는 영상은 사용하지 않을 방침으로, 정지 화면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며 현장음 역시 가능한 사용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SNS서도 잇따라 자정 활동 강화

각 SNS 및 동영상 플랫폼 사업자 역시 이태원 참사 관련 악성 게시물 자정 활동을 속속 강화하고 나섰다. 카카오톡은 오픈채팅에서 모자이크·블러 처리 없이 현장 사진·영상을 공유해 이용자 신고를 받으면 서비스 이용을 제한하겠다고 밝혔고, 피해자 사진·영상을 공유하거나 비방·조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성된 방은 오픈채팅 검색 결과에 노출되지 않도록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 카페는 공지사항을 통해 피해자의 신원이 드러나는 사진·영상 업로드 및 확인되지 않은 사실 공유 등을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다음은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신고 센터를 운영해 신고가 접수된 게시글을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틱톡은 충격적이거나 불쾌하고 잔인한 콘텐츠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공지하면서, 위반 콘텐츠는 지속해서 모니터링하며 삭제 등 조치하겠다고 공지했다. 또 민감한 사망 사고 콘텐츠를 게시 및 공유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과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폭력적인 게시물에 관한 자체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며 이에 따라 조치하고 있다는 취지로 공지했다. 특히 구글은 전문 인력에 머신러닝을 접목해 정책을 위반하는 콘텐츠를 삭제하고 있다고 덧붙였고, 페이스북은 ‘재난 안전 확인’ 페이지를 개설해 사고 경위 및 사상자의 수치 현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또 트위터는 이태원 사고 현장이 담긴 민감한 게시물의 리트윗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며, 문제 트윗을 발견하면 신고하고, 민감한 이미지 콘텐츠에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을 경우 그렇게 설정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참사 현장 인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희생자 추모 공간에서 한 시민이 고인들을 애도하는 술을 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참사 현장 인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희생자 추모 공간에서 한 시민이 고인들을 애도하는 술을 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집단 트라우마 우려도

다만 이처럼 직·간접적으로 현장 상황을 목격한 이들이 적지 않은 만큼 집단적인 트라우마 우려도 계속되고 있다. 의학계는 유가족과 생존자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 구호에 나선 소방관·경찰·시민, 영상을 통해 사고를 접한 이들의 정신적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달 31일부터 극심한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며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센터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정부는 국가트라우마치료센터 내 ‘이태원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려 유가족, 부상자, 목격자 등 1000여 명에 대한 치료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산업안전보건공단 내 직업트라우마치료센터는 이태원 주변 상인을 위한 상담 지원을 지원하고 있고, 이외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일반 시민은 위기상담전화를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심한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소방관·경찰관 등 구조 인력에 대한 지원책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아 신속히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2014년 세월호 참사 민간 잠수부 등 당시 구조에 나섰던 인력 역시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했으나 정부 차원의 심리 지원은 한 차례도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인 바 있었다.

한편, 집단적인 트라우마 발생이 우려되는 현장에 즉시 파견 가능한 정신의료팀이 국가 차원에서 꾸려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가령 일본 정부는 ‘재난 정신의료지원팀(DPAT)’를 운영해, DPAT 소속 의료진은 평소 각 소속 병의원에서 진료를 하다가도 재난 발생 시 72시간 내 현장에 파견돼 상담 및 약물 처방 등 조치한다.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재난정신의료지원단(DPO)’를 운영하고 있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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