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경제】 레고랜드‧흥국생명 채권시장 위기 일파만파
【HOT경제】 레고랜드‧흥국생명 채권시장 위기 일파만파
  • 조수진 기자
  • 승인 2022.11.0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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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영구채 콜옵션 미행사 파장 
레고랜드 발 채권시장 위기에 더해져
최근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의 영구채 콜옵션 미행사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었다. 사진은 김진태 강원도지사. 김 지사는 지난달 28일 만기가 돌아오는 2050억원 규모의 채권에 대한 지급보증을 철회하고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을 결정해 레고랜드 사태를 불러왔다. (사진/뉴시스)
최근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의 영구채 콜옵션 미행사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었다. 사진은 김진태 강원도지사. 김 지사는 지난달 28일 만기가 돌아오는 2050억원 규모의 채권에 대한 지급보증을 철회하고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을 결정해 레고랜드 사태를 불러왔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최근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었다. 지방채의 신용에 문제가 생기자 정부가 50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가까스로 채권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흥국생명의 영구채 콜옵션 포기 사태로 채권시장은 다시 위기를 맞았다. 금융시장의 가장 기본인 신뢰가 흔들리는 연이은 사태들로 투자심리는 얼어붙고 기업의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커지는 금융위기 가능성이 우려된다.

흥국생명 영구채 콜옵션 미행사 사태 일파만파

지난 1일 흥국생명은 오는 11월 9일로 만기가 예정된 5억달러 규모의 외화 영구채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영구채, 즉 신종자본증권은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하이브리드 증권이다. 채권은 만기가 있는 반면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거나 수십년으로 길어 영구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신종자본증권은 금융사들이 자본 확충을 위해 발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계상으로도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돼 금융사들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지난 2017년 11월 9일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영구채 금리는 연 4.475%로 당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면서 흥국생명은 30년 만기에 5년 콜옵션 조건을 붙였다. 콜옵션(조기상환청구권)은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다. 즉, 30년 만기인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5년 경과 후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행사해 조기상환하거나 연장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영구채 콜옵션 미행사를 결정했다. 이에 흥국생명의 영구채 금리는 5년물 미 국고채에 2.472%의 가산금리가 붙어 6.72%로 치솟게 됐다. 물론,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것을 채무 미이행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투자업계에서는 최초 조기상환 시점을 실질적인 만기로 보고 있고 대부분의 금융사들도 조기상환을 관례처럼 여기고 있다. 이에 흥국생명의 이번 콜옵션 미행사는 국내외 채권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불러온 셈이 된다.

흥국생명으로썬 콜옵션 행사 직전까지 안간힘을 썼다. 조기상환을 위해 3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차환을 발행하고 후순위채 1000억원을 더해 자금을 마련하려 했다. 그러나 금리가 계속 오르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자본시장의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투자자를 구할 수 없었다. 이에 차선책으로 자기자본을 활용해 조기상환 자금을 마련하려 했지만 건전성 등 재무여건이 좋지 않아 이 역시 무산됐다. 이에 결국 신뢰도 하락을 감수하고 콜옵션 미행사를 선택하게 됐다.

흥국생명의 영구채 상환을 확신한 글로벌 투자자들은 공시 직전까지 투자를 이어갔으나 콜옵션 미행사로 흥국생명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했다. 이는 국내 다른 기업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한국 증권사에서 발행하는 채권 전반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앞서 2009년 우리은행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1일 흥국생명은 오는 11월 9일로 만기가 예정된 5억달러 규모의 외화 영구채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1일 흥국생명은 오는 11월 9일로 만기가 예정된 5억달러 규모의 외화 영구채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사진/뉴시스)

우리은행은 2004년 4억달러 규모의 10년물 후순위채(콜옵션 5년, 만기 2014년 3월13일)를 발행했다. 후순위채는 부도나 파산 시 다른 채권이나 예금자들의 부채가 모두 청산된 뒤 마지막으로 상환받을 수 있는 채권이다. 우리은행은 콜옵션 조건 외에도 콜옵션을 포기할 경우 후순위채 투자자에게 미국채 5년물 기준으로 406.5bp, 리보 기준으로 365.5bp를 더하는 스텝 업(Step Up)조건도 달았다.

이후 2009년 우리은행은 콜옵션 행사를 포기했다. 이유는 후순위채 발행 당시 우리은행의 조달금리는 리보에 230bp를 더한 연 5.75%였으나 콜옵션 행사 당시 10년물 후순위채 발행금리가 연 10%를 웃돌아 콜옵션 행사 후 재발행할 경우 조달금리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불가피한 콜옵션 미행사라는 시각이었고 조달금리면에서는 우리은행의 결정이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우리은행의 콜옵션 미행사를 두고 당장은 조달금리를 낮출 수 있지만 우리은행을 포함한 국내 은행들의 신뢰도 하락과 조달비용이 올라가는 대가를 치룰 것이라는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일부 외국계 증권사들은 국내은행권이 국제금융시장에서 한동안 후순위채를 발행하지 못할 것이라 경고했고 해외 자금조달의 여건이 악화될 것이라는 혹평이 어어졌다. 나아가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 은행의 채권가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이 쏟아졌다.

우리은행 선례에 따라 단순히 보면 한 기업의 콜옵션 미행사에 불과하지만 채권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흥국생명 외에도 보험사들의 외화 영구채 만기가 도래하고 있어 이런 위기감은 더 가중되는 분위기다. 한화생명이 2018년 4월 10억달러 규모로 발행한 영구채의의 콜행사는 오는 2023년 4월로 다가왔다. KFB생명은 2018년 5월 3억달러의 영구채를 발행해 2023년 5월 콜행사를 앞두고 있다. 

흥국생명의 이번 영구채 콜옵션 미행사로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보험사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들 중 한 곳이라도 콜옵션 미행사에 합류할 경우 채권시장에서 한국의 기업이 외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직후 한국투자증권이 외화채 발행 일정을 연기했고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추진 중인 캥거루본드(호주달러 표시 채권)발행을 위한 투자자 모집은 난항이 예상되는 등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 위기 촉발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직전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은 이미 위기 상태다. 레고랜드는 강원도 춘천에 있는 어린이 테마파크다. 전 세계 총 10의 레고랜드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 들어서며 기대를 키웠다. 강원도는 지난 2011년 레고랜드 운영사인 영국의 멀린엔터테인먼트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고 아시아에서는 제일 큰 레고랜드 유치 계약에 합의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레고랜드 사태의 진상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면서 김진태 방지법을 추진 중이다. 사진은 레고랜드 개장식 모습. (사진/뉴시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레고랜드 사태의 진상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면서 김진태 방지법을 추진 중이다. 사진은 레고랜드 개장식 모습. (사진/뉴시스)

일년 뒤 강원도는 레고랜드 사업을 위해 중도개발공사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했다. 중도개발공사는 레고랜드 건설을 진행하면서 자금 확보를 위해 2020년 아이원제일차라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2050억원의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ABCP는 일종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보고 자금을 투자하고 이후 나오는 이익(cashflow)으로 채무를 갚아 나가는 장기 대출 형식이다. ABCP 발행 주관사는 BNK 투자증권으로 해당 어음은 증권사 10곳과 자산운용사 1곳에서 판매됐다. 보증은 당연히 강원도가 섰다.

하지만 지난 9월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만기가 돌아온 2050억원 규모의 채권에 대한 지급보증을 철회하고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을 결정했다. 이에 레고랜드 ABCP 기한이 지나면서 아이원제일차는 최종 부도 처리됐다.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 다음으로 신용도가 높은 지방채의 부실에 채권시장은 마비됐고 금융시장 공포는 커졌다. 

여기에 강원 레고랜드를 건설한 건설사와 채권을 보유한 증권사, 건설사에 자금을 대준 저축은행 등도 자금 회수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최악의 경우 저축은행과 건설사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일부 지방 중소 건설사는 부도를 맞았고 부동산 경기까지 침체된 상황 속에서 건설사 부도는 가속화 될 위기에 놓였다.

지방채의 부실에 투자심리가 위축돼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도 어려워졌다. 신용등급 트리플A인 한국전력공사가 연 5.75%와 연 5.9%라는 금리로 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했으나 1200억원은 유찰됐다. 역시 트리플 A인 한국도로공사도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으나 전액 유찰됐다. 더블A인 과천도시공사는 연 6%대의 이례적인 고금리로 6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전액 유찰됐다. 투자자들의 신뢰가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태가 악화되자 김진태 지사는 내년 1월 29일까지 강원도 예산으로 돈을 갚겠다고 수습에 나섰다. 그런데도 시장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정부가 나서 긴급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정부는 시장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해 50조원+알파 규모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20조원,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이 투입된다.

정부까지 나서 사태를 진화하고 있으나 파장은 여전하다. 지방채 등 우량 채권에 돈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행정안전부는 지난 2일 모든 지자체에 지방채 신규발행 연기를 요청했다. 행안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13개 지자체는 총 26개 사업에 1조701억원을 보증하고 있다. 지자체의 타격도 현실화됐다. 광주시는 1268억원 규모의 지방채 증권 발행을 추진했지만 유찰됐고 인천시 산하 공공기관인 인천도시공사도 만기가 돌아오는 800억원어치 채권을 차환 발행했지만 전액 유찰됐다.

한편,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김진태발 경제위기 진상조사단을 꾸려 채권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레고랜드 사태의 진상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재발 방지하기 위한 김진태 방지법을 추진 중이다. 현재 김진태 지사의 사례와 같은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을 일정기간 제한하거나 막는 방안과 지방채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현재 행안부에서 금융위원회로 부여하는 방안, 지방채 발행 제안 방안 등의 검토를 거쳐 법 추진이 예상된다. 

조수진 기자 hbs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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