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CJ그룹 탄생 숨은 주역, 손복남 고문의 발자취
【피플】 CJ그룹 탄생 숨은 주역, 손복남 고문의 발자취
  • 조수진 기자
  • 승인 2022.11.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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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삼성 초대회장이 아낀 맏며느리
CJ그룹의 탄생에서 현재까지 숨은 주역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든든한 조력자로
범삼성가‧재벌 총수 등 재계 조문 행렬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모친 손복남 CJ그룹 경영 고문이 지난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CJ그룹)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모친 손복남 CJ그룹 경영 고문이 지난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CJ그룹)

[한국뉴스투데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모친 손복남 CJ그룹 고문이 지난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재현 회장은 손 고문에 대해 CJ그룹 탄생의 숨은 주역이자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였다고 추모했다. 손 고문은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초대회장의 맏며느리로 총애를 받아 이병철 회장과 불화가 깊은 남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을 대신해 CJ그룹(당시 제일제당)의 초석을 다졌다.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경영고문으로 CJ그룹이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으로 확장하는데 큰 역할을 한 손 고문의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손 고문은 1933년생으로 경기도지사를 지낸 고 손영기 전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사장의 장녀이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누나다. 1956년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초대 회장의 장남 고 이맹희 CJ명예회장과 결혼하면서 삼성가와 인연을 맺었다. 이병철 회장은 총명하고 매사 침착한 손 고문을 애초에 맏며느리감으로 점찍어뒀다. 장남인 이맹희 회장과 손 고문은 집안이 정해둔 결혼을 받아들였고 슬하에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 이재환 재산홀딩스 회장까지 3남매를 뒀다.

이병철 회장은 집안 대소사마다 손 고문과 상의할 정도로 맏며느리를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결혼 후 이맹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장남으로 승계를 위한 공부를 마치고 삼성문화재단 이사를 거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주력 계열사의 임원을 차례로 역임하는 등 삼성그룹 후계자의 길을 걷게 된다.

손 고문은 1956년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초대 회장의 장남 고 이맹희 CJ명예회장과 결혼하면서 삼성가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의 삼남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남편 이맹희 회장을 따라 삼성가와의 거리두기가 시작됐다. (사진/뉴시스)
손 고문은 1956년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초대 회장의 장남 고 이맹희 CJ명예회장과 결혼하면서 삼성가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의 삼남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남편 이맹희 회장을 따라 삼성가와의 거리두기가 시작됐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1966년에 터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맹희 회장은 삼성그룹과 등을 지고 손 고문의 앞날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사카린 밀수 사건은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일본 미쯔이 물산에서 상업차관을 도입해 울산에 요소비료공장을 건설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상업차관은 기업이 자신의 신용으로 외국 자본을 빌리는 것으로 정부가 보증하는 공공차관과는 다르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상업차관 뒤에는 박정희 정부가 있었다. 정부는 지불보증으로 삼성그룹을 지원했다. 차관 과정에서 돈으로 국내 유입이 어려워지자 삼성은 55톤의 사카린 원료물질 OTSA를 건설자재로 속여 밀수하고 이를 암시장에 팔아 몇배의 이익을 챙겼다.

정부가 기업을 조건부 지원한 점과 대기업이 밀수에 관여했다는 사실에 사회적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이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와 대구대학을 정부에 헌납하고 재계를 은퇴했다. 이맹희 회장은 밀수 사건에 관여했지만 이병철 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올라 본격적인 승계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청와대 투서 사건으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당시 청와대에 이병철 회장을 구속시켜달라는 투서가 접수됐고 이병철 회장은 이맹희 회장이 투서를 보낸 것으로 의심한 것. 시간이 지나 투서를 쓴 인물은 차남 이창희로 밝혀졌으나 이병철 회장의 신임을 잃은 이맹희 회장은 삼성그룹 후계 구조에서 밀려났다. 추후 이병철 회장은 회고록에서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 경영을 맡겼지만 6개월도 못돼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고 언급, 이맹희 회장의 경영 능력 자체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재현 회장은 손 고문에 대해 CJ그룹 탄생의 숨은 주역이자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였다고 추모했다. 사진은 CJ그룹 본사. (사진/뉴시스)
이재현 회장은 손 고문에 대해 CJ그룹 탄생의 숨은 주역이자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였다고 추모했다. 사진은 CJ그룹 본사. (사진/뉴시스)

1987년 삼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후계자로 오르자 이맹희 회장의 그룹 내 입지는 좁아졌다.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삼성전자와 제일제당, 삼성물산 등 그룹 주력 계열사 대부분의 지분을 이건희 회장이 가져가면서 삼성그룹에서 이맹희 회장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졌다.

다행히 손 고문을 아꼈던 이병철 회장은 타계하기 전 재산분배 과정에서 안국화재(현 삼성화재)를 손 고문에게 남겼다. 손 고문은 안국화재 최대주주로 동색 손경식 회장을 내세워 경영에 참여했다.

이후 1993년 삼성그룹이 제일제당을 계열분리하려는 움직임에 손 고문은 자신의 안국화재 지분과 이건희 회장의 제일제당 지분의 맞교환을 제안했고 이건희 회장이 이를 받아들여 제일제당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손 고문이 보유한 제일제당 지분은 14.5%다. 이후 1996년 제일제당그룹이 출범하면서 손 고문은 자신의 지분을 이재현 회장에게 세 차례에 걸쳐 모두 증여하는 방식으로 애초에 장남의 승계 구도를 명확히 했다.

2002년 제일제당그룹에서 영문로고 ‘Cheil Jedang’의 앞글자를 딴 CJ그룹으로 그룹명을 변경하고 이재현 회장이 취임한 뒤 CJ그룹은 재계 순위 13위의 글로벌 생활문화그룹으로 도약했다. 전면에는 식품 기업 CJ제일제당과 외식 기업 CJ푸드빌, 식자재 유통 기업 CJ프레시웨이, 물류 기업 CJ대한통운, 헬스뷰티 기업 CJ올리브영, IT 기업 CJ올리브네트웍스, 콘텐츠 기업 CJ E&M 등 85개 계열사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손 고문이 있었다.

손 고문은 1995년 CJ그룹이 미국 드림웍스에 지분을 투자할 당시 드림웍스 창업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집으로 초청해 직접 식사를 대접하는 등 글로벌 문화사업 진출에 일조했다. CJ제일제당의 글로벌 한식 브랜드 진출 과정에서 외국인이 부르기 좋고 쉽게 기억되는 이름이라며 비비고를 강력하게 추천한 것도 손 고문이다.

국내 최대 식품‧BIO 융복합 연구소 CJ블로썸파크의 입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후보지 중 현재의 광교를 지목하는 등 뛰어난 안목과 결단력으로 경영전반의 고문으로 역할을 했다. 특히, 이재현 회장이 비자금 조성과 탈세 문제로 구속돼 징역 4년을 선고받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삼성가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부탁해 제출하고 동생 손경식 회장과 경영 공백을 메웠다.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관장이 서울 중구 CJ인재원에 마련된 고 손복남 CJ 고문의 빈소에 도착해 조문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관장이 서울 중구 CJ인재원에 마련된 고 손복남 CJ 고문의 빈소에 도착해 조문했다. (사진.뉴시스)

손 고문이 세상을 떠난 날은 CJ그룹의 창립 6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손 고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필동의 CJ인재원에는 재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김윤 삼양그룹 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명예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이 손 고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특히 가장 먼저 손 고문의 빈소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관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가의 행보가 주목된다. 그간 CJ그룹과 삼성그룹은 승계 과정에서의 불화로 마찰을 빚어왔다. 이맹희 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 분할 소송을 낸 뒤 이재현 회장을 미행했다는 이유로 삼성 직원들을 고소하고 이병철 회장을 추모식을 따로 진행하는 등 선영 참배를 두고 두 그룹은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선대 회장들이 모두 타계하면서 점차 화해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여기에는 손 고문의 역할이 컸다. 손 고문은 형제간의 갈등 속에서도 삼성가의 딸이나 며느리들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는 등 가족간의 관계 유지와 화합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고문은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가장 먼저 빈소로 달려온 삼성가의 발길에서 앞으로의 두 그룹의 관계는 점차 우호적으로 변할 것이 예상된다. 

조수진 기자 hbs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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