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커스】 7년 만에 바뀌는 교육과정...노골적인 보수화
【위클리포커스】 7년 만에 바뀌는 교육과정...노골적인 보수화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11.12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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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표현 추가
성소수자·성평등은 삭제돼
기업 책임 대신 자유 강조

연구진 반대에도 강행한 교육부
여당서 연구진 압박한 의혹까지
7년 만의 교육과정 전면 개정을 앞두고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가하고 '성소수자'와 '성평등'은 삭제하는 등 보수화된 개정안을 내놨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7년 만의 교육과정 전면 개정에서 교육부가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추가하고 ‘성소수자’와 ‘성평등’은 삭제된 개정안을 발표했다. 또 ‘노동자’는 ‘근로자’로, ‘기업의 책임’은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으로 대체되는 등 개정안에는 전반적으로 보수 진영의 주장이 반영됐다. 이에 용어를 둘러싼 이념 논쟁이 불거지는 가운데 교육부가 연구진의 반대에도 이 같은 수정을 강행한 정황까지 알려지면서 개정안 수립 절차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표기

지난 9일 교육부는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과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앞서 정책연구진은 공청회와 국민참여소통채널을 통해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교육부에 수정·보완된 시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후 교육부는 쟁점이 남은 사안에 대해 교육과정개정협의체·교육과정심의회를 통해 논의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번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오는 2024년 초등학교 1~2학년을 시작으로 2027년도에는 모든 학년에 적용된다. 

특히 이번 개정안 중 역사 과목에는 기존에 사용하던 ‘민주주의’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가령 중학교 역사 과목 내 ‘사회 전반의 민주적 변화와 과제’라는 학습 목표는 ‘사회 전반에 걸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착 과정과 과제’로 바뀌었다.

교육부는 역사 교육 과정의 현대사 영역에서 자유의 가치를 반영한 민주주의 용어 서술 요구기 지속적으로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이날 ‘민주주의’ 표현이 맥락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기존대로 사용하기로 했다며, 두 용어가 대립되거나 둘 중의 한 쪽만 선택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자유민주주의’는 주로 보수진영에서 사용돼온 용어다. 그간 보수진영은 ‘민주주의’라고 쓸 경우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해온 바 있다. 반면 진보 진영은 ‘자유민주주의’가 독재 정권 당시 반공주의 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던 점을 들며 교과서 표기를 반대해왔다.

지난 9월 교육부가 개정 시안을 발표한 이후 시민 단체들은 개정 교육과정에 성평등 가치를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제공)
지난 9월 교육부가 개정 시안을 발표한 이후 시민 단체들은 개정 교육과정에 성평등 가치를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제공)

성소수자·성평등은 삭제

이외에도 이번 행정예고본에서는 ‘성소수자’ 표현이 삭제됐다. 고등학교 통합사회의 성취기준 해설 중에는 ‘사회적 소수자’의 사례로 ‘장애인, 이주 외국인, 성소수자 등’을 제시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대목은 ‘성별·연령·인종·국적·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 받는 사회 구성원’으로 수정됐다.

장홍재 교육부 학교교육지원관은 “성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사회적 소수자의 구체적 예시로 성소수자가 들어갔을 때 청소년들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성평등’도 삭제됐다. 도덕 과목 내 ‘성평등’이라는 표현은 ‘성에 대한 편견’으로, ‘성평등의 의미를’이라는 표현은 ‘성차별의 윤리적 문제’로 수정됐다. 보건 과목 내 ‘성·재생산 권리’는 ‘성·생식 건강과 권리’로 바뀌었다.

앞서 보수 진영은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제3의 성이나 성전환을 긍정하는 용어라며, ‘양성평등’ 등의 용어로 바꿔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9월 19일 교육부는 국민참여소통채널에 제안된 주요 국민 의견을 발표하면서 인권 관련 지도 시 동성애, 성전환, 낙태 등의 사례가 포함되지 않도록 조치해달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사회 과목에는 ‘노동자’ 대신 ‘근로자’ 표현이 사용되고, ‘기업의 이윤 추구 외에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의 중요성’ 대신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및 사회적 책임을 탐색’으로 바뀌는 등 행정예고본은 보수화된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 연구진들은 교육부가 연구진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수정한 행정예고본을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뉴시스)

연구진 반대에도 교육부 강행

교육부의 발표 이후, 역사 교육 과정 개발에 참여한 정책 연구진은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내용을 수정해 공개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날 ‘2022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 연구진 일동’은 성명을 통해 연구진이 제출한 원안을 존중하고, 연구진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수정한 행정예고본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또 이들은 “교육부는 오직 자유민주주의와 지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기하는 데 집착함으로써 민주주의와 관련된 다양한 보편적 가치를 담고자 한 연구진의 의도를 왜곡하는 동시에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다양성과 포용적 가치를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앞서 교육부는 관련 의결 기구에서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수정했다고 밝혔지만, 연구진 일동은 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교육과정에 반영하자는 의견은 나오지 않았고, 역사과교육과정심의회 위원 대부분도 반대 의견을 냈다고 반박했다.

교육부가 연구진들을 노골적으로 압박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10일 MBC는 지난달 10일 교육부 관계자가 연구진 회의에 나타나 자유 민주주의 용어를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정황이 담긴 녹취 파일을 공개했다. 해당 파일에서 교육부 관계자들은 안팎에서 정치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고 토로하며, 특히 비공개가 원칙인 연구진 명단을 공개하라는 여당 의원들의 압박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또 교육부가 법정기구인 교육과정심의회를 시안 공개 전날 단 한 차례만 열었고, 브리핑한 바와 달리 심의·의결 절차도 거치지 않는 등 의견 수렴 절차를 졸속으로 진행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교육과정심의회 이전에도 충분히 의견수렴을 진행했으며 회의 당일에도 대부분의 위원이 자유민주주의 표현 추가에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회의 당일 영등포역 탈선으로 불참자가 많아 회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을뿐더러 반대 의견 역시 다수 나왔다는 증언이 이어지면서, 교육부가 수정을 강행했다는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연구진들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아직 답변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이번 개정안의 행정예고는 오는 29일까지 20일간 이뤄지며, 의견이 있는 기관·단체나 개인은 우편·팩스·이메일을 통해 교육부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교육부는 행정예고 이후 교육과정심의회의 논의와 국가교육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올해 연말까지 최종안을 확정해 고시하게 된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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