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동물권’] ① 소리 없이 사라지는 동물들…동물 실험, 끔찍한 학대의 현실
[특별기획 ‘동물권’] ① 소리 없이 사라지는 동물들…동물 실험, 끔찍한 학대의 현실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2.12.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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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내 실험동물 488만 마리, 가장 고통 심한 E등급에 44.7%
고통으로 울부짖어도 약품 투입… “모든 동물 실험, 필수불가결이었나?”
정부, “동물실험 대체실험 확대하겠다”, 하지만 동물 실험 매년 증가실태
동물원에서 태어난 퓨마가 탈출해 추적 끝에 사살된 사건은 잊히지 않는 충격으로 남아있다. 화학품을 위해 동물 실험을 자행하고 캣맘과 원주민의 싸움은 폭력으로 번진다. 동물권을 위하는 일이 인권보다 더 중요하냐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는 혐오의 세상이다. 하지만 이젠 어떤 식으로든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 ‘동물권’. 인간과 같이 비인간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이 단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무거운 주제를 탐구한다. <편집자주>
(사진/뉴시스)
한국동물보호연합이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동물실험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사진/뉴시스)

캐나다 E등급에 1.8% 동물만 사용, 한국은 44.7%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실험 동물의 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우리 사회가 동물 학대를 대하는 인식이 재고되고 있는 만큼, 아이러니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21년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운영 및 동물실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 국내서 사용된 실험동물의 수는 총 488만 252마리다. 이는 2008년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제도가 도입되고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연간 최대치다. 지난 2020년 처음으로 실험동물의 수가 400만 마리를 넘어서며 최대를 기록한 바 있다. 수치는 불과 1년 만에 갱신됐다. 국내 동물실험 현황을 5년 전인 2017년과 비교하면 58.3%나 증가했다.

실험에 가장 많이 동원된 종은 설치류가 353만 7771마리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 어류(92만 3772마리), 조류(31만 6021마리), 기타 포유류(6만 9155마리), 토끼(2만 6676마리), 원숭이(4252마리), 양서류(2136마리), 파충류(469마리)가 차지했다. 또한 전체 실험동물 중에서는 마우스(실험용 생쥐)가 64.8%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 국내에서 동물실험에 동원된 동물들 절반에 이르는 동물이 고통이 심한 E등급 실험에 동원됐다. E등급 실험에 동원된 동물의 수는 총 218만 마리로, 전체의 44.7%에 이른다.

각 실험동물 기관에 설치된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동물이 겪는 고통을 기준으로 실험을 A등급~E등급까지 나눈다. E등급은 가장 고통이 극심한 실험으로 일반적으로 동물에게 독성 물질을 투여하거나 수술 절차가 포함된 실험 등이 해당한다.

이러한 비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로 알려졌다. 2019년 기준 미국의 경우 동물실험에 이용된 동물 중 70.6%를 경미한 고통을 겪는 B, C등급에 사용했고, 29.4%는 높은 고통을 겪는 D, E 등급으로 사용했다.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따르면 캐나다는 동물 실험에 이용된 동물 중 1.8%를 E등급 실험에 이용한다. 유럽 연합은 유럽연합 11% 정도다.

휴메인 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은 논평을 통해 "실험동물 수를 줄이고, 복지를 향상하며 결국에는 대체 하려는 정부의 책임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정부와 국회는 시대에 맞게 실험동물 대체를 위한 입법안 마련에 힘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한국동물보호연합과 비건세상을위한시민모임 회원들이 지난해 4월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세계 실험동물의 날'을 맞아 동물실험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폭등한 원숭이 2만여 사재기 하기도

얼마 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최근 미국 바이오 기업 이노티브의 인디애나주 실험실의 동물실험 실태를 공개했다. HSUS측은 이 실험실에 비밀조사관을 파견, 7개월간 70여 개 연구에 직접 참여하며 목격한 현장을 촬영했다. 조사관들은 HSUS가 신약 개발 실험 과정에서 직원들은 동물의 목구멍에 강제로 튜브 등을 삽입해 화학물질 등을 주입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또 조사관들은 동물들이 구토, 고열,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였음에도 약물을 투여를 멈추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조사관은 동물들이 철창 안에 갇혀 울음소리를 내거나 비틀거리는 모습 등을 촬영해 공개하기도 했다. HSUS 측은 “수의사는 개와 원숭이들이 고통으로 울부짖는데도 그들을 치료하지 않고 오히려 직원에게 '동물들에게 다시 약을 먹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지난 2020년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이탄희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용인정)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북대학교는 2019년까지 출처가 불분명한 실습 견을 사용했고, 실습 과정에서 발정유도 제를 통한 강제교배가 이뤄지기도 했으며, 실습 견 중 한 마리는 질병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가량 실습에 동원되다 결국 사육실에서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

심각한 신약 개발 경쟁으로 가격이 치솟는 실험용 동물을 사재기하기도 한다. 최근 중국의 한 신약 개발 기업은 한꺼번에 실험용 원숭이 2만여 마리를 사들였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이 업체는 실험용 동물 공급 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원숭이를 확보했다. 매체에 따르면 업체 간 경쟁으로 실험용 원숭이 값은 최근 8년간 23배나 폭등했다.

동물해방물결에 따르면 실험동물은 모두 유전적으로 같은 성질을 갖도록 조작되어 ‘생산’되는데 이는제대로 된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 조건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실험 동물로 거래되는 일부 동물은 선천적으로 특정 질병, 기형 및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다. 또한 실험실은 동물의 본능을 충족시킬 환경을 제공하지 않아 계류하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는다. 동물해방물결은 “미국 국립보건원은 동물 실험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난 모든 약물의 95%가 인간에게는 효과적이지 않거나 위험하다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에는 공업용 화학물질 관련 법률에 따른 실험이 2020년 2만9000여 건에서 2021년 6만5000여 건으로 119% 증가했다. (사진/픽사베이)

정부, “2030년까지 60%를 동물대체시험으로 생산”

최근 정부는 동물실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동물대체시험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험기관의 확장·신축 등으로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하다. 환경부는 지난해 9월 ‘2030 화학안전과 함께하는 동물복지 실현 비전’을 통해 2030년까지 선진국 수준의 대체시험법 기술력 확보하고, 2030년까지 화학물질 유해성 자료의 60%를 동물대체시험으로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공업용 화학물질 관련 법률에 따른 실험이 2020년 2만9000여 건에서 2021년 6만5000여 건으로 11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기초연구 분야에서도 동물실험은 2020년에 비해 50%가량 늘어났다. 이는 결국 기초 과학 연구를 진행할 때 동물 대신 사람에 대한 예측률이 높은 시험방법 또는 기술에 대한 정부의 예산 투자가 미흡했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2030년 비전 달성을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최근 제주대학교는 최근 예산 160억 원을 투입해 2024년까지 실험동물센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로써 실험 동물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근본적으로 불필요한 동물실험의 진행을 막기 위해서는 관련 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2021년 12월 국회서 발의된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남인순 의원 대표발의)은 △규제와 연구를 담당하는 관계 부처가 동물실험이 아닌 첨단 기술을 이용한 대체시험 개발과 활용 지원 촉진 △관계 부처가 함께 동물대체시험법 개발, 보급, 이용을 위한 종합 계획 설립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동물 학대를 줄이기 위한 법안도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실험동물과 관련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 동물실험기관에 실험동물 건강 및 복지 증진 업무 전담하는 전임 수의사 배치 등의 내용이 전부다.

동물자유연대는 '소리 없이 자행되는 수많은 죽음, 동물실험'이라는 이슈 리포트를 통해 "75%가 고통이 심한 실험에 이용되는 것은 동물보호법상 동물실험 대체(Replacement), 사용 동물 수 감소(Reduction), 실험방법 개선(Refinement)을 요구하는 3R 원칙에 역행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사진/픽사베이)
비윤리적인 동물실험이 알려지고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세계적으로 동물대체시험에 대한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동물대체 시험은 선택 아닌 필수

3R원칙은 대체(replacement) 감소(reduction) 개선(refinement)이다. 비동물 실험으로 최대한 대체하고, 동원되는 동물의 수를 줄이며, 불가피하다면 동물의 고통을 완화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윤리적인 동물실험이 알려지고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세계적으로 동물대체시험에 대한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서울대 연구그룹인 '인간동물네트워크'가 발간한 '동물복지 정책 및 제도에 대한 인식 조사' 보고서는 국내 인식률을 증명한다. 응답자 10명 중 9명가량이 우리나라의 동물복지 수준이 '현재보다 더 좋아져야 한다'고 답했다. 조사에서는 동물복지 향상을 위해 한 행동(복수응답)과 관련해 59.9%가 동물 학대 상품 구매를 거부했다.

동물실험이 새로 개발된 의약품과 화학물질 등을 인간에게 적용하기 전 안전성과 유해성을 검증하는 과정인 만큼, 동물실험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의약품 개발에서 동물실험은 아직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3R 원칙에 의해 국제적인 동물대체시험은 힘을 받고 있다.

동물대체시험은 심장·간·폐·피부 등 인공장기와 세포 등을 배양해 직접 동물을 이용하지 않는 ‘비동물실험’과 실험 없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거나 다른 화학물질과의 비교 등을 통해 유해성을 예측하는 ‘비실험법’으로 나눈다. EU는 2013년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의 유통·판매를 금지한 데 이어 2016년 화학물질 중 피부와 눈의 부식성·자극성, 2017년 피부과민성과 관련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동물대체시험자료 제출을 의무화했다. 미국은 2025년까지 동물실험 예산을 30% 축소하고 2035년까지 포유동물실험을 퇴출할 계획이다. 미국 장기칩 개발사 '에뮬레이트'의 로나 이워트 최고과학책임자(CSO)는 매체를 통해 “전자회로가 놓인 칩 위에 사람 장기의 세포를 배양하는 기술인 장기칩은 세계보건기구(WHO)가 1985년부터 강조한 윤리 원칙 '3R'을 준수하는 데 있어 혁신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물대체시험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경고한다. 국제적으로 동물실험을 줄이는 추세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동물실험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동물실험 관련 법 규정 마련과 비동물 실험시설 등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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