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 차이가 뭐길래  
【특별기획】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 차이가 뭐길래  
  • 박상미 기자
  • 승인 2022.12.14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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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은 출산, 육아 역할을 어머니의 몫으로 부여, 성차별의 단면 
저출산 용어 변경에 대한 법안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 계류 중
저출산이 아닌 저출생 용어의 사용은 출산, 육아에 대한 인식 변화의 중심

[한국뉴스투데이] 비혼, 딩크로 설명되는 저출산이 낳은 다양한 용어들.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는 십수년 전부터 적신호를 켰지만, 현실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근시안적 대응책뿐이다. 최근 ‘저출산’이라는 단어가 성차별적 용어로 취급되며 ‘저출생’으로 이름을 바꾸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실효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늘고는 있지만, 인구 감소가 가져오는 위험성은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국내 저출생 문제의 현실과 근본적 원인을 짚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과 국외의 모범 극복 사례를 둘러본다. <편집자주>

▲육아 지원 제도가 존재하고, 선거철이면 관련 제도의 확대 공약이 쏟아지지만 있는 제도조차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사진/뉴시스)
▲육아 지원 제도가 존재하고, 선거철이면 관련 제도의 확대 공약이 쏟아지지만 있는 제도조차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사진/뉴시스)

저출산과 저출생. 1음절 차이인 이 두 글자 사이에는 숫자로는 알 수 없는 큰 간극이 있다. 출산의 사전적 의미는 ‘아기를 낳음’, 출생은 ‘세상에 나옴’이라는 의미이다. 두 단어는 한 인간이 태어났다는 결과에서는 같지만, 단어가 주목하는 대상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저출산은 아이를 적게 낳는 것에 저출생은 출생인구의 감소에 무게를 둔다. 뉘앙스가 중요한 한국어의 특성상 두 단어는 같은 선상에 둘 수 없는 전혀 다른 단어다. 

대통령직속기관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명칭 변경을 검토 중이다. 지난 11월 25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회 의장 집무실에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 부위원장 겸 외교부 기후환경대사를 접견하고 저출생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국회의장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나 부위원장이 김 의원장에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명칭 변경과 인구문제에 대한 국회의 협조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저출산과 저출생의 거리

저출산의 근거 지표는 가임 여성 1인의 출산횟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이다. 이 용어는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여성계에서는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인구감소는 모두가 해결해야 할 사회구조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만의 문제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인식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성차별적 용어인 '저출산'을 아이의 탄생 자체에 보다 방점을 두는 ‘저출생’이라는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출산과 저출생의 용어 차이에 대한 차이는 국회도 인지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출산’ 용어를 ‘저출생’으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현행법이 사용하고 있는 ‘저출산’은 가임 여성 또는 산모 중심의 용어로 ‘여성이 아이를 적게 낳음’이라는 뜻이며 인구문제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며 “신생아가 줄어드는 현상은 ‘일정 기간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적은 것’이므로, 아이 중심의 ‘저출생’이라는 용어가 보다 적합하다”고 법안의 취지를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김진표 의장은 나경원 부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젊은 분들은 ‘출산 장려 운동’식에 대해서는 감성적 저항감을 느낀다”며 “생명존중운동으로 승화해서 추진하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위원회 명칭 변경에 대해서도 일각에서 출산을 강요하는 것 같아 변경 요구가 있음을 전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명칭이 변경된다. 위원회의 근거법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기 때문이다. 위원회 측은 이를 위해 의원입법으로 개정안 발의를 계획하고 있다.
 
저출산의 용어 변경에 대한 요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대 국회에서 김해영 전 의원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2021년 5월과 2020년 7월에 ‘저출생’으로의 용어 변경을 위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법안의 계류 이유로는 보건복지위가 검토보고서를 통해 "용어 변경에 신중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것이 주목받고 있다. 2021년 6월 보건복지위는 강민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변경하는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저출산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체의 구조적·종합적인 문제라는 인식변화를 유도하는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개정취지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다만, ‘저출산’이라는 용어는 오랜 기간 동안 법령이나 정책 등에서 공식화되어 사용해 오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도 ‘출생아 수가 적다’는 의미로도 통용되어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정책의 흐름이 임신·출산을 개인의 선택으로써 존중하되 구조적인 사회적·경제적 제약을 완화하려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출산을 출생이라는 용어로 대체하게 되면 오히려 세대·지역·계층 등 사회 전반의 종합적 맥락이 축소되고 정책적 대상이 불분명해진다”며 “출생·양육 과정에서의 여성의 중요성이 오히려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므로 보다 심도 있는 사회적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1월 25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회 의장 집무실에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 부위원장 겸 외교부 기후환경대사를 접견하고 저출생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서혜정·김진수 부부가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다섯 쌍둥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지난 11월 25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회 의장 집무실에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 부위원장 겸 외교부 기후환경대사를 접견하고 저출생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서혜정·김진수 부부가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다섯 쌍둥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바로잡아야 할 말 그리고 우리

저출산을 대표로 성평등의 기준에 반하는 우리 사회 언어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는 성평등주간(9.1~9.7)을 기념해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시즌1과 시즌2를 발표한 바 있다. 2020년에 발표된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시즌3’에는 총 821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1,864건의 개선안을 제안했으며, 이를 토대로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앞으로 개선되어야 법령∙행정 용어 및 서식이 최종적으로 선정됐다.
 
저출산이 성차별적 용어이므로 시정해야한다는 요구도 여기에서 나왔다. 저출산 외에도 유모차(乳母車)는 유아차(乳兒車), 학부형(學父兄)은 학부모(學父母), 자매결연(姉妹結緣)은 상호결연(相互結緣), 자(子, 행정문서에서 자녀를 총칭)는 자녀(子女)로 개선이 필요한 용어로 제안되었다. 서울시는 조례에서 저출생을 저출산으로 바꾼 데 이어 성평등 언어사전을 통해 정리한 성차별적 시각이 담긴 단어들을 대체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공식 정책용어는 아니지만 주요 캠페인 등에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변경해 쓰고 있다. 법안과는 별개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조례에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경상남도, 대전 대덕구, 경북 봉화군, 전주시 등 전국 5개 시도 및 16개 시군구가 조례에서 저출산 대신 저출생을 사용하고 있다.
  
저출생 사용은 용어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저출산은 출산, 육아 등 한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위한 역할을 어머니의 몫으로 부여해 온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비단 저출산뿐만이 아니다. 제도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는 대상은 출생아의 부모 모두이지만, 육아 휴직, 육아기단축근로 등 한 아이의 성장과 관련된 지원책은 모두 ‘모성보호’라는 용어로 통합 관리된다. 고용보험 홈페이지에는 ‘모성보호’ 탭의 하단 메뉴로 육아휴직, 육아기단축근로, 출산급여 등이 배치되어 있다.
 
우리나라 육아 지원 제도와 관련해서는 제도 활용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육아 지원 제도가 존재하고, 선거철이면 관련 제도의 확대 공약이 쏟아지지만 있는 제도조차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제도의 활용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아이를 낳은 부모 중 육아휴직 사용 대상자는 모두 30만2490명, 이중 실제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우는 7만3105명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전체 대상자의 24% 만이 실제로 육아휴직을 썼다. 경제규모가 비슷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거의 '꼴찌'다. 국회입법조사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출생아 100명 당 여성 21.4명, 남성 1.3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한 반면 해당 통계를 발표하는 OECD 19개 국 평균은 여성 118.2명, 남성 43.4명으로 격차가 매우 컸다.

제도 쓰려다 상대적 박탈감

전체적인 낮은 육아휴직 비중만큼 사용 대상이 ‘엄마’에게 치중돼 있는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북유럽 국가와 같이 남성 할당제 도입 등을 적극 검토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같은 통계 기준 OECD 19개국의 육아휴직 여성사용 비중은 남성의 대략 3배지만 우리나라는 2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2020년 육아휴직 사용자 중 300명 이상 기업체 소속이 61.9%였고 50명~299명 기업체는 15.2%, 5~49명 기업체는 17.7% 수준에 불과했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막히면 돌봄 부담은 엄마에게 집중된다. 그 부담의 정도가 민간기업일수록, 그 규모가 작을수록 더 커지는 셈이다.
 
육아지원제도 중 상대적으로 활용도가 높은 육아휴직으로 육아공동부담도 상당수 부모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엄마의 경우, ‘경단녀’ 등의 용어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많이 개선됐다. 여성의 고용안정성, 사회 복귀 지원이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쏠리면서 고용주 입장에서도 육아휴직의 사용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된 덕분이다. 아빠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육아휴식을 남성이 사용하려 하는 경우에는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도 웬만한 규모의 회사가 아니면 입도 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우선 기업 규모 별로 놓여진 고용상황이 다르고 특히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에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꼽는다. 인원이 적은 기업일수록 대체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육아휴직 사용을 주저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낮은 육아휴직 비중만큼 사용 대상이 ‘엄마’에게 치중돼 있는 점도 문제다. (삽화/박상미 기자)
▲전체적인 낮은 육아휴직 비중만큼 사용 대상이 ‘엄마’에게 치중돼 있는 점도 문제다. (삽화/박상미 기자)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무원과 공기업 같은 경우 문제가 크지는 않다. 그런데 민간기업의 경우 육아휴직을 쓰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승진의 포기 등으로 읽힐 수 있어 사용을 주저하게 된다”며 “중소기업은 사람이 빠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일해야 하니 더 주저하게 된다. 이중 또 더 작은 기업은 눈치 등으로 이것조차 생각할 수 없는 환경이다. 제도의 문제만큼이나 문화적인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저출산이 아닌 저출생 용어의 사용은 출산, 육아에 대한 인식 변화의 중심에 있다. 저출생의 해결은 육아에 대한 부와 모의 공동 부담이 당연한 구조로 자리 잡을 때 모색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미 마련된 출산, 육아지원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제도의 확대보다 있는 제도의 적극 활용이 무엇보다 먼저다. 


박상미 기자 mii_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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