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 “가습기살균제 호흡기 노출, 폐까지 도달” 11년 만에 입증
【이슈체크】 “가습기살균제 호흡기 노출, 폐까지 도달” 11년 만에 입증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12.1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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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SK케미칼·이마트 2심 재판 앞두고
CMIT·MIT과 폐 질환 인과 관계 규명돼

가습기살균제 참사 11년 만의 입증
전면 재조사, 기업 엄정 처벌 촉구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임직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난해 1월, 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이 무죄 선고 법원 규탄 기자회견에서 울고 있다. (사진/뉴시스)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임직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난해 1월, 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이 무죄 선고 법원 규탄 기자회견에서 울고 있다. 유가족의 손에는 애경에서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통이 들려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국내 연구진이 가습기살균제 성분 물질 중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이하 CMIT)과 메틸이소치아졸리논(이하 MIT)에 호흡기가 노출되면 이 물질들이 폐까지 도달해 폐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앞서 CMIT·MIT 포함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하고도 무죄를 선고 받은 애경·SK케미칼·이마트의 2심 재판을 앞둔 가운데 피해자들은 가해 기업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어 주목된다.

CMIT·MIT, 폐 도달해 질환 유발한다

지난 8일 국립환경과학원은 가습기살균제 성분 물질 가운데 CMIT·MIT의 체내 분포 특성을 규명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환경부 산하 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4월부터 전종호 경북대학교 교수 및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진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방사성 추적자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화합물로,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할 때 방출하는 에너지를 측정하면 해당 화합물의 체내 이동 경로와 분포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연구진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표지된 CMIT와 MIT 성분을 합성해 실험용 쥐의 비강과 기도에 노출시켰다.

이후 정량전신자가방사선영상을 통해 체내 방사능 농도를 관찰하자 CMIT·MIT가 비강과 기관지를 거쳐 폐까지 이동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확인됐으며, 최대 1주일까지 노출 부위와 폐에 남아있는 것도 확인됐다. 기관지폐포 세척액 분석 결과 폐 손상과 관련 있는 염증성 사이토카인 등이 유의적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앞서 CMIT·MIT에 독성이 있다는 것은 확인된 바 있지만, CMIT·MIT이 호흡기에 노출될 경우 폐까지 도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폐 질환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 정량적으로 입증된 것은 최초의 일이다. 또한 기존 연구에서는 비강을 거치지 않고 CMIT·MIT를 기도에 직접 노출시키는 방식으로만 폐 조직 손상을 확인해, 비강 흡입에 따른 손상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갖는다.

Environmental International에 게재된 국내 연구진의 CMIT/MIT 가습기살균제의 체내 거동과 독성 평가 연구 결과. (사진/국립환경과학원)
Environmental International에 게재된 국내 연구진의 CMIT/MIT 가습기살균제의 체내 거동과 독성 평가 연구 결과. (사진/국립환경과학원)

1심 무죄 선고, 2심서 뒤집힐까

CMIT·MIT는 애경·SK케미칼·이마트 등에서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포함된 성분이다. 애경·SK케미칼·이마트가 제조·판매한 ‘가습기 메이트’는 옥시 제품 다음으로 많이 판매됐지만 그간 직접적인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아 법적 처벌을 피해 왔다. 

앞서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부터 실험을 진행한 결과 가습기살균제의 또 다른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에는 명백한 위해성이 있음이 밝혀진 바 있다. 이에 지난 2018년 법원은 해당 연구를 토대로 PHMG·PGH가 함유된 제품을 생산·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롯데마트·홈플러스 등에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은 애경·SK케미칼·이마트 등의 형사 책임을 묻는 1심 재판에서 “CMIT·MIT 성분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폐 질환·천식 발생·악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관련 임원 13명의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위해성을 입증한 이번 연구 결과가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된다. 애경·SK케미칼·이마트에 대한 수사는 2011년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알려진 뒤 7년이 지난 2018년에야 착수됐으나, 그 뒤로도 5년째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피해자 단체, 전면 재조사 및 엄정 처벌 촉구

지난 13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연합,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개혁연대민생행동 등 41개 단체들은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것은 단순한 사망이나 죽음이 아니었다. 죽임을 당한 것이다. 참사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오도하고, 적시에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질질 끌어 더 많은 생명과 건강을 빼앗는 등 미필적 고의에 의한 집단살인죄에 해당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1960년대에도 방사선 추적자 응용 기술이 연구되고 있었던 만큼,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실험에서 연구 윤리와 실험 원칙을 엄격히 준수했다면 최근 확인된 결론은 12년 전에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들은 당시 연구에서 비강 흡입 경로를 확인하지 않은 점, CMIT·MIT를 실제 제품 기준 10분의 1 농도로 과도하게 희석해 실험한 점도 문제라고 봤다. 

가습기살균제 등 사회적 참사재발방지와 안전사회건설 등을 위한 연대모임 등 시민단체가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특별법 전면 개정과 배·보상 실시 등 국가 책임 인정 및 관련 기업 전면 재조사 및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등 사회적 참사재발방지와 안전사회건설 등을 위한 연대모임 등 시민단체가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특별법 전면 개정과 배·보상 실시 등 국가 책임 인정 및 관련 기업 전면 재조사 및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이들은 지난 6월 22일 증거위조·교사죄, 위조증거 사용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집단살인죄 등으로 질병관리본부와 김앤장 등을 무더기로 고발했으며, 지난 8월 31일에도 조명래, 한정애, 한화진 등 전·현직 환경부 장관을 추가 고발한 바 있다. 

나아가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세월호·이태원 등 3개 참사의 국가 책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할 것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전면개정 및 배·보상을 적극 추진할 것 ▲서울고등법원은 SK 등을 엄벌할 것 ▲서울중앙지검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허위광고죄로 고발한 SK케미칼과 SK디스커버리 및 임직원을 즉각 기소할 것 ▲서울경찰청은 SK 등을 전면 재수사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날 박혜정 가습기살균제 환경노출확인 피해자연합 대표는 “폐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소엽중심 말단기관지 폐 섬유화만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식시키고, 전신질환 피해를 겪고 있거나 이미 사망한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해 형식적인 피해 인정으로 참사가 마무리될까 심히 우려스럽다”며 “정부와 가해기업은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사과와 함께 전신 질환 피해에 대해 경제적으로나마 통합 배·보상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지난 9월 제31차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에서 피해등급이 정해진 사람까지 총 4417명이며 사망자는 1789명으로 집계됐다. 애경·SK케미칼·이마트에 대한 2심 재판 공판은 이달 22일로 예정돼있다. 폐와 기관지에 도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만큼, 이번 재판에서는 폐 섬유화 및 천식의 유발 가능성 등이 재차 논쟁될 것으로 보인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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