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 의견 공개·반영 않는 교육부...불투명·불통 논란
【연말기획】 의견 공개·반영 않는 교육부...불투명·불통 논란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12.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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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최종 확정...심의안에서 큰 수정 없었다
연구진·위원 일동 반대 빗발에도 응답 않은 정부
수렴 의견, 수정 근거 공개 않아...투명성 문제도

【연말기획】 퇴보하는 교육과정, 강행하는 정부

①성평등·성소수자·노동자·생태 없는 교육과정
②의견 공개·반영 않는 교육부...불투명·불통 논란
③교육과정 확정...교육계 “역사적 퇴행” 반발 여전

7년 만에 전면 개정되는 새 교육과정의 개정안이 확정됐다. 이번 개정안에는 기존 교과서의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병기됐고, ‘성소수자’와 ‘성평등’은 삭제됐으며, ‘노동자’는 ‘근로자’로 수정돼, 전반적으로 보수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교육부가 정책 연구진의 의견과 다른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고, 교육과정심의회도 단 한 차례만 진행하는 등 졸속으로 절차를 밀어붙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특히 행정예고 과정에서 교육과정심의회의 수정 요청에도 교육부 측이 표결을 거부했다며 전교조와 실교모 등은 장상윤 교육부 차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제주 4·3을 기술할 근거가 돼 온 ‘학습요소’ 부분 역시 삭제돼 제주 4·3 명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전면 재검토 및 폐기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이번 교육 과정 개정 절차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쏟아지는 우려들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2022 개정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확정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교육부가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큰 수정 없이 최종 확정했다. 앞서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은 연구진과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결을 강행했을 뿐 아니라, 일방적인 수정에 대한 근거 역시 공개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바 있다. 소통하지 않는 정부 경향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으나 교육부는 충분히 소통했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반대 의견 반영 없이 최종 확정

지난 22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해 발표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생·학부모·현장교원 등 교육 주체의 참여를 대폭 확대했고,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개정 관련 협의체를 상시 운영했다”며 “무엇보다 8월 말 정책연구진이 마련한 시안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 개발 체제를 역대 최초로 운영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같은 날 전국역사교사모임, 서울혁신교육학부모네트워크 등 80개 교육시민단체가 모인 ‘교육과정 퇴행을 규탄하는 교육시민단체’들은 “정치적 입김에 흔들리며 퇴행을 거듭하던 2022 교육과정이 결국 누더기가 된 채 고시됐다”며 “윤석열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중립성을 훼손하며 교육과정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뒤흔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교육부가 확정한 교육과정 개정안은 앞서 교육부가 발표한 행정예고안이나 국교위가 의결한 심의안의 내용에서 큰 수정 없이 유지됐다. 앞서 개정안에 ‘자유민주주의’가 추가된 점, ‘성평등’, ‘성소수자’ 등이 삭제된 점 등 주요 쟁점에 대한 수정 요구가 빗발쳐 온 바 있다.

지난 8월 30일 교육부가 처음으로 총론과 교과별 시안을 공개하면서 갈등은 본격화됐다. 특히 역사 교과에서 연구진이 제출한 원안에는 없었던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추가돼 논란이 일었다. 교육부는 공개 이후 15일간 국민참여소통채널을 통해 대국민 의견을 수렴했다. 이후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 관련 의견과 함께 도덕·보건 교과에서 ‘성평등’, ‘성소수자’ 등의 용어를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어 9월 28일부터 11일간 공청회가 진행됐다. 공청회에서는 줄곧 반동성애·반노동 등의 기조를 촉구하는 보수 성향 단체들의 욕설과 고성이 이어졌다. 10월 8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진행된 공청회에서는 노동 교육을 삭제한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한다는 발언에 보수 단체 회원들이 반발하며 발언자의 마이크를 뺏으려는 과정에서 폭력 사태마저 발생했다. 

이후 11월 9일 행정예고안이 발표됐다.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 삽입을 유지했고, ‘성평등’과 ‘성소수자’는 삭제했다. ‘노동자’ 표현도 ‘근로자’로 대체됐고 생태전환교육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최종안까지 행정예고안의 내용은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오히려 당초 ‘성·재생산 권리’였던 것이 행정예고안에서는 ‘성 생식·건강과 권리’로, 국교위 심의안에서는 ‘성 건강과 권리’로 바뀌었고, 최종안에서 ‘섹슈얼리티’와 ‘전성적 존재’까지 삭제되는 등 절차를 거칠수록 보수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행 처리에 연구진·교원 반발

행정예고안 발표 이후 ‘2022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 연구진 일동’은 성명을 통해 교육부가 연구진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내용을 수정해 행정예고안을 공개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연구진 일동은 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교육과정에 반영하자는 의견은 나오지 않았고, 역사과교육과정심의회 위원 대부분은 반대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는 지난 7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전교조에 따르면 지난 5일 장 차관은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며 운영위원이 제출한 수정안을 채택하지 않았고 이후 의결 요청도 “의결 정족수는 회의 성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지 반드시 의결하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거부했다. 

대통령령인 교육과정심의회 규정은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의결정족수를 정하고 있어, 장 차관의 의결 거부는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측은 당초 교육과정심의회는 의결권을 가진 기구가 아닌 만큼 문제가 없다고 응답했다. 

또 국교위는 14일 심의안 의결 전까지 전체회의를 단 3회 진행한 것이 알려지면서 심의 과정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9월 27일 출범한 국교위는 현재 소속 공무원이 31명에 불과하고 내년 편성된 예산안이 88억 9100만원 수준에 그치는 등 맡은 업무의 규모와 중요성에 비해 그 지원과 조직이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바 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부의 심의본을 의결하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 및 사회부총리가 개정안을 고시하면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최종 확정됐다. 이 장관은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 고시한 인물이다. (사진/뉴시스)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부의 심의본을 의결하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 및 사회부총리가 개정안을 고시하면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최종 확정됐다. 이 장관은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 고시한 인물이다. (사진/뉴시스)

회의록 비공개 등 투명성 문제도

심의안 의결이 이뤄진 제6차 국교위 회의에서 김석준·정대화·장석웅 국교위 위원은 국교위 측이 합의 없이 표결을 강행하는 데 반발하며 퇴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난 14일 열린 국교위 본회의에서 충분한 토론이 없는 졸속 심의와 일방적 강행으로 국가교육과정의 총론과 각론을 심의·의결한 것에 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소위원회가 가동되고 있었으니 조금만 더 인내를 갖고 기다렸다면 우리 위원들은 최대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며 “국교위는 첫 결정으로 사회적 합의에 반하는 내용을 의결함으로써 스스로 불명예를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회의를 공개하지 않고 속기록도 작성하지 않는 등 투명성 문제를 보완하라고 촉구했다. 장석웅 위원은 “깜깜이 회의·심의는 국교위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의결 결정 전부를 국민께 공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현행 회의록은 이런 안건이 있었고 처리했다 안했다 정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역사 교과 개발 연구진 일동 역시 “교육부는 일부 학회 의견이라며 시안을 수정했다. 교육부와 연구진이 협력해 개발해온 과정을 교육부 스스로 부정한 것”이라며 “공적인 논의 절차 없이 성취 기준을 추가한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행위다. 비밀리에 진행한 수정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인권위 우려 표명 있었으나

한편 지난달 28일 인권위는 “정부 당국이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용어의 채택에 있어 연구진·학계·교원 등과 충분한 논의·협의 없이 자의적으로 결정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특히 인권위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는 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소극적 차별금지를 넘어 적극적 성평등을 지향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우리 사회의 인권 담론을 후퇴시키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며 “성소수자 용어의 삭제는 사실상 교육청과 학교에서 성소수자 용어 사용 금지 및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의식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인권위는 “교육과정은 모든 교육 활동의 기준과 내용을 정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권 친화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에 인권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 당국은 성소수자를 인권의 동등한 주체로 확인하고 혐오와 차별 없는 안전하고 평등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의지를 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교육부는 다음 날인 11월 29일 “논쟁이 되는 용어를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 담는 것에 대해 사회적 합의나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자유민주주의’ 사용에 대해서도 대다수 위원이 동의했다”고 답변했고, 인권 및 반차별 교육 기조에 대해서는 의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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