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 교육과정 확정...교육계 “역사적 퇴행” 반발 여전
【연말기획】 교육과정 확정...교육계 “역사적 퇴행” 반발 여전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12.29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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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넣고 성평등 뺀 교육과정 확정
보수화된 내용은 물론 졸속·강행 절차 지적도
교육계 “부당한 정치 개입...역사적 퇴행” 비판

【연말기획】 퇴보하는 교육과정, 강행하는 정부

①성평등·성소수자·노동자·생태 없는 교육과정
②의견 공개·반영 않는 교육부...불투명·불통 논란
③교육과정 확정...교육계 “역사적 퇴행” 반발 여전

7년 만에 전면 개정되는 새 교육과정이 확정됐다. 이번 개정안에는 기존 교과서의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병기됐고, ‘성소수자’와 ‘성평등’은 삭제됐으며, ‘노동자’는 ‘근로자’로 수정돼, 전반적으로 보수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교육부가 정책 연구진의 의견과 다른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고, 교육과정심의회도 단 한 차례만 진행하는 등 졸속으로 절차를 밀어붙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특히 행정예고 과정에서 교육과정심의회의 수정 요청에도 교육부 측이 표결을 거부했다며 전교조와 실교모 등은 장상윤 교육부 차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제주 4·3을 기술할 근거가 돼 온 ‘학습요소’ 부분 역시 삭제돼 제주 4·3 명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전면 재검토 및 폐기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이번 교육 과정 개정 절차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쏟아지는 우려들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자유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교육과정 개정에 역사 교사 일동과 교원단체들의 비판이 빗발쳤지만, 결국 교육부는 수정 없이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교육부는 7년 만에 개정되는 교육과정을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그러나 내용상 문제는 물론 개정 과정에서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가 연구진과 위원들의 반대에도 의결을 강행했다는 비판이 빗발쳤던 만큼, 교육계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갈등 끊이지 않았던 개정 과정

지난 22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번 교육과정은 지난 2015년 이후 7년 만의 개정으로, 오는 2024년 초등학교 1·2학년을 시작으로 2025년 초등학교 3·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에, 2026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과 중·고등학교 2학년에, 2027년부터 중·고등학교 3학년에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지난해 11월 개정 관련 교육부의 총론 주요 사항 발표 이후 정책연구 추진 ▲지난 8월 30일 교육부 총론 및 교과별 시안 발표 ▲9월 27일 국교위 출범 ▲9월 28일부터 11일간 국민참여소통채널 및 공청회 통한 의견 수렴 ▲11월 9일 교육부 행정예고안 발표 ▲12월 14일 국교위 심의본 의결 ▲12월 20일 교육부 확정 발표 등을 거쳐 확정에 이르렀다. 

그런데 8월 교육부가 발표한 교과별 시안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등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담기며 갈등은 시작됐다. ‘자유민주주의’는 주로 보수진영에서 사용돼온 용어로, 그간 보수진영은 ‘민주주의’라고 쓸 경우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해온 바 있다. 반면 진보 진영은 ‘자유민주주의’가 독재 정권 당시 반공주의 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던 점을 들며 교과서 표기를 반대해왔다.

아울러 보수 진영에서 반대해 온 ‘성소수자’, ‘성평등’, ‘성·재생산 권리’ 등 성이 포함된 단어들도 일괄적으로 삭제됐다. 최종 고시된 개정안에서는 ‘섹슈얼리티’, ‘전성적 존재’까지 삭제되는 등 더욱 보수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노동자’는 ‘근로자’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으로 대체되는 등 개정안은 보수화된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역사 교사 단체 반발...국정교과서 후 6년 만

이에 행정예고본 발표 이후 지난달 28일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사 1191명은 실명을 내걸고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한 일방적 수정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역사 교사들이 교과서 문제로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이들은 “교육부는 역사 교육과정 연구진의 동의 없이 역사과 교육과정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로 수정한 시안을 행정예고했다”며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에 교육부가 주도한 역사과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폭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우리는 국정교과서가 국민적 심판 속에 폐기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앞으로는 진보, 보수와 상관 없이 역사 교과서에 부당한 정치적 개입을 하는 정권이 탄생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가 연구진의 의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수정한 행정예고본, 역사과 연구진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적 압박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 심의 기구인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회 회의가 규정이 명시한 절차도 밟지 않았다는 위원들의 증언을 마주하며 처절하게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현장 교사들에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강력히 요구하는 교육부가 가장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역사 교육을 앞장서서 정치화하고 있는 모순된 현재 상황을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실명으로 요구한다”며 교육부에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한 일방적 수정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1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가 '노동 삭제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악' 정부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가 '노동 삭제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악' 정부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교조 등 교육단체 비판도

뿐만 아니라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무소속 위원들은 지난 16일 절차적·내용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개정안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졸속과 일방으로 누더기가 된 교육과정을 사회적 합의를 가장 중시 여긴다는 국교위가 다수결 표결이라는 또 다른 졸속과 일방으로 인정해 주는 모습을 보니 분노에 분노가 겹겹이 쌓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들은 생태전환교육, 노동인권교육, 민주시민교육이 사라지고 성소수자와 노동자 용어도 삭제된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도 “내용만이 문제가 아니다. 연구진 전원이 반대하고 해당 교과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놓은 법정 위원회의 위원 절대 다수가 반대해도 교육부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모든 과정은 비밀작전 수행하듯 꽁꽁 감춰졌고 연구진이나 위원들의 폭로를 통해서만 문제의 일부가 드러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지난 22일 큰 수정 없이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했지만, 이후로도 교육계의 반발은 이어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개정은 정권의 입맛에 맞춰 교묘하게 교육과정을 개악해나간 교육부와 정권의 거수기 노릇을 자처한 국가교육위원회의 합작품이다. 윤석열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중립성을 훼손하며 교육과정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뒤흔들었다. 그 결과 미래교육을 내걸고 추진되었던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과거로 퇴행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전교조는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면서 운영위원들의 의결 요청에도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의사 진행 권한을 남용해 운영위원회의 의결권 행사를 방해했다며, 지난 7일 장 차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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